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세상에 나를 끼워 맞추니

by 조수란

오늘 우리 동네 시장, 5일에 한 번씩 찾아오는 오일장날이다. 코로나 때문에 그 동안 시장에 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오늘은 꼭 한번 가봐야겠다고 큰마음을 먹었다. 눈에 띄게 커가는 아이들이 옷을 보러 가는 겸, 풍성한 먹 거리를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다윤아, 엄마가 시장에 가면 예쁜 치마바지 있는지 살펴볼게.”


“응, 엄마.”


“엄마, 나는 옷 말고, 오뎅.”


큰아이가 큰소리로 말했다. 때마침 그 옆을 지나가다말고 나는 주먹으로 큰애의 머리를 툭 치며 말했다.


“야, 너는 엄마한테 무슨 돈을 맡겨놨냐? 내가 은행으로 보이냐?”


“하아~ ㅠㅠㅠ, 어디 서러워서 살겠나? 엄마, 지금 나한테 폭력도 쓰고 다윤이랑 나랑 차별 하는 겨? 아동학대로 신고라도 해야지.”


“제발 좀 그래라. 감옥에 가면 너희들을 먹여 살리지 않아도 되고, 하루 세끼 해주는 밥을 꼬박꼬박 챙겨먹으면서 독서 하고 글만 쓰다가 위인이 되어 나올지 알게 뭐야. 그렇게 되면 집안일은 네가 도맡아 해야겠다. 수고해~.”


“안 돼~~~”


큰애는 머리를 싸쥐고 괴로운 척 했다.

큰 아이는 굶는 한 있더라도 집안일은 영하기 싫은 모양이다. 사춘기에 들어선 아들이 어느새 덩치가 저렇게 컸나 싶을 정도로 키가 부쩍 자란 걸 보니 내 삶이 점점 작아지고 있음을 실감하였다.


큰 아이를 임신했을 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40킬로도 안 되는 내 비실비실한 몸을 보고 애가 무슨 애를 낳느냐고 하면서 살이 너무 빠졌다고 말했다. 그건 다 몹쓸 입덧 때문에 빠진 살갗인데도 말이다.


6개월쯤 지나 입덧이 가라앉으면서 나는 매일 엄마와 밥솥 빼앗기 전쟁을 시작했다. 한 끼에 4인분인 밥을 혼자 먹었을 터였다. 갑자기 늘어나는 식량에 엄마가 밥을 적게 주기라도 하면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가도 엄마가 어딘가 놀러 나갈 때면 기회를 노렸다는 듯이 냉장고 안을 탈탈 털었고 작정이라도 한 듯 밥솥의 밥을 꾸역꾸역 먹어댔다. 혹시나 명절이나 생일에 언니네 집에 놀러 가면 다른 사람을 상관하지 않은 채 불고기 쌈을 정신없이 먹어댔다.


그러면 엄마는 너무 많이 먹으면 체한다고 나를 뜯어 말렸고, 그러는 나는 한입이라도 더 먹겠다고 성질을 부려가며 화를 냈다. 이를 지켜보는 남편이나 형부는 또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많이 먹게 놔두라고 엄마를 말렸다. 엄마의 마음이 그렇지 않은 줄 번연히 알면서도, 무슨 계모도 아니고 먹는 거 가지고 치사하다며, 나는 서러움을 토해내면서 엄마 에게 소리를 질러댔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의 몫을 먹어야 했고 잘 먹어야 건강하며 무엇보다도 뱃속의 아기가 맛있어 죽겠다는데 나라고 어쩌겠는가? 그러는 사이 남편이 내 밥그릇에 소고기를 몰래 얹어주고 있었다.


10개월에 들어서면서부터 내 몸은 불어난 라면처럼 뚱뚱해져있었다. 몸에 맞는 옷이 없었다. 어쩌다 외출이라도 하기 위해 제일 큼직한 옷을 골라 억지로 내 육체를 끼워 넣어보지만 옷은 내 몸을 거부했다. 받아주질 않았다. 할 수 없이 엄마가 나를 대신해 시장에 가서 제일 큰 사이즈로 된 임산부 복을 사왔다. 가뜩이나 작고 뚱뚱한 내가 입으니 영 볼모양이 아니었다. 이래 봐도 임신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멋을 부리는 여자아이였다고.


나는 결심한 듯 엄마가 사준 옷을 대충 입고 백화점을 비롯한 옷 파는 곳을 전부 훑고 다녔다. 꼭 예쁘고 맘에 드는 옷을 찾아낼 거라고. 하지만 마네킹에 걸려 있는 화려하고 예쁜 옷을 내 몸에 맞춰보는 순간 그야말로 수박이 호박이 되는 꼴이었다. 한마디로, 세련 된 옷이 내 몸에 닿는 순간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항상 끼워 맞추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삶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이 돌아가는 상황에 나를 끼워 맞추며 하루라는 쳇바퀴 속에 찡기면서 살아왔다. 그때에도 끼워 맞추는 삶이 나에게 있어서 익숙하였고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작아서 발이 아프던 운동화에 내 발을 끼워 넣으니 점차 늘어났으며 전에 끼워 입었던 옷도 다이어트를 해서 입으니 딱 맞고 예뻤다. 시어머니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존심을 구기니 예뻐해 주셨고, 동료들에게 친절하게 보이기 위해 내 시간을 마구 낭비하였으며, 남편에게 좋은 아내가 되기 위해 내 인생을 끼워 맞췄고, 내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로 남기 위해 에너지가 바닥이 날 때까지 자신을 내 던졌다. 세상에 나를 끼워 맞추니 그럭저럭 살아냈고 살기도 편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은 나를 맞춰주질 않았다. 어느 순간 나는 나를 생각했다. 나는 처음부터 내 자신을 선택해야 했음을. 나는 내 자신을 사랑해야 했음을. 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알아야, 나아가서 내 가족을, 내 삶을, 내 주위의 모든 것을 사랑할 자격이 있음을.


개구쟁이 사춘기 아들이 늘 하는 말이 있다. ‘엄마도 엄마를 위해 살아’라고 말이다. 사춘기청소년이면 어른 반, 아이 반인 마음일 텐데, 이럴 때 보면 꼭 마치 인생을 다 살다온 사람처럼 말을 해서 깜짝 놀라게 만든다. 세상이 다 내 맘처럼 되지 않고 나도 세상이 원하는 대로 맞출 수 없다. 내가 살아 있는 곳곳이 나의 세상이고 내가 존재하는 삶이다. 내 자신이야말로 기적이고 재산이다. 지금부터라도 외부의 삶이나 환경이 아닌 내 안의 세계를, 내 자신에게 투자하고 미래를 개척해나가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없으면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나는 아직도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 서툴고 어색하다. 우리는 견뎌야 할 아픔이 있고 맞서 싸워야 할 상황들이 존재하며 넘어야 할 산이 있고 짊어져야할 책임이 있다. 이 모든 것을 극복하면서 내 자신을 믿고 용서하고 안아주고 토닥여주면서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때, 앞으로 헤치고 나아가는 것이 두렵지 않다. 그렇게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매일이 모여서 인생이지 않을까 싶다.

이전 07화10. 내 몸이지만 내 맘 같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