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라 학교를 가지 않는 늦잠꾸러기 두 아이가 그 동안의 피로를 잠으로 가셔내는 듯, 해가 중천에 닿을 듯 말듯 할 때까지 일어나질 않았다. 따뜻한 레몬차와 보리차를 만들어 아이들의 옆에 살며시 갖다놓았다.
신선한 공기를 바꾸려고 창문을 활짝 열어놓자 나무에 앉은 새들이 지저귀며 우는 고운소리가 귓전을 맴돌면서 아름다운 선물을 안겨주었다. 작은 몸집에서 어쩌면 저렇게 예쁜 소리가 나올까. 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떨쳐내지 못했다. 오늘따라 따스한 해님이 온 세상을 밝게 비추면서 조용했던 마음이 갑자기 설레기 시작하였다. 매일 듣는 새소리와 매일 보는 풍경이지만 오늘따라 어딘가 달라 보였고 다르게 느껴졌다. 마침 부처님이 오시는 날이라서 온 세상이 환하게 느껴지는 건가?
아이들이 하나 둘씩, 눈을 뜨자 아침을 먹이고 냉장고 안에서 마실 것을 챙겼다. 어제 시어머니와 함께 남산공원에 놀러가자고 한 약속에 혹시라도 늦었을까봐 두 아이를 데리고 부랴부랴 차에 시동을 걸었다. 기다리시다 못한 시어머니가 걸려온 전화를 받으면서 지금 모시러가는 중이라고 둘러댔다.
그렇게 남산공원에 도착하여 우리는 조그마한 배낭을 메고 등산 아닌 등산을 시작했다. 신이 난 아이들은 너도나도 앞서 걸으며 시원한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이름 모를 여러 가지 꽃들이 저 멀리서 손짓하였고 수많은 나무들이 매끄럽고 키 큰 매력을 뿜뿜 자랑하듯이 아름다운 자태를 유지하였다. 초록색으로 물들인 갖가지 식물들이 산들바람에 춤을 추며 싱그러운 냄새를 안겨주었다. 무성한 숲과 나무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반짝이면서 비춰주는 햇빛은 그야말로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한 폭의 그림이자 예술이었다.
정말이지. 언제나 편안한 자연의 품으로 돌아오면 피로했던 눈이 즐거워지고 가라앉았던 마음이 설레기 시작하면서 시원한 공기를 듬뿍 들이마시는 동안 온 몸의 찌꺼기들을 가글해 내는 순간이기도 하다. 푸르른 자연의 신성함 들이 노화되어가는 내 몸과 마음을 붙잡아주고 지친 삶을 부추겨주는 든든한 지팡이와도 같다.
호기심이 많은 작은 아이가 가까이에 있는 꽃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아는 것이 없는 나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하기 시작하였다.
“엄마, 저건 무슨 꽃이야?”
작은 아이가 가리키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니 알록달록한 예쁜 꽃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비록 자연을 좋아하지만 꽃과 식물과 나무들의 이름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아는 것이 없는 한사람이다. 이리저리 아무리 눈여겨봐도 이름 모를 이 꽃, 알록달록 여러 가지 색깔인 이 아이들의 이름은 무엇일까? 작은 아이가 시무룩해하더니 한마디를 했다.
“엄마도 얘 이름을 모르지? 그렇지?”
“음, 이건 노란 꽃, 이건 하얀 꽃, 이건 보라 꽃. 이건~~”
순식간에 우리는 배꼽잡고 쓰러져라 웃어댔다.
“뭐야, 엄마, 그건 나도 안다고.”
“그럼 이젠 꽃 이름 물어보지 않을게. 엄마, 저기 저 나무 이름이 뭐야?”
연속 물어보는 작은 아이의 질문에 나는 시원한 그늘 밑에서도 식은땀이 났다.
‘뭐지? 저 나무 이름이?’
“뭐야. 엄마 이 나무 이름도 몰라?”
“음, 그게 뭐냐면 땔나무야 땔나무.”
