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생각은 자유이니까

by 조수란

언제부터인가 큰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햄버거와 치킨, 피자를 먹으면 몸에 알레르기가 생겼다. 치킨 때문인지, 밀가루 탓인지 원인을 찾아보기 위하여 마침, 주말이라 피자 한판을 사다주었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알레르기가 생긴다고 생각한 큰애의 어두운 얼굴이, 한판의 피자를 보자 너무 좋아하였다.


“피자먹고, 얼굴피자. 하하”


다행인 건, 한참을 지나도 알레르기가 생기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밀가루 때문이 아닌 모양이다.

주말이라 저녁을 먹고 우리 가족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산책에 나섰다. 무더운 낮과는 달리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부드럽게 안아주는 것 같았다. 오늘따라 구멍이 숭숭 뚫린 것 같은 구름 사이로 달님이 살며시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감탄하며 말했다.


“저 하늘을 봐, 구름이 옹기종기 모여서 달님을 감싸주고 지켜주는 것 같은 모습이 너무 예쁘지 않아?”


이때 남편이 뜬금없이 청개구리처럼 내 말을 흐려놓았다.


“악마의 구름이 달을 가렸어.”


“뭐야, 아빠, 구름과 달님도 자연인데 그건 너무 하잖아. 우리도 자연을 닮았고 자연의 일부라고요.”


작은 딸의 교훈에 아빠는 입에 달린 지퍼를 닫아버렸다.

공원에 도착한 우리는 구름다리 위로 걸어가는데 모기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둘째가 말했다.


“엄마, 모기의 별명을 지어주겠어.”


“뭔데?”


“뱀파이어, 남의 피를 쪽쪽 빨아먹는 이 세상의 모기들의 이름은 지금부터 뱀파이어야. 흠. 그리고 난 이다음 커서 자연의 싱그러운 냄새를 향수로 만들 거야. 아빠냄새도, 엄마냄새도.”


“엥, 우리도 냄새 있다고 무슨 냄새가 나? 아빠는 담배냄새. 그럼 엄마는?”


“아니야, 아빠에게서는 독특한 좋은 냄새가 나고 엄마냄새는 내가 어릴 때부터 맡아온 냄새인데 한번만 맡으면 자꾸자꾸 맡고 싶은 냄새야.”


“그럼 오빠냄새는?”


“없어. ㅋㅋ.”


나한테서 엄마의 냄새가 난다니, 한번만 맡으면 자꾸자꾸 맡고 싶다는 냄새라니. 그 냄새는 어떤 냄새일까? 한번 맡아보고 싶다. 옷과 팔을 들고 흠흠 거렸지만 아무냄새가 나지 않았다. 내 자신도 모르는 냄새를 아이가 맡을 수 있다니. 그러고 보니 나도 어릴 때 엄마 냄새를 좋아하는 아이였던 것 같다. 엄마만의 특유의 냄새가 있었다. 북적임 속에서도 엄마의 목소리만 들어도 내 엄마인지를 귀신같이 알아냈다. 이 세상에 나오면서 탯줄을 끊지만 엄마에 대한 사랑의 밧줄은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가 없고 오히려 더 단단해진다.


아름다운 밤 풍경에 몸을 맡기고 한참동안 생각에 잠겨있는데 둘째가 내 손을 잡더니 얼마 못가 앞에 보이는 그네를 타고 싶다고 하였다. 그네 밑에는 쇠사슬이 걸려있었는데 아이들이 다친다고 속도를 내지 못하게 한 거였다. 그네가 앞뒤로 움직일 때마다 쇠사슬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할 수 없이 공원에서 빠져나와 바다와 마주하여 있는 자그마한 숲속에 자리한 아담한 그네 벤치를 타러 갔다. 우리 셋이 앉아서 여유롭게 그네를 타고 남편은 더 높이 더 멀리 밀어주었다.


똑같은 그네인데 하나는 쇠사슬에 묶여 있었고 다른 하나는 자유로웠다. 쇠사슬에 달린 그네는 멀리, 높게도 날지 못했다. 제한된 구역에서만 타다보니 속이 갑갑하였고, 잔소리처럼 들리는 쇠사슬의 끌리는 소리가 귓전에 맴도는 것 같아 빨리 그 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쇠사슬이 없는 그네는 자유로워서 살 것 같았고 시끄러운 소리도 없었다. 오히려 마음의 날개를 달아 더 멀리, 더 높게 날 수 있어서 행복을 느꼈다. 똑같은 그네를 타면서도 이렇게 다르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본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이와 다름없을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매일 보이지 않는 쇠사슬에 묶여 갑갑한 마음을 토해내지도 못한 채 바쁘게 하루를 살아간다. 수많은 잔소리 속에서도 스트레스만 쌓여가고 제때에 배출해내지 못한 채 마음의 독소만 채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보이지 않는 쇠사슬이 우리의 마음을 묶어놓는다면, 우리는 다르게 선택하면 된다. 그 생각과 세계 속에서 걸어 나오면 다른 길이 보이기도 하고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질지도 모른다. 안에 갇혀있는 대신 바깥으로 걸어 나와야 가능한 일이고 다른 세상이 보이기도 한다. 자유로운 모든 순간들이 쇠사슬이 없는 그네에 있듯이, 우리는 그것을 선택하면 된다. 쇠사슬이 없는 그네를.

선택했을 뿐이고 생각을 바꿨을 뿐인데 모든 것이 달라진 것처럼, 인생의 방향과 속도 조절은 내 마음먹기에 달려있었다.

keyword
이전 01화9.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