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영혼의 비교

by 조수란

방향지시등을 켜고 도로에 들어섰다. 내 앞에 달리는 2층으로 된 트럭에 덩치가 큰 돼지들이 다닥다닥 모여서 어딘가를 향해 실려 가고 있었다. 한참을 달리다가 생각해보니 우리가 달리는 도로는 도살장으로 가는 방향이었다.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에서부터 동정심이란 녀석이 스멀스멀 찾아와 가슴까지 차오르면서 마음을 무겁게 짓눌러 놓았다. 내 뒤에 달리는 수많은 차들이, 천천히 달리는 트럭을 피해 너도나도 앞질러 갔지만 나 혼자만이, 무슨 장례행렬에라도 따라가듯 돼지들을 애도하는 마음으로 자동차트럭 뒤를 천천히 밟으면서 따라갔다.

며칠 전에 호기심이 많은 둘째가 질문을 했다.


“엄마, 개미랑 모기랑 어떻게 태어났을까?”


“음, 나도 잘 모르겠는데. 예전에 누가, 살아있는 모든 생명이 죽고 나면 영혼은 그대로 남아있는다고 했다. 그리고 전생에 부정적 생각을 많이 하거나 나쁜 일을 많이 할수록 영혼이 콩알만큼 작아진다고 하였는데, 혹시 욕심이 너무 많아 나쁜 짓만 하고 살다가 영혼이 작고 작아져서 요렇게 조그맣게 태어난 건 아닐까?”


“와, 신기하다.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러면 쟤네들, 전생에 나쁜 일을 엄청 많이 했나봐.”


“글쎄다, 그리고 고집이 센 사람들은 당나귀로 태어나고 게으른 사람들은 돼지로 태어나지 않을까?”


“아 그러네. 엄마, 다윤이는 지금부터 떼쓰지 않고, 내 방도 깨끗이 청소할 거야.”


“어머. 정말? 고마워, 기특한 우리 다윤이.”


항상 엉뚱한 질문으로 나를 난감한 상황에 빠뜨리거나 식은땀이 나도록 못살게 구는 아이 앞에서 나는 항상 무엇이라도 만들어 내야 했고 무슨 방법이라도 생각해내야만 했다. 그래야만이 비가 그치는 것처럼 상황이 종료되기 때문이다. 만약에 모른다고 대답하면 인터넷선생님과 물어봐달라고 졸랐고 그 의문과 호기심이 하얀 백지장위에 물감이 퍼져나가는 것처럼 꼬리에 꼬리를 이어 때론 기차 길보다 더 길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엄마, 그러고 보니 난 전생에 착하게 살았나봐. 다행이, 이번 생에 사람으로 태어나길 정말 잘했어. 이번 생에도 착하게 살아야지. 그래야 다음 생에 동물로 태어나지 않고 또다시 사람으로 태어나지.”


라고 다짐하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이번 생에 내 아이로 태어나 줘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랐다.

다행으로 생각하는 아이에게, 나는 마치 그 기회를 기다렸다는 듯이 영혼이 더욱 커지고 멋지게 성장하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초롱초롱한 눈이 동그래지면서 물었다.


“뭔데, 뭔데 그 비결이?”


“음, 그게 바로 배움으로 성장하는 거야. 우리의 육체가 음식을 먹으면 건강해지듯이, 우리의 영혼도 책 속의 영양가를 많이 흡수하여야 건강해지는 거랑 똑같아. 그래야 영혼도 살찌고 성장하면서 더욱더 커지지. 영혼이 커지면 창의적인 생각을 많이 하여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삶, 지혜를 나누어 주는 삶,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힘든 사람들을 도와 가면서 살아가는 삶,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아가는 삶, 내가 삶의 주인이 되는 삶. 이 외에도 많고도 많지.”


“네, 엄마, 다윤이의 꿈이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니까, 독서를 많이 하여 꼭 훌륭한 작가가 될 거야.”


아이의 소원을 들으면서, 달콤하고 행복했던 그 날의 장면을 떠올리면 매번 ‘피식’하고 웃음이 절로 나왔다.


깜빡이를 켜고 천천히 달리면서 생각했다. 오늘 지금 이 순간, 쇠창살에 갇힌 돼지들은 개미나 모기보다 덩치가 훨씬 크고 영혼도 영 클 텐데, 차라리 영혼이 작은 동물인, 개미나 날벌레들보다도 더 비참하고 못한 인생을 살다간다고 생각되었다. 우리에 갇힌 채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죽음이라는 참혹한 순을 맞이하여 양염이나 상추 속에 파묻히는 운명이 되어버리다니. 혹시라도 아이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설명해주어야 할까?


조그마한 날벌레들이 비록 영혼이 아주 작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과 부딪치고 모험을 헤쳐 나가면서 산속이나 풀숲에서 자신만의 인생을 맘껏 즐기며 살기라도 하지 않나? 산에 사는 멧돼지들도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이어나가면서 잘 살아가건만.


하필이면 그 동안 항상 틀에 갇힌 우리에서 편안하게 자라면서 인간이 주는 먹이를 탐욕스레 받아먹고 인간의 손에서 편안하고 안락하게 잘도 자라면서 철썩 같이 믿고 따르고 오늘까지 잘만 버텨온 이들의 운명은 왜서 이 모양이고 이 꼴인 걸까? 이 모든 삶이 한순간에 무너지면서 자신이 살아온 몸과 일생을 차갑게 배신당하고 죽음의 문턱에서 쓸모없이 내 던져지는 신세가 되였으니, 어쩌면 당연하지 않은 당연한 삶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쳐지나갔다.


어쩌면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아온 쟤네들을 보면서 동정심이 아닌 공감을 하였을지도 모르겠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 동안 내가 살아온 삶도 우리 속에 갇힌 쟤네들과 닮은 것 같다. 주어진 틀에 갇혀 주는 먹이를 잘만 받아먹고 편안함과 안락함을 만끽하면서 내 삶을 잃어버리지 않았나? 다행인건 서른아홉이라는 벼랑 끝에 다가왔다가 마흔이라는 줄에 매달리게 되면서 정신을 번뜩 차리고 보니 아슬아슬하게도 배움의 끈을 붙잡고 놓지 않은 희망의 덕분인 것 같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동물들과는 달리, 죽음의 방식은 저마다 틀리겠지만 우리도 언젠가는 인생이라는 삶의 끝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이 다가온다. 세상에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생각과 판단으로 살아가기도 한다. 한번뿐인 인생을 하루를 의미 있게 채워나가고 나다운 삶으로 사는 게 행복이고 아름다운 인생이지 않을까 싶다.


내 영혼의 크기는 얼 만큼 크고 또 얼마나 작은 지는 나도 모른다. 그저 매일매일 감사하게 배우는 즐거움 속에서 조금씩 발전하고 성장해나가는 삶이 행복이고 축복인 것 같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듯이, 성공보다 조금씩 성장하는 매일이 소중하듯이, 오늘도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지는 나를 발견하면서 이 순간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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