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란 무엇인가

궁극적 의미의 의미는 무엇인가

by 황인석

우리는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기도 하고, 그와 비슷한 뜻으로 이런저런 상황에서 ‘의미’란 단어를 사용한다. 이번 글에서는 ‘의미’라는 단어의 의미에 대해 생각을 해보자 한다.

간단히 정의를 내려보자면, 의미란 가치와 비슷한 뜻으로 쓰이는 것 같다. 이 일을 하는 의미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이 일을 해서 얻을 수 있는 가치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과 비슷한 뜻일 것이다.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삶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치에 대한 의문으로 해석해도 될 것이다.

한편으로 의미란 단어나 문장의 ‘뜻’을 의미하기도 한다. 뜻을 알 수 없는 횡설수설하는 말이 의미 없다고 한다면 이 때 의미는 뜻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고, 말하거나 듣는 행위의 가치를 뜻할 수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뜻’과 ‘가치’라는 두 의미가 연관성을 갖게 된 것이 아닐까 한다.

가치라는 의미에 집중을 해 보자면, 의미란 어떤 노력이나 행위를 한 결과로 얻게 되는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어떤 일을 했는데 그 일의 결과가 의도한 바와 다르면 일한 의미가 없다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의도한 바와는 달라도 과정 상의 경험이나 의도하지 않은 부수적 결과들로 인해 의미가 있다고 여길 수 있다.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어떤 일의 결과가 충분한 가치를 가졌는가 하는 것이 의미의 유무를 가리는 기준이 된다.

하지만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여기에서부터 여러 가지 의견이 갈라지게 된다.

우리가 의도를 갖고 하는 행위들을 생각해 보자면 그 행위와 의도의 다양한 만큼이나 다양한 가치들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 우리에게 긍정적이라고 여겨지는 경험을 하는 것, 우리의 역량을 향상시키는 것, 옳다고 믿는 일을 하는 것,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을 하는 것,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 다른 사람을 돕거나 기쁘게 하는 것 등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마음 맞는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돈을 버는 것, 직장에서 주어진 과제를 성공적으로 해내는 것, 사람들의 존경과 칭찬을 받는 것 등이다.

하지만, 객관적 가치와 주관적 가치라고 하는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지 않을까? 객관적 가치는 사람의 주관적 경험이 아닌 객관적 기준으로 평가되는 가치이다. 돈을 버는 일이나 건강을 유지하는 일 등이다. 반면 주관적 가치는 행복과 슬픔 등의 감정을 비롯한 주관적 경험에 부여하는 가치이다. 맛있는 음식이나 쾌적함 등이다.

그런데 객관적 가치의 문제점은 어떤 가치가 가치로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상위의 더 큰 가치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프로젝트의 성공에 가치를 둔다면, 그 프로젝트를 구성하는 하위 업무들의 수행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하지만 프로젝트의 성공이 가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상위의 가치가 없다면 프로젝트의 성공 자체가 가치라고 할 수 있을까? 프로젝트의 성공이 예를 들어 회사의 실적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의미가 있다고 하면, 회사의 실적을 향상시키는 것이 가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다시 등장한다. 이런 질문은 끊임 없이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결국 객관적 가치만으로는 그것이 왜 가치있는가 하는 질문에 답변이 불가능해진다.

그렇다면 주관적 가치는 어떠할까? 우리가 기쁨이나 즐거움을 느낄 때면 그 자체가 가치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객관적 가치들은 주관적 가치에 기여하기 때문에, 예를 들어 프로젝트에 성공하면 회사의 실적이 좋아져 주주와 직원들의 소득이 늘어날 수 있고, 늘어난 소득을 소비에 사용해 즐거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여기에도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우리의 주관적 경험은 기쁨이나 즐거움, 고통 등으로 단순하게 분해되지 않는다. 다양한 음식의 맛을 단맛과 신맛, 쓴맛 등 기본적인 맛의 강도와 비율로 정의하기 어려운 것처럼, 우리의 경험은 저마다 고유하고 형용하기 어려운 다양성을 갖는다. 그런데 어떤 경험이 다른 경험보다 더 나은 가치를 갖고 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우리가 어떤 경험을 다른 경험보다 선호한다면 선호되는 경험이 더 많은 가치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이는 우리가 선호하는 것이 가치있는 것이고, 우리는 가치있는 것을 선호한다고 하는 식의 동어반복적 순환이 되고 만다. 우리가 가치의 문제를 고민하는 이유가 서로 다른 가치들 가운데에서 선택을 하기 위한 것일 때가 많은데, 이럴 때 당신이 선택하는 것이 가치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우리의 선호는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을 때가 많고, 설령 한순간 명확해 보인다고 해도 그 선호가 바뀌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가 어떤 경험을 선호한다는 것이 그 경험에 가치가 있다는 것을 확정해 주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즐겁고 건강이나 다른 부작용도 일체 없다고 하자.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부작용 없는 즐거움을 누린다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런 즐거움의 기회를 어떤 이유에서든 그냥 포기한다고 치자. 그는 어떤 가치를 잃어버린 것일까? 그가 잃은 것은 무엇일까? 그냥 일순간의 즐거움인데 그 즐거움을 누리지 않는다고 해서 궁극적으로 잃어버리는 가치가 무엇일까?

