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때문에, 작년에 신청해놓았던 책 놀이지도사자격증시험을 드디어 오늘에야 보게 되었다. 아침에 꼼꼼히 준비한답시고 자료를 잘 챙기면서 길게 한 숨을 내 쉬는데 심장이 쿵쾅쿵쾅 방망이질 해댔다. 나는 떨리는 가슴에 손을 얹고
“이제 그만.”
하고 명령을 하였더니
“이 자식이 어디에 대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야.”
라고 하면서 심장이 더욱더 세게 두드리며 대들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내 몸이지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 상황, 내 몸이지만 몸 안에서 매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 내가 내 몸의 주인이지만 갑자기 어떤 생각들이 머릿속에 들이닥치는지 예상하지 못하는 주인. 이 모든 것들을 생각하면 과연 내 자신을 온전히 잘 경영해나가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알고 보면 나는 그저 한 육체와 정신의 껍데기에 불과했다. 혹시나 어떤 상황에 부딪치기라도 하면 때론, 내 생각이 마음과 영 일치하지 않아 자신을 절망이라는 구렁텅이에 쏙쏙 빠뜨리면서 삶을 불행하게 만들 때도 있었다.
어쨌거나 오늘은 시험을 잘 봐야 하니까 이번만큼은 내 자신과 호흡을 잘 맞춰가면서 협조를 잘해야겠다. 암~.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면서 세미나실에 도착했다. 코로나 거리두기 실천을 잘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저 멀리 간격을 사이에 두고 저마다 뛰엄뛰엄 앉았다. 커다란 강당을 길게 늘어선 맨 앞줄에 가방을 내려놓고 몸을 기댔다.
얼마 후, 선생님이 들어오시자 우리는 준비해온 사진과 서류들을 잘 챙기고 신청서를 작성했다. 먼저 후보1, 후보2, 그다음 내 차례였다. 시험은, 각자 준비해온 이야기책을 쓴 작가님을 소개하고 책 속의 내용을 소개한 다음, 준비해온 계획서와 활동지에 대해 설명하는 거였다. 먼저 후보1 선생님의 차례였다.
당당하고 재치 있는 말투와 숙련된 말솜씨에 조용했던 내 마음 한구석에서 심장의 파도가 출렁이기 시작하였다. 세상에나 이렇게 우수한 분이 계시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어서 후보2 선생님 차례였다. 나무랄데없이 주어진 임무에 잘 완성해온 선생님의 차근차근한 설명에 출렁이던 내 마음의 파도가 어지러움까지 더해지면서 머릿속이 새하얀 백지장이 되었다.
드디어 내 차례였다. 슬그머니 뒷좌석을 돌아보니 심판원선생님들의 표정에는 엄숙함이 묻어있었다. 내 이름을 몇 번이나 부른 것 같은 뒤에 벌떡 일어나 정신을 차리고 책과 서류를 들고 앞으로 나아갔다. 마이크를 잡은 왼손이 중풍에 걸린 사람처럼 덜덜덜 떨리기만 하였다.
‘자기소개를 해야 되는데, 어서 빨리 시작하고 이 상황이 잘 마무리하고 끝나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이 순간만큼은 더 이상 ‘나’가 아니었다. 어느새 내 입이 의지와 상관없이 연설을 하면서 움직이고 있음을 느꼈다. 뭐라고 했냐면, 다짜고짜로
“앞의 두 분 선생님께서 너무 잘하셔서 이 장소에서 도망가고 싶었는데 오늘따라, 하필이면 맨 앞에 앉아 가지고, 하필이면 내용이 제일 많은 책을 선정해가지고. 휴~.”
사람들은 재밌어죽겠다고 마스크위에 손을 얹으며 웃었다. 마스크가 이미 얼굴을 가려주었는데도 말이다.
온 몸에서는 식은땀이 두려움에서 도망가기 위해 이곳저곳에서 비집고 나왔다
.
이때, 책 놀이 지도 사 선생님께서
“오늘만큼은 도망을 못가세요. 안됩니다.”
라고 하시면서 농담으로 한마디를 건네주셨다. 순간 여기저기에서 키득키득 하는 웃음소리가 조그맣게 들려왔다.
그렇게 선정해온 책의 작가님의 소개를 마치고 책속의 내용을 말하는 타이밍인데 너무 긴장한 탓에 어디서부터 무엇을 말해야 할지, 머릿속은 텅 비어있었다. 짧은 시간 내에 책 속의 문자들을 긁어모아 주어 담느라고 버퍼링이 버벅 거리는 느낌이었다. 이 순간만큼은 코로나 때문이라기보다 코로나 예방을 위하여 마스크를 쓴 덕분에 입안에서 혀가 따로따로 놀았고 입술이 마음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그냥 제 맘대로 여기저기 분리되어 있는 것 같았다.
짧고도 긴 10분, 다행이 시험은 무사히 통과되었고 사람들의 힘찬 응원의 박수소리에 너무 부끄러워서 몸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인사로 마무리 하고 부랴부랴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 동안 독서를 하면서 차츰 어린이 동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아름다운 그림으로 된 풍경 속에 빠져 있으면 내가 동심으로 돌아가는 순간인 것 같았다. 그리고 지혜의 말과 깨달음이 담긴 한권 한권의 책 속에는 어른들도 배워야할 인생의 메시지에 울림을 받기도 하였다. 맨 처음 자격증을 딴다고 할 때, 어린이 도서를 배우는 과정은 하나의 도전이었으며 내 아이들을 위한 엄마로서의 의무에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보다도 내 자신이야말로 책 속의 현명한 생각에 따뜻함을 느끼고, 깨달음을 얻으면서 다양한 삶과 세계를 들여다보고 만끽하고 있었다. 그 동안 무지개 같은 인생을, 무지한 생각으로 살아온 나를 돌아보면서.
오늘 내 몸과 마음이 두 갈래의 선로를 마음대로 이탈하였지만, 어쨌거나 만족하기로 하였다. 그래도 내 몸이라는 기계가 장치가 빠짐없이 있어주어서 고마웠고 장기 내의 모든 나사가 잘 돌아가 주어진 임무를 겨우 완성함에 있어서 감사했다. 그 동안 몸이 나라는 게으른 주인을 잘못 만나 돈벌이 기계로 함부로 혹사하고, 기분에 따라 알 콜을 들이 붓고, 자극하는 음식이 당기면 가리지 않고 먹었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몸 안의 부품이 잘 견뎌와 줘서 고마웠고 내가 원하고 움직이는데 불편을 주지 않아서 감사했다.
때론 원고를 조금이라도 더 고치고, 글을 조금이라도 더 쓰기 위해 밤을 지새우면서 육체를 아무렇게나 다루어왔고 가족을 위해 내어주고 내려놓는 탓에 영양제 한 알 안 사먹고 보약 한번 지어먹어보지 못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사랑하려면 내 자신부터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하는 줄 번연히 알면서도 그 동안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평생 함께 해야 할 내 몸을 지금부터라도 잘 가꾸어 나가야겠다. 그 동안 어리석은 나를 돌아보면서 지금 이 순간처럼 항상 건강하기 위해 앞으로 꾸준히 운동하면서, 온전하고 완전한 나 자신으로 삶의 끝까지 함께 잘 달리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