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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지 Jun 19. 2022

(소설) 아담과 애플 25

"영화 <에펠>에서 에펠이 그런 말을 하더군.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모두 볼 수 있게 파리 한가운데 탑을 세우겠다}고 말일세."


너무 파래서 바다 아래에 아무것도 없을 것만 같은 푸른 바다를 아련한 눈빛으로 지그시 응시하며, 손정환이 파리 마르스 광장의 에펠탑 이야기를 꺼냈다.


"공교롭게도 말이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도 마르스 광장이 있지 않은가. 러시아인들이 율리우스력으로 날짜를 계산해서 '2월 혁명'이라고 부르든 '2월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라고 부르든, 러시아에서 발생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기념한다는 점에서 마르스 광장은 에펠탑이 보이는 파리 마르스 광장만큼이나 대단한 의미가 있는 곳이 아닐까 싶네."


"파리 마르스 광장은 고대 로마의 투기 훈련장이었던 Campus Martius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하지 않나. 군신 마르스의 광장이라~ 마르스(Mars)는 로마 신화에서 전쟁을 의미하는 군신(軍神)을 뜻하는 걸 보면, 인류가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에 의심이 들곤 해. 인류 전체는 아니어도 적어도 소수는 전쟁을 몹시도 갈구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거든."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마주친 황당한 사건을 목도한 사람처럼, 주성훈의 의심에 찬 눈초리가 차가운 바다처럼 점점 더 서늘하게 깊어져 갔다. 멀리서 바라보는 바다는 언제나 평화롭고 신비롭다. 바다보다 한 겹 짙은 파란색을 띠고 있던 하늘에 붉은색들이 번져 갔다. '시간성' 속에서 생명의 본질을 드러내야 하는 존재의 불가피성은,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생소한 감정들을 이끌어낼 때가 있다.


"에펠탑 이야기를 꺼내는 정환이는 가끔씩 아나키스트 같다가도, 때로는 혁명가 같기도 하고.. 고딩때부터 여태껏 수상쩍단 말이지. 일관성 있게 수상해 보여서 그건 칭찬할만해.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에펠탑을 보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참 많이 몰려가기도 하는 걸 보면,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모두 볼 수 있게 하겠다던 에펠의 뜻 성공을 거둔 셈이 되는 건가?"


수평선 위로 어느덧 하늘이 붉어져갔다. 술 서너 잔에 벌써 취기가 올라 양 볼에 노을이 내려앉은 권진아가, 마르스 광장의 어원을 찾아 고대 로마로까지 기억을 더듬어간 주성훈을 바라보던 눈빛을 이내 손정환에게로 돌리며 말을 이어갔다. 전쟁을 원하는 인류가 있다는 주성훈의 말에 은정의 고개도 끄덕여지고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형~ 우리랑 같이 일 좀 합시다. 형이 잘하는 일 있잖소?"


손정환이 그의 사촌 형 손정식에게 유쾌한 어조로 제안을 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했다면서~ 인간의 본성은 정치를 필요로 하면서도 동시에 정치를 파괴하려 들기도 한다고 형이 예전부터 말했잖소.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이 다 같이 먹고 마시고 사랑할 수 있는 그 단순한 사명을 완수하도록, 우리가 새로운 정당 한번 만들어 봅시다."


하늘과 바다를 물들이던 붉은빛이 사라지고, 이내 사방에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었다. 손정식은 제안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처럼 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러러면 우선 사람들을 모아야겠지. 유튜브 채널을 하나 만들어야겠군. 중앙당도 중앙당이지만 지역별로 채워야 하는 당원 모집을 하려면, 정당의 목적과 정책이 민중들로부터 당위성을 부여받아야 해. 출전 선수 확보에 앞서 당원들 모집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 모두 동의한다면, 내 기꺼이 동참하지. 민중이 곧 정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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