이 사례를 확대해서, 두 사람이 있다고 하자. 한 사람은 평생 행복하고 후회할 일도 거의 없는 삶을 누렸고 다른 사람은 고통과 불행 속에 삶을 누렸다. 두 사람 모두 인생을 이제 마치려고 하는 순간이라고 하자. 두 사람의 상황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을까? 죽음 앞에서 그들은 평등해진 것이 아닐까? 한 사람의 삶이 다른 사람의 삶보다 가치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가치 평가의 기준은 무엇일까?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보면, 객관적 가치든 주관적 가치든, 우리 삶에 안정적인 가치 기준을 제공해 주지 못한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을 계속 하는 이유는 어떻게 살든 마찬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어떻게 살든 마찬가지라면 당장 생각을 그만 두고 되는 대로 살라는 것이 결론이 될 것이다. 되는 대로 살려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 무엇보다 가치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 모순 앞에서 우리는 다시 가치의 질문 앞으로 되돌아 오게 된다.

결국 의미와 가치란 온전히 일관적인 체계로 통합될 수도 없고, 객관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확고한 기반을 갖출 수도 없다. 서로 다른 두 삶의 가치를 어떤 식으로 평가하든, 그 평가는 주관적인 것이고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결국 나는 내가 창조한 의미와 가치에 따라 살아야 하는 것이 유일한 가능성이지 않을까? 즉, 내가 하나의 삶의 방식을 배제하고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은 음식 메뉴를 고르듯 내 주관적 상태에 근거하는 행위이다. 되는 대로 사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겠으나, 그 방식을 배제하는 것 역시 나의 취향이다.

결국은 취향이 의미의 근거이다. 나는 내 취향에 맞는 선택을 통해 최대한의 즐거움을 얻겠다는 전제에 따라 의미체계를 구성하지 않는다. 그냥 다른 목적 없이, 마음에 드는 작품을 창조하고자 노력하는 작가처럼 내 인생을 현재의 내 취향에 맞게 구성하기 위한 참조 틀로서 의미 체계를 구성할 뿐이다.

취향은 즐거움이 목적인 것도 아니고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취향이란 내가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내가 부여하는 의미들은 나의 믿음, 지식과 기억, 생각과 판단, 욕구와 충동, 기대와 상상, 두려움 등의 종합으로 산출되는 것이다. 즉, 이 의미들은 내게 주어지는 것들을 재료로 삼지만 동시에 내가 구성하고 창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내가 가진 하나의 믿음에 온 인생을 걸 수도 있고, 두세 가지의 낙을 누리는 것을 삶의 의미라고 여길 수도 있으며, 사회적 기준과 상식과 습관에 의존하며 고통 없이 무난하게 지낼 수도 있다. 어떤 방식이든 가능하지만, 나는 내가 믿지 않는 것을 억지로 믿거나 좋아하지 않는 것을 억지로 좋아할 수는 없다. 즉 나는 주어진 제약 속에서 내 의미들을 구성해야 한다.

사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내가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에 따라 경험의 내용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스스로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 우리는 보람과 즐거움을 느끼고 고통도 비교적 쉽게 이겨낼 수 있지만,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할 때면 즐거움은 적어지고 고통은 커진다. 이는 역설적인 순환 관계를 낳는다. 주관적 경험은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을 조건 짓는데,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은 주관적 경험을 조건 짓는다.

내가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은 ‘주어진 조건으로서의 나’와 ‘생각하고 판단하는 나’의 종합으로 결정된다. 내 믿음은 이미 존재하는 것이면서 내 생각과 판단과 현재의 경험에 의해 영향을 받고 변화한다. ‘생각하고 판단하는 나’의 입장에서 보자면, 의미란 내가 개입은 할 수 있지만 온전히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의미는 중요하다. 하지만 의미는 보편타당하거나, 객관적이거나, 논리적으로 일관되거나, 안정적인 것일 수 없다. 하지만 의미는 그런 것일 필요가 없다. 내가 하나의 행위를 하고, 하나의 선택을 하고, 하나의 경험을 할 때는 하나의 의미만 필요하다.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하나의 의미, 내게 주어진 것이기도 하고 내가 창조한 것이기도 한 그 의미에 충실하면 된다. 그 하나의 의미에 따르는 것이 자유이고, 그러한 자유의 연속이 삶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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