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남편과 함께 시원한 캔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방에 있던 작은 딸이 나오면서 영어에 관해 말했다.
“엄마, 아빠 영어이름은 이상하게도 성을 이름 뒤에 붙여요. 예를 들어 김다윤을 다윤 김이라고 하고 김준림을 준림 김이라고도 해요.”
그러더니 남편이 그 말에 공감하면서 대답했다.
“그래, 맞아. 아빠이름 김화길을 화길 김이라 하고 엄마 이름 조수란을 수란 조라고 하지.”
“ㅋㅋㅋ 수란조라니까 갑자기 술안주란 말이 생각나네.”
항상 엉뚱한 말로 깜짝깜짝 놀라게 만드는 작은 아이의 말에 우리는 배꼽잡고 웃었다.
어쨌든 조수란은 아주 평범한 이름임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이상한 쪽으로 흐를 때가 많다. 성씨만 해도 그렇다. 조가일 뿐인데 혹시라도 뒤에 작가를 붙이면 조작가가 되기도 한다. 무엇을 조작한 것도 아닌데 듣기가 영 그렇다. 그럴 때면 차라리 조수란이라고 부르는 게 훨씬 좋을 듯싶다.
그러면서 헝클어진 머리를 다시 묶어달라고 고무줄을 내미는 딸에게 내가 말했다.
“머리를 예쁘게 묶어주었으니, 침실에 있는 엄마휴대폰을 좀 갖다 줄래?”
“ㅠㅠ ㅉㅉ. 엄마도 언젠가부터 마음에 계산기를 달고 사네.”
“왜?”
“엄마가 다윤이 머리를 묶어준 대가로 휴대폰을 갖다 달라고 하시지, 저번엔 엄마가 체했을 때 안마해주면 휴대폰을 봐도 된다고도 하시지 않나.”
그러고 보니 내가 요즘 본의 아니게 마음에 계산기를 달고 사는 사람이었다.
저번 강연시간에 톨스토이가 지은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이야기에 관해 들었다. 집에 오자마자 인터넷을 검색하면서 이야기 속의 파홈이 땅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욕심을 버리지 못한 처참한 결과를 들으면서 절로 한숨이 나왔다. 요즘 우리 집에서도 땅에 관한 문제로 신경이 예민해지긴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게 뭐냐면, 여섯 형제를 둔 아버지가 제일 큰 맏아들이었다.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얼마 안 되는 밭을 갈아 우리 식구들을 먹여 살렸다. 그러다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아버지를 제외한 동생들은 자신들의 밭을 버리고 뿔뿔이 흩어져 시골을 벗어나, 번듯한 도시생활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시골생활이 더 익숙해진 아버지는 황무지가 된 형제들의 밭을 버리기 아까워서 열심히 갈고 씨를 뿌렸다. 동네에 사는 사람들도 하나 둘씩 도시로 이사 하면서 초라한 시골을 미련 없이 떠나갔다.
어느 날, 마을 이장님이 갑자기 아버지를 찾아와 밭주인의 이름과 위치를 등록하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밭이 무효가 된다고 말이다. 이로 인해 아버지는 이 소식을 맨 처음으로 동생들에게 알렸지만 그 동안 도시에서 번듯하게 생활하는 고모와 삼촌들은 세금이 붙는 밭을 사양하겠다며 아버지에게 전부 떠넘겨주었다. 지금까지 노력과 정성으로 몇 십 년을 일궈온 밭이라 함부로 버리기 아까운 아버지는 그렇게 동생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그 많은 밭을 전부 아버지 명의로 인수했다.
도시생활에 잘나가는 동생들은 그렇게 또 다시 모습을 감추었고, 밤낮으로 부지런히 일을 해오 신 아버지와 어머니는 언니와 나를 출세시키기 위해 지칠 줄 모르시면서 수많은 노력과 피땀으로 그 많은 밭을 한땀한땀 일구어 냈다.
자꾸만 변하는 정책 앞에서 어느 덧, 세월이 흐르고 흘러, 자식인 우리가 벌써 반평생 넘게 살아왔다. 어느 날, 어마어마하게 놀라운 소식이 온 동네에 울려 퍼졌다. 글쎄 우리가 사는 농촌시골에 도시 개발한다는 내용이었다. 하필이면 우리가 땅이 제일 많은 1호였다. 그러니까 만약 정말 그렇게 된다면 제일 가난하게 살아온 우리가 동네에서 대박 1위 부자가 되는 셈이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몇 십 년 자취를 감추었던 동생들이 그 소식을 듣고, 하나 둘씩 연락 오기 시작하였다. 몇 십 년 전 자신들이 버리고 간 밭을 도로 내놓으라고 말이다. 어른들의 일에 내가 관여 할 바가 안 되지만 나도 인젠 마흔에 들어선 어른이 아니던가. 쩝.
