생각과 감정의 본질은 계산
저는 앞의 글에서 우리의 뇌가 두개골 안에 갇힌 채 전기가 흐르는 신경다발을 통해서만 외부와 접촉하는 처지임을 이야기했습니다. 또한 우리의 생각은 우리의 뇌를 흘러다니는 전기 흐름이 그 본질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직 자세히 다루어보지는 못했지만 우리의 감정 역시 비슷합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뇌가 하는 일, 즉 우리의 정신 활동의 본질은 계산이라는 생각과 잇닿아 있습니다.
하나의 뇌세포가 하는 일은 다른 세포들로부터 전기신호를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전기적 흥분 상태가 변화하고 그 상태의 변화에 따라 발생하는 전기신호를 다른 뇌세포들에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는 입력값을 출력으로 변환시키는 일종의 계산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뇌는 뇌세포들이 수행하는 그런 작은 계산들을 종합하여 거대한 계산을 끊임 없이 지속합니다. 그를 통해 신체의 내부와 외부의 상황을 입력받아 그에 따른 판단, 결정, 운동, 기억 등의 출력을 산출하는 과정이 계속됩니다.
그렇다면 뇌란 일종의 계산하는 기계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성적 사고란 논리 규칙을 따르는 계산이고, 직관은 언어로 그 과정을 해독하기 어려운 계산의 결과이며, 감정이란 일종의 직관인 동시에 광범위한 영역에서 일어나는 병렬적 계산을 조정하는 전역변수들의 처리 과정일 것입니다. 학습이란 정보의 저장과 더불어 계산 알고리즘의 조정이고, 의지란 계산 결과들이 종합되어 일관성 있는 반응을 산출하기 직전단계의 병목 상태이며, 자아란 계산 과정에서 환경과 상호작용을 주고 받는 변수들의 가상적 종합체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과 구분할 수 없는 상호작용이 가능한 기계가 튜링머신이라면, 인간의 뇌는 그 자체가 일종의 튜링머신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뇌가 갖는 본질적 정체성이란, 무한에 가깝게 다양한 입력에 대하여 인간의 수준에 뒤떨어지지 않는 유연성을 갖춘 반응을 할 수 있는 계산 역량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정신을 이끌어가는 동력의 본질은, 마무리짓지 못한 계산을 이어나가려는 기계적 충동과 다른 것이 아니지 않을까요?
우리는 산낙지의 끊긴 다리가 소금친 들기름장 안에서 꿈틀거릴 때 그 다리가 고통을 느끼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고통이란 무엇일까요? 고통이란 처해 있는 상황을 어떻게든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우리의 정신 활동이란 상황을 벗어나고자 하는 산낙지의 그것과 비슷하게 다 하지 못한 계산을 마치려는 몸부림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요?
이런 이야기들이 인간의 정신을 폄하하는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이와 같은 사고에서 어떤 불쾌감이 느껴진다면 그 원인의 상당 부분은 우리가 단어들에서 떠올리는 연상들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계라는 단어에서 금속의 차가움, 경직성, 단순함 등을 연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접해 온 대부분의 기계들과 튜링머신의 차이는 아메바와 돌고래의 차이보다 큰 것입니다. 우리가 기계라는 개념에서 떠올리는 여러 속성들은 튜링머신이나 '계산기계로서의 뇌'와는 관계가 없는 것들입니다. 기계는 영혼만큼이나 경이로운 어떤 존재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적절한 연상과 오해를 무릅쓰고 우리의 뇌를 계산하는 기계로 바라보는 관점에는 어떤 유용성이 있을까요?
일단은, 인간의 정신을 신체와 동떨어진 별도의 실체로 보는, 예를 들어 영혼의 존재를 믿는 것과 같은 관점들과 구분되는 하나의 관점이라고 얘기해 두겠습니다. 같은 대상이라도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이고, 계산 기계로 뇌를 바라보는 관점은 우리 자신과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에 여러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런 영향들의 일부는 이어지는 글들에서 설명될 것입니다.
한 가지의 예를 미리 얘기해 보자면, 우리는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이런 식으로 바꾸어 표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내가 생을 마치기 전까지 더 진행시켜야 하는 계산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