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의 의미 - 자유와 기쁨의 기반
공리주의를 벗어난다는 것은 최대화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난다는 것이고, 행복이나 효용과 같이 하나의 가치로 통합되고 합산된 추상적이고 가상의 의미가 아니라 현재의 내 마음 안에 존재하는 그 순간의 의미를 따른다는 것이다. 그처럼 추상적 가치에 구속되지 않고 내 마음 속에 현존하는 의미를 따르는 것이 자유이다.
하지만, 이것이 그때그때 기분 내키는 대로 아무 장기적 목적 없이 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감정이나 충동이 의미를 구성하는 요소가 될 수는 있지만 의미는 더 다양한 요소들로 구성되는 것이다. 그 요소들은 믿음, 지식, 약속, 판단, 직관, 습관과 같은 것들이다. 의미는 결정론의 방식으로 내게 주어진 것인 동시에 이러한 소재들을 바탕으로 내가 스스로 지금 이 순간 구성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자면, 어떤 것이 가치 있다고 하는 믿음이나, 반드시 달성하고자 마음 먹은 목표, 내가 어떤 일을 하면 행복해지고 어떨 때는 불행해진다고 하는 등의 지식,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주위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사회적 상식, 습관으로 자리잡은 사고와 감정의 패턴 같은 것들이 의미를 구성하는 소재로 내게 주어진다. 이런 소재들을 바탕으로 나는 어떤 감정과 충동을 느끼기도 하고 생각을 해서 판단을 더하기도 한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형성된 직관에 따라 나는 무엇을 하고자 마음 먹거나 내가 마주하는 대상과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태도를 결정짓게 된다.
의미를 구성하는 소재들을 평소에 잘 정비해 두면 매 순간 의미를 구성하는 작업이 원활해진다. 내 믿음이 무엇인지, 서로 모순되는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지키기로 마음 먹은 것이 무엇인지, 여러 가지 요소가 상충하며 갈등을 일으키는 상황에서 어떤 기준으로 선택할지 등에 대해 생각을 해 두거나 습관을 형성해 두면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대응하기 쉬워진다.
하지만 그런 준비는 항상 완전함과 거리가 있다. 우리의 믿음들 중에는 충분한 근거를 갖추지 못한 것들, 서로 충돌을 일으키는 것들이 존재하고, 특별한 견해가 정해지지 않은 애매한 영역도 있으며, 사회의 상식이나 상식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별다른 검토 없이 내면화한 부분도 많다. 지식은 부족하고, 습관은 적절하지 않으며, 사태에 대처하는 내 감정과 사고의 패턴들은 성숙되지 못하고 고정관념에 지배 받는다.
우리는 우리가 갖춘 소재들이 완벽하기를 바랄 수는 없다. 자신의 철학이 의심 없이 완성된 후에 제대로 살 수 있다고 믿는 철학자들과 달리 우리는 불완전하고 불합리한 믿음들을 가진 채 주어진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자주 마주치는 결정들을 원활하게 해 나갈 수 있을 정도면 될 것이고, 우리의 바쁜 삶 중에 적은 일부를 투자해 의심이 가는 부분들을 돌아 보거나 중요한 기억들을 되짚어 보고, 우리가 하는 모든 경험이 우리가 가진 소재들을 보태고 변화시키는 일종의 배움의 과정이라는 인식을 가지면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소재들을 갖고 우리는 경험 속에서 단시간 내에 의미를 구성해 내는데, 이 구성 작업은 상황에 대한 해석, 감정적 반응,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논리적 연산, 그리고 이들의 종합으로 산출되는 직관의 영향을 받는다. 이렇게 구성된 의미는 역으로 상황에 대한 해석과 그에 이어지는 사고, 감정, 직관에 영향을 미치며 이와 같은 동적인 변화가 계속되어 나간다. 그리고 그 과정의 일부는 선택과 행위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내가 한 일의 결과를 갖고 상사가 심한 말로 질책을 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이 상황에 대한 나의 해석은 상사의 평소 성격, 사무실 안에서 일어났던 다른 일들, 내가 한 일에 대한 자기 평가 등 여러 요소들에 영향을 받는다. 나는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느낄 수도 있고 분노와 반항심을 느낄 수도 있으며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감정들에는 실수를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거나, 잘못은 항상 있을 수 있는 것이고 적절히 조치하면 되는 일이라거나, 어떤 일로든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는 것은 옳지 않다거나, 내가 존경하지 않는 사람에게 받는 질책은 무시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등의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믿음들이 영향을 미친다. 이런 감정과 인지적 판단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변화해 가고, 때로는 내가 평소 갖고 있던 믿음도 일부 수정이 된다. (존경할 만한 상사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 그 와중에 나는 질책 받은 일을 빨리 보완해야겠다거나 이 말도 안되는 직장을 그만 둬야겠다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이처럼 끊임 없이 이어지는 복잡한 흐름 속에서 사고는 제한된 역할만 한다. 