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한계

안개 속을 걷는 우리는 불안을 피할 수 없다.

by 황인석

그동안 매주 1회씩 글을 올려 왔지만, 개인 사정으로 앞으로는 부정기적으로 글을 올리고자 합니다.

이번 글이 그동안 써왔던 글들의 한 매듭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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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그것이 내 마음 속에 현존하고 있는 동안에는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사랑을 하거나, 어떤 절실한 욕구를 느끼거나,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목표에 집중하고 있거나, 만족스럽고 행복해서 다른 생각을 할 필요가 없거나, 눈 앞에 있는 대상에 온 마음을 빼앗기고 있을 때, 의미에 대한 질문은 잊혀진다.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은, 마음이 집중할 대상을 찾지 못할 때, 막연한 불만을 느끼면서 뭔가 다른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 때, 서로 상반되는 의미로 인해 갈등을 느낄 때와 같이, 우리 마음에 뚜렷한 의미가 느껴지지 않고 방향 감각이 혼란스러워질 때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두 가지이다.

먼저 마음 속에 현존하는 의미가 있을 때 불필요한 생각으로 의미를 망치지 않고 그 의미를 충만하게 경험하는 것이다. 불필요한 생각 중 대표적인 것은 앞의 글들에서 이야기했던 ‘최대화의 강박’이다. 행복과 같이 우리 삶에서 최대화해야 하는 추상적인 가치가 있다고 하는 믿음은 의미가 현존하는 순간에도 더 ‘많은’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어떤 좋은 것을 경험하면서도 더 좋은 것을 상상하거나, 그 좋은 것을 더 많이 누리려고 궁리하는 것은 현존하는 의미에 전념하지 못하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의미가 분명치 않거나 갈등을 일으키는 상황에서는 도움이 되는 지침과 지식들이 필요하다. 마음을 이끌어 주는 의미 대신 선택과 지향을 도와 줄 믿음, 목표, 약속, 기억, 노하우, 요령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지침과 지식들은 확신을 갖기에 부족한 경우가 많다. 일부 철학자들의 기대와 달리 우리가 가진 철학과 이성적 판단은 우리의 선택과 결정들에 충분히 확고한 기반을 마련해 주지 못한다. 우리의 마음 한쪽에는 해소되지 못한 불안과 혼란이 남아 있다.

그런 불안이 온전히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는 것이 어쩌면 가장 먼저 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맑은 날과 흐린 날이 번갈아 지나가듯, 행복과 불행, 평안과 불안, 의욕과 무기력, 의미와 무의미의 시기가 어우러지는 것을 삶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후자를 무언가 대처해야 하는 문제로 보고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을 지나치게 갖는 것은 불행과 불안을 오히려 더 키우는 것이 아닐까? 삶의 의미를 제대로 정의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합리적으로 살아가는 것은 완성이 불가능한 준비를 핑계로 해야 하는 일을 마냥 미루려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가 부분적으로 엉성하게 알고 있는 의미들은 출발점의 역할을 할 뿐이고 의도하지 않은 우연들에 떠밀리면서 미리 예상할 수 없었던 의미들을 만나는 것이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닐까?

현존하는 의미조차 우리의 지속적인 안식처는 되지 못한다. 마음을 사로잡던 사랑스러운 대상이 그 마력을 잃고, 의욕 충만하게 추구하던 목표가 덧없는 것으로 바뀌는 위험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의미들을 붙잡아 두지 못한다. 다만, 한 순간 하나의 의미로 채워질 때가 있고, 다른 의미가 대신할 때가 있으며, 의미들로 채워지지 못하고 비어 있는 때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 우리가 한때 의미 속에서 안정과 확신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다음 순간 우리는 혼란과 불안을 느낄 가능성을 항상 갖게 된다.

우리의 지혜는 전체 삶을 떠받쳐 주는 확고한 반석 같은 의미를 제공해 줄 수 없다. 또한 불확실성의 안개 속에서 최선의 방향을 제안해 주는 나침반 역할마저 기대하기 어렵다. 이론적 지혜는 어떨 때는 용기가, 어떨 때는 신중함이 필요하다는 정도를 이야기해 줄 수 있을 뿐이다. 용기를 발휘할 때와 신중함을 발휘할 때를 구분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실천적 지혜이며, 그것은 몸에 익혀지는 것이지 매뉴얼처럼 정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우리가 아무리 실천적 지혜를 몸에 익힌다고 하더라도 그 지혜가 적절한 판단을 하기에 충분한지는 결코 확신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단지 나아갈 수 있을 뿐이다. 안개가 걷히길 기다리지 말고 안개 속에서 나아가야 한다. 어느 방향이 옳다는 확신은 가질 수 없지만, 전진하는 병사들이 용기나 꿋꿋함과 같은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것이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적절하다고 믿어지는 태도와 자세를 갖추려고 하는 노력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현존하는 의미에 대한 헌신과 집중, 긍정, 성실함, 희망, 불확실성의 간격을 뛰어넘는 도약과 용기, 그러한 시도를 하고 책임을 지는 자신에 대한 관대함 같은 태도들이 안개 속을 걷는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미덕의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미덕들의 목록은 완성될 수 없고, 길을 걷기 전에는 그런 미덕들의 의미와 유용성을 제대로 이해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다만 길을 걷는 것이다. 우리의 온 존재가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의 밯향을 결정한다. 길을 걸으면서 상상한 것과 상상하지 못한 것들이 가득한 세계를 경험하고, 경험 속에서 변화하고, 변화된 나로서 새로운 길을 걷는다. 그것이면 아마 충분할 것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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