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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지 Sep 02. 2022

세상살이 딜러

물론 나의 독자님들의 숫자가 극심하게 빈곤하여, 이 가운데 외제차 딜러를 하는 분은 안 계실 거라고 믿어본다. 이번에 남편이 대형 SUV 외제차를 사겠다고 설쳐대시는 통에, 나는 또 본의 아니게 외제차 시장의 구조를 조금 들여다보게 되었다.


세상 사람 누가 봐도 만만한 남편과 사느라, 나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사람으로 똥줄 빠지게 거듭나는 중이다. 하지만 세상만사 다 일장일단은 있다. 만만하고 쉬워 보이는 남편은 세상을 매우 수월하게 사는 편이고, 깐깐해 보이는 아줌마는 이것저것 분석하느라 눈가에 늘 다크서클이 내려앉아 있다.


하다못해 시장에서 생선을 살 때도 우리는 "얼마예요?"라고 값부터 물어본다. 그래서 우리가 외국여행을 갈 때도, 다른 건 몰라도 "How much?"부터 익혀두는 것이다.


그래, 우리 남편도 여기까진 비슷하다. 그런데 그다음 단계에서부터가 문제다. 불문법처럼 전 세계가 암묵적으로 합의한 시장 질서는, 구매자는 판매자에게 "깎아주세요"라는 말을 당연히 할 수 있것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우리 집 양반은 그 단계에서부터 오류가 발생한다. 본인이 구매자라는 것을 잊고, 갑자기 판매자의 입장에 서는 것이다. "깎아주세요"라는 말 대신에 "저 사람도 먹고살아야지"라고 말하는 남편의 마음을 아주 모르는 건 아니지만, 거기까지 우리가 배려하는 것은 사실적으로는 월권이다. 손해보고 파는 장사꾼은 없기 때문이다.


남편이 친구의 소개로 모 카페에서 만났다고 하는 사람은 외제차 상사에 소속된 전문딜러가 아니었다. 내가 상대해보지 않았으니 그의 정체를 정확하게 기술하기는 어려울 듯하지만, 여러 회사의 캐피털 상품을 비교해주고 영업점 딜러와 수수료를 나누어 챙기는 일명 "떴다방" 부동산 중개업자와 비슷한 포지션을 갖는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일단 외제차는 그 회사와 업무 협약을 맺고 있는 캐피털 금리가 매우 비싼 편이다. 우리 집 같은 경우엔 차라리 제1 금융권 대출을 받아서 구매 금액을 완납 처리하고, 구매자는 제1금융권에 원리금을 납부하는 방식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물론 프로모션은 딜러마다 다르게 적용하므로 몇 군데 견적을 받아보는 게 합리적이다. 지난 세월 동안 신뢰할만한 인간관계를 맺어놓은 딜러가 있다면, 설령 그 딜러가 백만 원 정도를 더 취한다 할지라도 그걸 허용하고 싶어질 때도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지만 비즈니스 관계에서 싹트는 인간의 정이라고 해두자. 눈먼 돈도 엄한 놈에게 한심스럽게 빼앗기느니, 차라리 앞으로도 보고 싶은 놈에게 주자는 게 내 지론이다.


내(구매자)가 몰라서 빼앗긴다고 생각하는 상대(판매자)가 있는가 하면, 내(구매자)가 다 알면서도 져주는 거라는 걸 아는 상대(판매자)가 있다. 전자의 판매자는 자기가 고객을 후린다고 생각하지만, 후자의 판매자는 고객이 지휘권을 휘두르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나는 어떤 계약을 할 때, 가급적 후자와의 비즈니스를 성사시키는 편이다.


다른 집 마누라들은 전문 마사지사 연락처를 받아놓는가 하면, 이번엔 네일아트가 맘에 들지  않는다느니 피부과 선생 실력이 어떠니 하는데, 우리 집 아줌마는 세상이라는 학교에 다니고 있는 늙은 남편이 오늘은 또 무슨 실수라도 저지르고 오는 건 아닐까 늘 노심초사다. 어차피 그의 인생은 그의 것인데도 말이다.


남편이 어리숙하게 계약하고 오면, 마누라는 잘못된 계약의 위법을 찾아내서 떼인 돈 받으러 바지끈 단단히 동여매고 채비를 갖추어 나서곤 했다. 조직의 덩치 큰 남자들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권리를 주장하는 마누라를 남편은 바쁘다는 핑계로 혼자 보내곤 했었다. 기어이 해결할 일에 두 사람의 에너지를 쓸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저렇게 어리숙한 남편과 함께 산 세월이 이십칠 년이다. 걱정한다고 벌어질 일이 벌어지지 않는 것도 아닌데, 미리 근심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게 없다는 걸 아는 마누라가 집에 앉아 백리 정도를 내다보며 또 걱정이 태산이다. 그래도 나는 남편보다야 세상사는 방법을 뭘 좀 아는 세상살이 딜러라고 시건방진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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