의미는 현재의 관점에서 보자면 내가 이미 갖고 있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는 믿음과 습관 등의 여러 소재들과 감각, 인지, 감정, 직관, 무의식적 사고 등 경험의 순간에 외부에서 주어지거나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요소들이 합쳐져 결국은 일종의 직관의 형태로 갖추어진다. 의식적 사고는 여기 개입해서 무의식적으로 믿었던 것들의 확실성을 다시 검토하거나 대안적 명제를 제시하거나 간과했던 부분을 다시 주목하거나 하나의 생각을 부정하고 다른 생각을 긍정할 수 있다. 이러한 개입은 무의식적 사고의 흐름 속에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미묘할 수도 있고 때로는 사고와 판단의 방향을 크게 바꿀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까지 개입해야 하는지 역시 주관적 판단이고, 그러한 개입 여부가 결정되는 최초의 시점 역시 의식이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의식적 사고는 모든 걸 통제하는 주인이 될 수 없다. 다만 적절하게 개입할 수 있는 경우가 있고, 그러한 개입은 대부분의 경우 경험 속에서 고심해서 내리는 판단보다 평소에 정비해 둔 소재들의 도움에 더 의존한다.
앞의 글에선 의미를 가치와 비슷한 개념으로 간주했지만, 이 글의 맥락에서는 의미라는 개념이 더 넓은 뜻을 갖는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의미란 주어진 것을 해석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며, 다음 해석의 소재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내적 경험은 이러한 해석의 끊임없는 연쇄 과정이다. 감각 인지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눈에 보이는 대상에 의자가 아닌 고양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고양이의 의도를 해석해 저 앞발을 든 모습이 나를 할퀴려고 하는 의미인지를 판단한다. 고양이에게 할퀴어지는 것에는 자연스럽게 부정적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그것을 전제로 고양이에게 해칠 의도가 없다는 뜻으로 두 손을 들어 보이는 것이 의미 있는 행동이라는 판단을 내린다.
이렇게 보면 의미란 우리의 경험에서 뗄 수 없는 요소이다. 우리의 경험마다, 경험의 매 단계마다 의미가 존재한다. 이러한 의미 중 일부가 가치 판단으로 이어지고 선택과 행위를 결정짓는다. 한편으로는 대상에 대해 중요하다거나 중요하지 않다거나,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함께 하고 싶다 거나 멀리하고 싶다는 등의 의미를 부여하고 그에 따라 대상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가짐이 변화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공리주의의 최대화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모든 의미를 효용이나 행복이라는 추상적 가치로 연결해 그 가치의 기준으로 대상을 평가하고 선택을 하려고 하는 강박적 흐름의 연쇄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또한, 좋다, 나쁘다, 훌륭하다, 매력적이다, 하찮다 등등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의 의미를 불필요하게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가치들은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내 주관적 의미 부여의 결과이며 그 주관적 의미는 내가 가진 소재들(믿음과 지식과 습관 등)과 그에서 산출된 현재의 직관과 내가 부분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인지적 판단의 종합인 것이지 객관적으로 반드시 그러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절대적인 것, 궁극적인 것으로서의 의미나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내 안에 끊임없이 변화하는 의미들이 있을 뿐이다. 그 의미들은 옳은 것도 아니고 옳지 않은 것도 아니다.
덕분에 우리는 자유를 얻는다. 우리 안에 기쁨을 지향하는 본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주어지는 대상들에게서 기쁨을 찾기만 하면 된다. 찾아지지 않는다고 해서 억지로 찾을 수는 없지만, 강박관념을 버리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 집중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하는 노력은 기쁨의 잠재례을 기진 대상들을 긍정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누릴 수 있게 한다. 괴롭고 싫은 것들에 대해서도 우리가 불필요하게 덧붙이고 과장한 의미들을 부여하지 않는다면 그 부정적 영향을 줄일 수 있고 어쩌면 새로운 관점들을 발견할 수도 있다.
자유로우면 우리 마음의 본성은 자연스럽게 기쁨을 지향한다. 매순간 변화하는 의미에 대한 우리의 직관을 따라가고 주어진 대상들과 함께 하는 경험 자체에 집중하면서, 기뻐할 수 있는 것들을 기뻐하고, 틈틈이 우리가 가진 지식들을 보완해 가면 된다.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지, 얼마나 더 행복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은 잊어버리는 것이 낫다. 우리 삶의 많은 시간 동안에는, 이 정도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