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작은 아이가 학교 통근 버스를 기다리는 사이 ‘나는 행운이다’, ‘나는 희망이다’, ‘나는 사랑이다’, ‘나는 기적이다’, ‘나는 행복이다’, ‘나는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이다’를 소리 높이 외치며 긍정주문으로 온 몸의 세포를 한바탕 두들겨 깨운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는 방긋 웃으며 솟아오르는 해님에 우리 모녀가 서로의 그림자에 밟히지 않으려고 발버둥질 치며 장난의 세계에 빠진 탓에 긍정주문 외우는 시간을 깜빡 놓치고 말았다. 어느새 노랗고 커다란 통학버스가 우리의 가까이에 우두커니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깜짝 놀라 아이의 손을 잡고 달려가 둘째를 번쩍 들어 버스 안에 밀어 올렸다.
오늘은 금요일저녁이라 학교나 직장을 마친 우리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었다.
“엄마, 아침에 깜빡하고 ‘나는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이다’를 외치지 않았는데도 오늘 운이 엄청 좋았는데요. 학교에서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냈고, 선생님께서 칭찬을 3번이나 해주셨어."
“아, 정말? 혹시 다윤이가 오늘 아침에 까마귀 대신 전기 줄에 앉은 까치를 제일 먼저 발견한 덕분이 아니야?”
그러더니 큰아이가 시무룩해서 말했다.
“엄마, 새에 대한 편견을 그렇게 갖지 마. 까마귀도 한 마리의 날개 달린 새 일뿐이야.”
“그런가? 하지만 까마귀는 평생 아무리 샤워를 해도 까맣기만 한 걸? 편견이 아니라 오해인가? 까마귀야, 미안해.”
둘째인 작은 딸이 또 다시 말했다.
“엄마, 우리 가족 4명이니까 봄, 여름, 가을, 겨울 중에서 어떤 계절이 제일 마음에 드는지 말해보기 할까?”
“너는 어떤 계절이 제일 좋은데?”
“엄마, 나는 봄이 제일 좋아. 왜냐하면 아름다운 풍경들이 너무 맘에 들어. 특히 벚꽃이 만발하여 샤랄랄라라 떨어질 때 완전 좋아.”
갑자기 둘째가 말하던 벚꽃이 떨어지는 장면이 눈앞을 연상케 하면서 내가 그 속에 파묻혀 주인공이 된 기분을 떠올렸다.
“음, 아주 좋아.”
이번에 사춘기에 들어선 귀차니즘 큰아이를 보고 물었다.
“너는 어떤 계절이 좋아?”
“하아~, 난 아무거나. 엄마랑, 아빠랑 다 고르고 나머지 하나를 내꺼로 할게.”
이렇게 재밌는 놀이에 무슨 찬 물이라도 끼얹은 사람처럼 참 마음에 들지 않은 첫째의 대답이었다. 갑자기 둘째가 살짝 삐친 말투로 말했다.
“그럼 오빠는 겨울로 해. 엄마는 어떤 계절로 하면 좋을까?”
“음, 겨울은 엄마가 해야 맞아. 추운 겨울을 든든하게 이겨내야 따듯한 봄을 맞이하게 되는 것처럼, 너희들을 건강하게 잘 키우는 임무를 잘해내야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뿌듯하지 않을까 싶다. 겨울은 항상 봄을 위해 준비하고 맞이하는 계절인 것 같은 것처럼.”
갑자기 무심한 것 같던 큰아이가 입을 열었다.
“뭐야, 엄마, 겨울이 얼마나 좋은데. 여름에 태어난 나는 무더위에 익는 것보다 시원한 겨울이 더 좋은데.”
“오 그래? 알겠다. 그럼 네가 마음에 드는 계절로 겨울을 선택 해.”
다음으로 우리는 유일하게 입을 열지 않은 한 사람을 일제히 바라보았다. 멀리 떨어진 회사에 다니느라 어쩌다 주말에 한번 집에 돌아오는 남편이었다. 일주일동안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하는 탓에 할 말이 많을 텐데, 아니면 일주일을 건네 뛰는 탓에 할 말이 줄어든 건가? 그래서 내가 어울리는 계절을 말해주었다.
“음, 아빠한테 어울리는 계절은 가을인 것 같아. 담배를 끊으면서 가을에 떨어지는 쓸쓸한 단풍잎처럼 우울이라는 아이가 고개를 살며시 들이미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랬더니 남편이 아니라는 듯 한마디를 했다.
“나는 사계절보다 오계절이 좋아. 평일에도 오일근무, 오행성이 있는 것처럼. 그러니까 나는 사계절 중에서 없는 한 계절에 속한다는.”
“오잉? 이건 또 무슨 논리람?” 알고 보았더니 우리 집엔 엉뚱한 한 사람이 더 살고 있었다.
