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글쓰기를 따뜻하게 호호 익혀 가는 중

by 조수란

글쓰기는 나의 네모나고 뾰족한 생각을 갈고 닦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예쁘게, 둥글게.

사람들은 흔히 글쓰기를 아름다운 창조의 과정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내 무뎌진 생각을 머릿속에서 맷돌을 돌리고 갈듯이 어지러울 정도로 생각을 굴려 겨우 짜낸 맛이 싱거울 때가 많다. 양념을 보태고 맛을 내야 했지만 잘 안 될 때가 많은 것 같다. 내 글은 지금 고통을 만들고 어둠을 통과하는 중이라고나 할까?말은 입을 통해 나를 표현한다면 글쓰기는 연필이라는 도구를 통해 나를 이 세상에 알린다고 하면 될 것 같다.


내 육체가 다른 육체를 낳으면 내 정신은 글을 낳는 것 같다. 글을 낳는 과정도 어쩌면 산모처럼 산통 진통 고통을 겪는 과정을 거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였다. 태어나기 전 갓난아기가 뱃속에서 열 달 동안 엄마의 영양과 수분을 빨아들여 조금씩 커가듯이 좋은 글을 낳으려면 마찬가지로 열 달을 꾸준히 책속의 영양과 수분을 흡수하여 뇌 안의 생각을 조금씩 자라게 하는 것 같다.


그러면 머릿속에서 생각을 심어주기 시작하는 글이 모여 때론 감동을 슬픔을 울림을 내 몸 전체에 전해주면서 아름다운 문장이 탄생하기도 한다. 어쩌다 가끔씩. 책속의 수분과 영양을 충분히 보충하고 흡수하고 사색하면서 받아들이면 멋지고 잘생긴 글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가 있다.


글을 쓰면서 때론 생각과 마음의 속도를 낮추어보기도 한다. 오직 나에게 집중하여 내 이야기를 글로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밖에 나가 시원한 공기를 흠뻑 들이마시면서 자연에게 말을 걸어본다. 때로는 길옆에 자라는 식물과 대화를 나누어보기도 하고 풀숲에서 들려오는 매미와 귀뚜라미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하늘에 걸려있는 구름에게도 말을 걸어보고 꿈틀거리는 지렁이에게도 길을 내어준다. 아름다운 글을 쓰려면 생각이 아름다워야 하고 아름답고 건강한 삶을 살아야 하며 멋지고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처럼 글쓰기는 나를 조금씩 변화시키고 내면을 성장시키면서 아름다운 세상을 살아가는 흔적과 상상속의 장면을 남겨주는 멋진 카메라 같은 존재인 것 같다. 글쓰기는 내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도구이자 내가 살아가는 흔적을 남겨주는 그림자와 같은 친구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글쓰기는 마음이 급해서 글이 잘 써지는 게 아니고 필을 들었다고 바로 써지는 게 아니다. 쉼표와 멈춤이 있고 속도나 떠오르는 타이밍이 있다. 나에게 그렇다는 얘기다. 때문에 거리유지를 잘하고 떠오르는 아이디어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도록 필을 들고 종이위에 바로 기록하는 것이 글을 잘 쓰는 요령이자 필요한 절차인 것 같다.


글쓰기뿐 만 아니라 동료나 배우자의 관계에서도, 자동차가 달릴 때의 속도에서도 똑같이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자동차의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를 잘 조절하듯이 해야 한다. 손난로처럼 멀리하면 춥고 가까이하면 화상을 입는다고도 하였다. 너무 멀리 가도 안보이고 너무 가까이에 있어도 눈을 가린다고 한 것처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이어나가는 것이 글쓰기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글쓰기는 내 마음과 생각의 크기에 따라 내 삶이 종이위에 크거나 작게 그려진다. 생각이 잘 익어서 글을 낳을 때가 되면 하얀 백지 속에 생각나무의 가지가 쭉쭉 뻗어 나갈 수 있도록 밖에서 연필이라는 지팡이를 짚고 대기하는 것 같다.


항상 성질 급한 마음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나는 한 측면만 바라보고 바로 결정 내리고 후회를 맛본 적이 많다. 예를 들면 코끼리를 너무 가까이에서 보면 코나 다리나 귀 등 한쪽 부위밖에 안 보이듯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여 전체를 바라보아야 잘 보여 지는 것 인 데도 말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선명하게 잘 보여 진다고 할 수 있다.


글쓰기를 호호 익히면서 나가다 보면 여름의 흔하게 내리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새 소리도 아름답게 들리기도 한다. 한 모금의 물로 목마름을 적셔주는 오아시스처럼 달달하고 시원하다는 걸 느끼면서 감사하게 생각할 때가 있는 것처럼, 글쓰기는 생각의 온도라고 할 수 있다. 때론 차갑게 때론 뜨겁게 온도를 잘 조절하여 아름다운 글을 탄생시키는 순간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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