동네 사람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양심 없는 동생들에게 땅을 절대로 넘겨주면 안 된다고 말해주지만 평생 시골에서 살아 온 아버지는 골고루 나누어 주기로 결론을 내렸다. 동생들도 책임져야할 가족이 있고 손자 손녀가 있으니 그 많은 돈을 혼자가 아닌, 나누어 갖기로 결정을 내린 거였다.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아직은 도시개발이 밀린 터라 돈이 내려오지 않았는데도 아버지의 형제들은 밤낮으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꼽아 기다린다.
나는 그런 고모와 삼촌들이 정말 미웠지만, 이와 달리 오랜만에 보는 동생들의 얼굴을 바라보는 아버지는 좋으신 모양이다. 눈가에 웃음꽃이 사라지지 않으셨다.
요즘 따라 그 동안 티격태격하던 두 아이가 싸우지 않고 사이가 좋아진 것을 보고 어쩌면 아버지의 생각이 현명하였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에겐 돈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었으니.
어떨 때에는 차라리 도시개발 하지 않고, 가끔씩 내 아이들을 데리고 전처럼 아버지가 사는 집에 놀러가고 자연과 함께 어울리면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많다. 왜냐하면 그 동안 도시개발을 한답시고 아버지가 시골을 떠나, 도시에서 살게 되면서 다른 여자를 만났기 때문이다.
한평생 엄마랑 함께 살아온 정을 뒤로한 채, 수십 년을 과부로 살아온 그 여자랑 결혼도장까지 찍었다고 한다. 그렇게 아버지와 우리는 보이지 않는 상처를 안고 지나간 세월을 그리면서 모든 것이 꿈이 아닌 현실임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멀어져가고 점점 더 작게, 멀리서도 보이지 않을 만큼 떨어져 살면서 우리에게 남은 세상에서 가장 유일하고 소중한 엄마에게 모든 정성을 쏟아 부었다.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잘 사시고 행복하길 바라면서.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이야기 속의 파홈이 죽음을 맞이하게 된 원인은 땅을 얻고자 무리했기 때문이었다. 멀리 나갔다가 해지기 전에 들어오려고 했으니 지칠 만큼 지쳐서 결국 죽게 되었다고 한다. 땅 욕심을 부리던 주인공이 결국 죽음을 맞이하고 죽은 후 그가 차지한 땅은 고작 시신을 뉘일 정도의 땅이라고 한다.
아직까지 비록 도시개발이 시작되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가정을 잃고 그 여자는 사고로 큰 아들을 잃었다. 고모와 삼촌들은 하나 둘씩 건강을 잃어가고 있었고, 기다리다 지친 나머지 또 다시 모습을 감춰버렸다. 사람이 죽으면 그가 차지하는 땅은 고작 시신을 뉘일 정도라고 하는데 욕심이 과한 이들도 어쩌면 이야기 속의 파홈과 다를 게 없다. 아버지는 과부인 그 여자를 얻기 위해 가족을 잃었고, 그 여자는 아버지의 땅을 얻기 위해 아들과 서로 다투다가 사고로 목숨까지 잃었다.
고모와 삼촌들은 자신들의 땅을 되찾기 위해 형의 밭을 빼앗으려다 크고 작은 병마와 싸워야 했고 건강을 빼앗기는 상황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사람이 죽으면 고작 시신을 뉘일 정도의 땅을 차지한다고 하는데 무엇 때문에 과한 욕심으로 자신을 괴롭게 만들까? 사람들이 도대체 무엇을 더 원하고 무엇을 더 바라기에 서로에게 상처주고 서로를 용서하지 못하는 걸까?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이 있고, 한 평의 밭에서는 한 평만큼의 수확만 거둘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마음에 계산기를 달고 사는 대신 그 시간을 나에게 투자하고 배움이란 씨앗을 시간에 뿌린 만큼 거두어들인 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우리는 그 동안 남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슷한 삶을 살기에 비슷한 결과를 살아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만약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살고 싶고 변화하고 싶다면 낡은 생각 속에서 걸어 나와, 내가 나에게 투자한 만큼 성장하고 달라질지도 모른다. 욕심과 집착을 내려놓을 때, 마음의 계산기를 달고 살지 않고 나무처럼 조건 없이 ‘무’조건으로 내려놓고 내어놓을 때 내 삶의 조그마한 틈 사이로 빛이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하고 보이지 않던 사랑과 감사함이 찾아온다.
우리는 1순위인 나를 사랑하려면 미루기와 핑계, 게으름과 유혹에서 빠져나오고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의 관계를 다이어트 하면서, 구렁텅이에 빠진 나를 다시 건져내기 위해 삶의 계산보다도 꿈의 계산을 위해 매일 매순간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배워나가는 게 현명한 생각 이지 않을까 싶다. 오늘도 그렇게 기적으로 만드는 내 자신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