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바람’에게 전하는 그 말

by 조수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바람’이 존재한다. 올 한해에도 가족모두 건강하길 바라고 소원이 이루어지길 바라고 부자가 되길 바라고 승진하길 바라고 시험에 합격하길 바라는 등 마음속에 수많은 바람을 안고 살아가기도 한다.


고등학교 시절에 친한 친구가 있었다. 일찍이 부모를 잃은 그 친구는 성격이 쾌활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어 어딜 가든 환한 불빛과 같은 아름다운 존재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다. 그 친구의 입에서 톡톡 튀어나오는 유머가 뇌 속의 필터를 통과하지도 않은 사이에도 천재적인 아이디어로 상황을 교묘한 말로 잘 볶아놓아 사람들을 배꼽 잡게 만들었다.


그러던 그 친구가 어느 날, 하늘에 계신 부모님이 생각나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자취방에서 얼큰하게 술 마시고 우리는 전등을 켜지 않은 채 창가에 희미하게 비추는 달빛을 향해 몸을 기댔다. 쥐 죽은 듯이 고요한 침묵 속에서 서로 마음속의 바람을 생각하며 커튼을 친 것처럼 아름다운 하늘의 별빛을 올려다보았다. 어둠을 침범하지 않는 달빛과 별빛은 제 자리에서 내면의 아름다움을 화려하게 뽐내지 않고 그저 빛을 반짝이며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손톱처럼 생긴 조각달도 동그랗게 변해 가기위한 바람으로 남아있는 비움을 마저 채워 가느라 부지런히 자신을 완성해 나가는 듯하였다.


친구는 갑자기 전화기를 찾더니 누군가에게 마음속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전화버튼을 꾹꾹 누르고 있었다. 그리고는....


“엄마, 아빠, 오랜 만이예요. 저예요. 엄마 아빠의 딸. 그 동안 하늘나라에서 잘 지내셨어요? 오늘 너무 보고 싶어요. 엄마, 아빠가 살고 있는 그 곳은 괜찮으세요? 혹시 불편한 데 없으세요? 아, 그리고 저는 잘 있어요. 오빠 랑도 잘 지내구요. 오빠는 요즘 새로운 여자 친구를 사귀였어요. 아주 똑똑하고 착한 여자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우리걱정은 하지 말아요. 오늘 친구랑 술 한잔마시고 나니 어릴 때 엄마 아빠랑 우리 한 가족이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았던 추억이 떠올라서 전화 드렸어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


“띠띠띠띠..........띠” “...................”


소리와 함께 눈물이 두 볼은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흐느끼는 친구의 울음소리를 들은 걸까? 갑자기 창문가에서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오고 있었다. 마치 그 친구의 그리움을 바람에 싣고 하늘높이 전달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바람아, 잘 부탁해. 오늘 내 친구의 바람을 데리고 하늘 높이 저 먼 곳으로 날려 보내줘. 그리고 친구의 부모님에게도 자식이 부모에 대한 그리움의 간절한 마음과 따뜻함을 꼭 전해주려무나.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의 간절한 바람이 전화기를 타고 하늘나라에서 전해들은 부모님이 마치 바람을 타고 내려와 속상한 그의 마음을 보듬어주고 그리움을 데려가려는 듯하였다.


나는 그런 바람이 고마웠고 마음속으로 그 바람에게 속삭였다.

바람아, 너는 비록 실체가 없어도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단다. 너는 가끔 우리 집에 들러서 젖어있는 빨래도 마르게 해주고 집안 곳곳에 축축한 것을 부드럽게 닦아주기도 해주지.


몸에 난 상처도 호호 불어 아물게 해주고 눈가가 촉촉한 내 아이의 눈물도 닦아준다는 것을. 네가 필요로 한 이 세상이 너를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가고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지. 네가 바퀴에 들어가면 땅위에 굴러가는 모든 것들이 잘 달릴 수 있고 네가 산으로 날아가면 모든 식물들이 춤을 추면서 반겨주기도 하지.


네가 바닷가로 가면 파도가 출렁이면서 넘실넘실 춤을 추기도 하면서 말이야. 하지만 네가 한번 화를 내면 태풍이 휘몰아치고 힘이 닿는 것을 무너뜨리기도 하지. 때론 찬바람을 매섭게 휘몰아쳐 사람들의 뺨을 때리기도 하고 한번 분노를 일으키면 바다와 휩쓸려 홍수를 일으키고 모든 것을 잠겨버리기도 하고 말이야. 하지만 너는 우리에게 가만히 알려주지. 이 모든 것을 극복하면서 상황을 잘 견뎌내고 조절하는 힘은 결국 내면에 존재한다는 것을, 어떤 상처는 시간이 필요하고 세월이 치료해준다는 것을. 어쨌든. 고마워. ‘바람’아, 앞으로도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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