어째서 매번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느냐는 듯 아이들은 재밌어 죽겠다고 웃어댔다.
이 나무는 내가 어릴 때 우리 집에서 불쏘시개로 쓰던 나무였던 것 같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겨울이 오기 전이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산에 가서 땔나무를 주어다 수레에 가득 싣고 돌아와 앞마당에 차곡차곡 쌓아놓았다. 그 땔나무덕분에 우리가족은 추운 한겨울 작은 지붕 밑에 오순도순 모여앉아 따뜻한 밥도 지어먹고 포근한 잠도 잘 수 있었다.
남산공원으로 올라가면서 혹시나 길옆에 씌어 진 작은 문구가 보이면 작은 아이는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건강하세요.” 라거나 “부자 되세요.” 와 같은 글들을 읽을 때마다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감사합니다.”를 말했다. 혹시라도 저 멀리서부터 산을 내려오는 사람들이 보이기라도 하면 코로나 2미터 거리두기 실천을 한답시고 작은 아이가 암호로 참새소리를 냈다. ‘짹짹, 짹짹.’ 그 신호에 맞춰 우리는 시원한 공기를 마시느라 잠시 내렸던 마스크를 코끝으로 일제히 다시 올리곤 하였다. 시어머니는 허리가 많이 아프시고 힘드셨을 텐데 아이들의 애교와 재주에 웃음을 잃지 않으셨다.
사람들이 저 멀리까지 지나가고 보이지 않자 준비해왔던 물과 요구르트를 꺼내 마시고 시원한 그늘이 있는 의자에 잠시 몸을 맡겼다. 그러자 어디선가 새들의 고운 노래 소리가 우리의 귀를 가셔주기 시작하였다. 작은 아이가 말했다.
“엄마, 이번엔 내가 말할게. 이 새의 이름은 까치, 저기 저 나무에 앉은 새는 까마귀. 지
금 저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새소리는 뻐꾹새. 뻐꾹, 뻐꾹. 맞지?”
작은 아이의 정확한 대답에 나와 시어머니는 “잘한다.”를 외치며 손뼉을 쳐주었다.
“오~~ 잘 아는데.” 큰 아이는 엄지 척을 내주었다. 오빠다운 칭찬이었다.
그렇게 정산까지 올라갔다 내려 올 때 우리는 일부러 다른 길을 선택했다.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또 다른 느낌을 받으면서. 얼마 못가 길옆에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절간을 발견하였다. 안에서부터 들려오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과 곡소리에 천진난만한 작은 아이가 뜬금없이 어느 나라 말인지를 물어보았다. 그 말을 듣고 키득키득 웃는 큰 아이를 겨우 말리면서 나는 스님이 불경을 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호기심에 무언가 더 물어보려고 하는 아이에게 쉿! 조용하라고 하고는 각자 소원을 빌라고 했다. 부처님이 오시는 날이니까 어쩌면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실 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시어머니는 허리를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고 큰아이는 갖고 싶은 컴퓨터를 사달라고 했다. 나는 우리가족이 지금처럼 건강하고 행복하고 오래오래 살게 해달라고 빌었다. ㅋㅋ 욕심이 많은 우리는 그렇게 저마다 여러 가지의 소원을 간절히 빌었다. 그 중에서 유독 소원을 빌지 않은 작은 아이를 보고 나는 빨리 기도하라고 재촉했다. 그러자 작은 딸의 뜻밖의 소원에 우리 모두가 깜짝 놀랐다. 뭐라고 했냐면,
“부처님, 생신 축하드립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작은 아이의 소원 앞에서 나는 점점 작아져갔다. 아이에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느냐고 물으니 조그마한 입에서 기특한 말이 쏟아져 나왔다. 부처님께서 오늘 지구위의 수많은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시느라 무척 힘들고 피곤하실 텐데, 부처님도 따뜻한 위로와 응원이 필요하시다고 하였다.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부처님이 작은 아이를 통해 무지한 내게 깨달음을 주시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였다. 배워도, 배워도 배고픈 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