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강연시간에 아프리카에 사는 스프링복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스프링복은 풀을 뜯는 초식동물이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달린다고 한다. 보통 수백 수천마리가 무리 지어 사는데 무리에 휩싸여서 주변의 상황을 전혀 모르고 다른 놈들이 하는 것을 따라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앞선 무리가 풀을 뜯으면 뒤에 있는 무리들은 먹을 풀이 부족하게 된다. 그러면 자연히 뒤에 있는 놈들이 풀을 먹기 위해서 앞에 선 녀석들을 밀게 되고 앞선 녀석들은 더 많은 풀을 먹기 위해서 더 빨리 걷는다.
점점 속도가 빨라지면서 앞선 녀석들이 뛰게 되는데 뒤에 있는 놈들도 함께 뛴다고 한다. 그렇게 왜 뛰는지도 모르고 쉬지 않고 달린다. 그러다 낭떠러지를 만나면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서로에게 떠밀려 떨어져 죽고 만다.
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만원지하철이던 기차역이던 우리도 사람들의 뒤를 이어 타고, 뒤를 따라 내릴 때가 있다. 가끔 홍수처럼 밀려들고 밀려나가는 무리를 따라 계단을 오르고 내려가다 보면, 어느 새 내가 가는 방향을 잃어버리거나 목적지를 지나친다.
물건을 구입할 때도 그렇다. 예를 들면, 나는 물건을 살 때 후기가 제일 많은 것에 관심이 간다. 남들한테 잘 어울리니까 그 생각의 경로에 따라 나도 똑같은 걸로 구입을 해본다. 하지만 정작 물건을 받고 나니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닐 때가 많아 실망스러움이 얼굴을 덮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인터넷도 마찬가지다. 항상 구독자나 조회수가 제일 많은 것에부터 눈길이 먼저 간다. 이렇게 내 판단과 취향을 남에게 맡기고 무리에 휩쓸려가기를 좋아하고 선택하다가 나를 잃어버릴 때가 많다. 그래서 가족이나 친구들이
“오늘 뭐 먹고 싶어?”, “어디로 놀러갈까?”, “어떤 것이 좋아?” 라는 물음에 똑같이 ‘아무래나’로 간단하게 대답한다. 그러니까 나의 결정권을 상대방에게 떠넘긴 것이다.
더불어 가는 세상에서 무리에 있으면, 혼자가 아닌 함께 라는 생각에 항상 익숙하고 편안하고 안심이 된다. 회사에서도 그렇다. 남들이 만들어놓은 회로를 따라 가다보면 똑같은 시간을 일하고 똑같은 월급을 받음에 있어서 불안하지가 않다. 매달 차곡차곡 들어오는 월급날을 생각하면서 아이들도 맛있는 거를 사주고 부모라는 책임과 삶의 무게를 견딜 수 있음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때론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삶에 나를 내어놓으면서 더 열심히 더 많이 일하기도 한다.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에서 어느 날, 문뜩 자신에 대한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나는 그 동안 왜 바쁘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고 덩달아 살아간 자신을 되돌아보기도 한다. 그 동안 먹고 사는 일에만 집중하면서 정신없이 살다보니 무엇을 잃어버리고 무엇을 얻기 위해 살았는지 마음의 계산기를 두드려본다.
그 동안 아무 탈 없이 잘 살아왔다고, 자신의 임무를 잘 완수했기를 바라면서 자신을 토닥여주지만 무언가 허전한 느낌, 우울한 생각, 알 수 없는 불가사이하고 신비한 바깥세상이 더욱 궁금해지면서 자신이 삶의 방식이 과연 맞는 건지 헷갈릴 때가 많다.
무리를 따라가던 스프링복이 주변상황에 관심이 없는 채, 무리에 휩쓸려서 다른 놈들을 따라 왜 뛰는지도 모르고 앞만 보고 달리다가 결국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것처럼, 우리도 이와 마찬가지로 회사사람들의 뒤를 이어 열심히 일만 하다가 언젠가 잃어버린 건강과 돈 대신 차곡차곡 쌓여간 나이 앞에서 후회라는 무덤을 길게 돌아볼지도 모른다. 인생이란 사는 게 별거 없다고 한탄하면서.
내가 반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한 사람이다. 때론 죽기 살기로 일을 더 많이 더 열심히 더 노력하였지만 똑같은 월급, 똑같은 시간, 똑같은 회사생활을 보내는 동료들이랑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고 즐겁지도 행복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닌, 남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면서 하는 일이니까. 똑같은 일이라도 조금 더 재밌게, 조금 더 알차게, 조금 더 행복하게 하려고 애써왔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그만 애쓰고 싶어졌고 그만 노력하고 싶어졌다. 다시 살고 싶어졌다. 인생의 원점으로 되돌아 갈 수는 없지만, 지금부터라도 여기서부터 점찍고 다시 시작하고 싶어졌다.
그때까지만 팍팍한 살림에 퇴사는 엄두도 못내는 일인 만큼 조금씩 여유 시간을 이용해 독서에 매달리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아주 조금씩, 하나씩, 하루씩 무리에서 벗어나는 연습을 하고 책과 친해지기 시작하니 아무것도 모르는 스스로에게 의문과 질문이 생지기 시작하였고 세상의 바깥에 관하여 호기심이 생겼다. 그러면서 내가 조금씩 나아가고 내면의 생각이 미묘하게 변하기 시작하였음을 알아차렸고 자그마한 소망이 생겼다.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 퇴근 후, 저녁시간의 휴식을 조금 떼내어 그 소원을 풀어주기 위해 책과의 거리를 가까이 하였다. 그렇게 독서를 하면 할수록 부족한 내가 투명하게 보였고 정신의 양식을 먹을수록 배고픈 이상한 증세를 달고 살았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읽다가 갑자기 쓰고 싶어졌고, 쓰면서 이루어지고 싶은 것이 생겼다. 그렇게 조금씩 지금까지 견뎌왔다. 물론 오늘도 배우고 생각하고 읽고 쓴다.
다른 사람들의 만들어놓은 길을 따라가면서 일만하는 것이 아닌, 가끔씩 무리를 벗어나 나만의 숨 쉴 공간을 따로 만들어가기도 한다. 공기와 햇살과 바람과 자연 속의 모든 벗들과 친해지기 위하여.
사람이나 동물이나 무리를 벗어나 살 수 없다. 하루 종일 무리 속에서만 살면 집단사고에 끌려가고 집단감염에 걸리기 쉽다고 한다. 그것이 정신이던 전염병이던.
하지만 가끔 그 속에서 벗어나 멀리 떨어지면 주변의 아름답고 소소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행복하며, 가야할 길과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만들어놓을 또 다른 꿈과 희망이 보이기도 한다. 모든 것은 내가 선택하고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혹시라도 시원한 공기를 마시고 싶을 때, 복잡한 머릿속을 가셔내고 싶을 때, 가끔 무리를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고 소중할 때가 있다. 그럴 때엔 그 속에서 스스로 걸어 나오면 된다. 혼자가 아닌 혼자가 되고 싶을 때.
지금 이 순간이 밤 12시 45분. 하루 종일 내리던 비가 드디어 그쳤다. 숨을 들이 쉬고 내 쉰다. 신성한 공기로 인해 피곤했던 세포들이 설레기 시작한다. 떽. 안 돼, 나도 빨리 자야겠다.
오늘도 하루 종일 피곤에 절여 힘들게 지쳐있던 모든 분들, 지금 이 순간만큼은 평화로운 꿈나라에서 자신만의 아름다운 꽃길만 걸으며 행복해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