주말에 남편이 오는 날이면 우리는 저녁을 먹은 뒤, 당연하다는 듯이 저녁 산책을 한다. 그 시간만큼은 환한 가로등불빛을 가로질러 저 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을 세어가며 가족의 생각에 귀를 기울이고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삶을 받아쓰고 읽어내려 가는 소중한 순간이다.
그렇게 우리는 삶을 함께 걷고 뛰고 때론 달리면서 저마다의 성격에 따라 상황에 따라 사계절을 보낸다. 혹시라도 부족하고 결핍한 부분이 있으면 사랑으로 가득 충전하고 채워가면서. 행복하게.
어느 덧, 다이소 근처에 도착하자 둘째는 아무것도 사지 않겠으니 그냥 한번만 구경하고 가면 안 될까. 라는 눈치였다. 누가 보면 한 집식구 아니랄까봐 우리는 서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엘리베이터를 지나 계단을 향해 터벅터벅 올라갔다. 듣기 좋은 음악소리와 함께 눈앞의 아름다운 여러 가지의 화려하고 귀여운 물건들이 “어서 오세요.”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갑자기 중학교 3학년이 큰아이가 중학생 나이답지 않게 한마디를 했다.
“엄마, 레고 사줘.”
눈과 신경에 불이 켜지는 순간이다. 아직까지도 장난감을 좋아하는 큰아이를 보고, 끓어오르는 화를 참아가며 나는 차분하게 말하려고 애썼다.
“헐, 과연 너 답구나.”
“그래, 엄마, 언제는 나답게 살라며.”
갑자기 한쪽구석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남편이 들릴 듯 말듯 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무어라고 중얼거렸지만 음악소리에 잘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큰아이가 높은 소리로 외쳤다.
“아빠, 할머니와 살고 싶다고?”
아까 길을 걸으면서 작은 딸이, 아빠의 뒷모습이 어딘가 쓸쓸해 보인다고 하였다. 조그마한 세계에서 어떻게 저런 생각이 나올까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는데, 설마 정말로 엄마가 보고 싶었던 걸까?
얼마 후 남편이 다시 큰 소리로 대답했다.
“아니, 하모니카 사고 싶다고.”
순간 우리 가족은 그 상황에 재밌어 죽겠다고 죽어라 웃어댔다. 왜냐하면 내 귀에도 ‘할머니와 살고 싶다.’ 라고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생각하고 싶은 대로 살면서 각자 갖고 싶은 물건을 하나씩 사들고 그 곳을 빠져나왔다. 핑크색 플라워 팔찌를 산 작은 딸이 행복해 하며 오늘과 같은 날이 또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내가 매일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면 행복은 먼 곳이 아닌 가까이에 있다고 하였다.
“엄마, 엄마는 하나님이 좋아요? 부처님이 좋아요?”
그래서 욕심 많은 내가
“음, 둘 다 좋아하면 안 될까? 나는 다 함께 살고 싶은데.”
그러자 갑자기 남편이 뜬금없이 말했다.
“하나님과 부처님은 한 집식구가 아닌, 서로 다른 식구인데 어떻게 같이 살아?”
쩝. 그렇다는 나만의 생각인데.
“그럼 아빠와 오빠는 하나님과 부처님 중에서 누가 더 좋아?”
그러더니 둘 다 이구동성으로 “나.”
“ㅉㅉ. 하나님, 부처님 저 무지하고 욕심 많은 인간들을 용서해주시옵소서.”
나와 작은 딸이 각자의 신에게 기도를 하면서 부탁드렸다. 그리고 작은 아이가
“두 분 다 좋은 저녁시간 되시고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라고 마무리를 지었다.
오늘도 사람들이 어느 종교나 무슨 신을 믿느냐고 물으면 나는 모든 신을 믿으며 모든 신이 좋다고 한다. 사실이니까.
신은 내 주위에 내 마음에 내가 살아있는 모든 곳에 존재한다고 말이다. 내가 사물을 보는 시선에 존재하며 냄새를 맡는 후각에 존재한다. 맛을 음미하는 미각에 존재하며 아름다운 소리를 듣는 청각에 존재한다. 바람이 부는 곳곳에도 어딜 가나 존재한다. 바다에 가면 파도가 넘실거리고, 산에 가면 모든 식물들이 너울너울 춤을 춘다. 겨울이면 눈 꽃송이도 하늘하늘 이 땅으로 내려오게 만든다. 그러고 보니 신이 우리의 몸과 마음, 주위의 모든 곳에 지구를 떠나 우주와 전 세계 곳곳에 존재한다.
우리는 소원을 이루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소원을 이루기 위한 마음가짐과 태도가 중요한 것처럼 기도보다 배움을 우선으로 책을 많이 읽고 무언가를 꾸준히 노력하고 열정을 다하는 열린 마음가짐이 행운과 기적을 불러오지 않을 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