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검소했던 생활을 잘 견뎌내 아이들이 조금씩 커가면서 어린이집과 초등학교를 보내고 나니 드디어 조그마한 회사에 취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정도 삶은 안정되고 맞벌이 부부로서 우리는 열심히 일하고 돈을 모았다.
가끔씩 회사에서 야근을 할 때면 밤 9시에 퇴근해서 앞서가는 마음을 따라잡으며 부랴부랴 어린이 집을 향해 부리나케 뛰어갔다.
어렵게 문을 열고 들어서는 나를 발견할 때면 3살 난 딸아이는 쏜살같이 달려와 품에 와락 안기곤 하였다. 조그마한 아이의 이슬 맺힌 초롱초롱한 두 눈에는 눈물방울이 눈초리에 무겁게 매달려 있었다. 그때마다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그저 원장선생님께 죄송하다는 말만 남기고 아이를 품에 안고는 매번 어색한 발걸음으로 돌아서곤 하였다. 한동안 회사에 야근이 잦다보니 어린이 집에 늦게 데리러 가는 일은 어느덧 일상에 가까워져 버렸다.
어느 날, 항상 맨 마지막까지 어린이 집에 남아 있던 작은 아이가 고개를 푹 숙이면서 원장선생님에게 한마디 하더란다.
“우리 엄마가 아무래도 저를 버리신 것 같아요." 라고 말이다.
나는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꾹 참고 딸의 고사리 같은 손을 잡고서 어린이집 마당으로 나왔다.
“다윤아, 엄마랑 아빠는 우리가족을 세상에서 제일 사랑한단다. 다윤이와 오빠를 맛있는 거 많이 사주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해. 그러니까 우리 힘들어도 조금만 참자~”
한참 엄마 품을 그리며 사랑이 필요한 3살짜리 아이한테 이런 말이 통하기나 한 걸가? 그날 밤, 눈초리에 눈물이 글썽하게 매달린 채, 잠들어 있는 작은 애와 피곤하게 자고 있는 큰애를 품에 끌어안고서 말 못할 이 서러움과 아픈 마음을 고독과 함께 흘러 보냈다.
그 동안 나는 매일 열심히 살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삶은 왜 이렇게 하루하루 힘들고 지쳐만 갈까?
며칠 동안 고민 끝에 그냥 이대로 열심히 살지 말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그리하여 내린 결론은 달리던 삶을 잠시 멈춰 세우고 느리게 가는 길을 선택해보기로 하는 거였다. 어쩌면 남들과 함께 똑같이 달리는 길이 우리 가족에겐 너무나 버거웠고 조그마한 아이들의 마음에 아픈 상처를 남겨놓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일해서 행복해지는 것도 아닌데 나는 그 동안 무엇을 위해 열심히 달려왔을까? 우리가족에겐 열심히 사는 것보다 조금씩 자라고 있는 아이의 마음을 먼저 보듬어주고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것이 무엇보다 더 필요한 상황이다. 그 동안 일하면서 애들 때문에 항상 불안과 걱정을 안고 있는 내 마음은 어둠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던 것 같다.
매일 퇴근하자마자 어린이집에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에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고 작은 아이의 얼룩진 눈물 자욱이 자꾸만 눈앞에 나타나 마음 한구석을 아프게 긁어놓았다. 상황을 어찌할 수 없다면 내 생각을 바꾸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 열심히 살지 말자. 최선을 다해 지금껏 열심히 살았어도 인생은 이 모양인데. 애들은 사랑을 먹고 자란다고 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아픈 가시가 마음한구석에서 조금씩 자라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일하던 회사를 과감히 그만 두었고 돈을 버는 것은 전적으로 남편의 몫이 되었다. 그리하여 매일 아침 큰애를 학교에 보내고 난 다음 작은 딸의 손을 꼭 잡고 한동안은 어린이 집에 제일 늦게 데려가고 제일 먼저 데려왔다. 저녁이 되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차리고 한 가족이 오순도순 모여 앉는다. 그럴 때마다 오랜만에 잃어버린 행복을 되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알콩달콩 소중한 한 가족의 소소한 즐거움을 만끽했다.
그 동안 시간에 쫓기면서 매일 바쁜 아침식단으로 시리얼과 우유 아니면 컵라면을 때우던 아침을, 따뜻한 밥으로 꼭꼭 챙겨 먹여 보냈고 주말이 되면 항상 밀린 빨래나 청소를 했던 일상을 바꿔, 남산공원에서 시원한 공기를 마시면서 자연과 함께하기도 했다. 때론 아이들의 손을 꼭 잡고 도서관에 가서 이야기 속에 파묻혀 동화나라에 풍덩 빠져보기도 하고 학교운동장을 뛰어다니면서 술래잡기 놀이도 하였다. 아이들은 너무 신나게 놀았고 주변의 아름다운 꽃들도 더욱 진하고 예쁘게 보였다.
때론 삶에 브레이크를 밟고 주변을 둘러보면 가야할 길이 나타나고 해야 할 책임이 보이며 이루어야 할 꿈이 생기기도 한다. 열심히 사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어쩌면 내가 그 때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야함에 힘듦을 멈추지 않고 끝까지 견디면서 사는 일상을 보냈더라면 지금처럼 독서를 알지 못했을 것이고 글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때론 삶에서 힘을 빼고, 삶의 브레이크를 밟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인생은 혼자달리는 것이 아닌 함께 달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돈과 명예를 위해 앞만 보고 열심히 혼자 달린답시고 마음에 계산기를 달고 살아가는 사이, 세월이 어느새 내게서 가만히 어머니를 빼앗아 가고 조금씩 커가는 아이들과의 소소한 행복을 훔쳐가기도 한다.
열심히 앞만 보고 달리면 인생의 종착점에 빨리 도착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멀리 간 다음 뒤돌아보고 후회하는 대신 천천히 달리면서 아름다운 풍경과 소소한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사는 것이 때론 더 나을까 싶기도 하다. 가끔은 삶에 힘을 빼고 바닥난 에너지를 충전하면서 사는 일이 더 즐겁고 행복할 때가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