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몸은 멀쩡한데 마음이 유독 답답하던 시기가 있었다.
우울증이라는 그림자가 고개를 기웃거렸고, 신경은 예민해져 밤이 되면 쉽게 잠들지 못했다. 특별히 큰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마음은 늘 무거웠고, 삶이 버겁게 느껴졌다.
그날도 그런 하루였다.
그래서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섰다. 늘 다니던 길로 운전대를 잡았지만, 문득 오늘만큼은 다른 길로 가고 싶어졌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낯선 길을 따라 한참을 달리다 빨간 신호에 걸려 차를 멈췄다.
파란불이 켜지자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은 물결처럼 흩어졌다. 각자의 일터를 향해 바삐 걷는 그들의 얼굴에서 이상하게도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바쁘게 움직이지만 정작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생각할 틈도 없이 남이 정해놓은 방향으로 속도를 내며 살아가는 모습 말이다.
사실 나 역시 그 흐름 속에 늘 섞여 있었다.
왜 이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정말 내가 원하는 길이 맞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그날만큼은 마음속에서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지금 어디로 달리고 있는 걸까?’
‘원래는 어디로 가고 싶었던 걸까?’
익숙한 길을 벗어나 다른 길을 선택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날의 나는 이상하게 뿌듯했다. 누가 정해준 길이 아니라, 내가 정한 길을 가고 있다는 감각이 깊은 내면에서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때, 작은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악셀을 밟고 나아갈 때마다 빨간 신호가 약속이라도 한 듯 연달아 파란불로 바뀌었다.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신나게 달렸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신’이라는 존재를 느꼈다.
문득 고개를 들어본 하늘에는 아침노을이 번지고 있었다. 너무도 아름다워 깜빡이를 켜고 길가에 잠시 차를 세웠다. 차문을 여는 순간, 또 한 번의 선물이 찾아왔다. 풀과 나무에서 올라오는 싱그러운 냄새가 몸과 마음을 씻어내듯 스며들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한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숨 쉬는 것만으로도 충만해졌다.
그 순간 깨달았다.
지금 숨 쉬고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큰 기적이고 행운인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풍요로움과 감사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차올랐다.
아인슈타인은 기적을 이렇게 표현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오직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하나는 아무것도 기적이 아닌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
이 풍요로운 시대에 태어난 것도 기적이고, 가족이 모두 건강한 것도 기적이다. 정상적인 몸으로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우리 주변의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행운이고 감사의 연속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부정적인 생각과 지친 하루, 불만으로 가득 찬 현실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러다 보니 기회와 행운이 다가와도 무심코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다.
어릴 적부터 무의식적으로 부모의 걱정과 돈에 대한 불안, 좋지 않은 환경의 영향까지 그대로 물려받았을지도 모른다. 가난하거나 운이 없다는 고정관념 역시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어른이 된 우리는 다르다. 우리는 스스로 운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 시작은 ‘멈춤’이다.
몸과 마음이 수많은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 때는, 조용한 곳에서 잠시 멈춰 서서 비워야 한다. 깊은 산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무작정 뛰어다니는 대신, 잠시 멈춰 주변을 살펴보는 것처럼 말이다. 생각을 비우면 머리가 맑아지고, 판단력도 다시 또렷해진다.
그다음은 사람이다.
휴대폰에 저장된 연락처를 천천히 떠올려보며 내 마음의 반응을 살펴본다. 그 사람을 생각했을 때 기분이 좋아지고, 함께 있으면 힘이 나는 관계라면 긍정적인 에너지가 오가는 것이다. 서로에게 동기부여가 되고 응원이 되는 사람을 곁에 두는 것이 중요하다.
반대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불편하고,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든다면 과감히 거리를 두는 편이 낫다.
이런 말이 있다.
“내 곁에 있는 사람을 바꿀 수는 없지만, 내 곁에 어떤 사람을 둘 것인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과거의 울타리에 머무르지 않고, 내 운을 방해하는 요소를 하나씩 정리하며 더 좋은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가는 것 또한 나의 몫이다. 아무도 대신 구해주지 않는다. 스스로 운명을 창조해나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는 일이다.
나는 요즘 틈날 때마다 이런 연습을 한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이 말을 자주 되뇌다 보니 생각이 현실을 끌어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부정적인 상황이 오래 머물 틈 없이 스쳐 지나갔다.
실제로 이런 소소한 일도 있다.
요즘 나는 어딜 가나 꼭 나를 기다린 주차 공간을 만난다. 오늘도 퇴근 후 밤늦게 집에 돌아왔는데 아파트 주차장은 빈틈없이 차로 가득했다. 어쩔 수 없이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려던 순간, 바로 옆 차가 시동을 걸고 천천히 빠져나갔다. 덕분에 나는 가까운 곳에 주차하고 곧바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또 한 번, ‘역시 나는 운이 좋다’고 속으로 웃었다.
흩어진 구슬을 꿰기 위해서는 바늘과 실이 필요하다.
내가 생각하기에 바늘은 ‘기적’이고, 실은 ‘행운’이며, 그 모든 것을 단단히 묶는 매듭은 ‘감사’다.
바쁜 세상을 살아가며 우리는 아주 작은 멈춤 하나로 흩어진 삶의 퍼즐을 다시 맞출 수 있다. 매일 생각의 빈 공간을 만들고, 좋은 운을 불러들이는 연습을 하는 것. 그 작은 선택과 반복이 결국 삶의 길을 스스로 그려나가게 하지 않을까, 조용히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