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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지 Aug 31. 2022

시간과 에너지

자동차 소동이 끝났어도 집안 분위기는 여전히 침체되어 있다. 아니 내 마음이 음침하게 가라앉았다. 남편은 남편대로 큰아들은 큰아들대로 자동차에 대한 계획이 있었듯이, 잠자코 있던 작은 아들 역시 자동차에 대한 혼자만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나 보다.


현재 우리 집은 식구 네 명에 차가 세 대이다. 아빠가 새 차를 사면 아빠가 타던 차를 형이 물려받기로 되어 있었다. 이번 여름방학에 계절학기를 끝으로 졸업학점을 이수한 작은아들이 취업을 할 때쯤엔, 당연히 본인이 새 차를 구매하게 될 것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아빠가 아니라 형이 새 차를 사게 되었으니, 이년 후쯤 아빠가 새 차를 사게 되면 자기가 아빠 차를 물려받아야만 할지도 모를 일이다. 작은 아들의 계획이 틀어지게 생긴 것이다. 더군다나 이번에 형이 예약한 차는 작은아들의 드림카였다.


누군가 취소했다는 차량에 큰아들이 예약을 건 대기 순번은 두 번째였다. 오후 5시를 기점으로 대기 순번 첫 번째 주자가 계약을 성사시키지 않으면, 곧이어 큰아들에게 정식 계약의 기회가 주어지는 날이었다. 시계가 오후 다섯 시를 향해 가는 것을 보며, 아파트 청약도 아닌데 내 심장이 두근거렸다. 결과는 첫 번째 대기자의 계약 성사로 끝이 났다. 큰아들의 차는 7개월을 기다려야만 한다.


큰아들이 신청한 차가 7개월 후에 출고된다고 해서, 지금 당장 남편 차를 다시 알아보거나 신청할 일은 없다. 자식이 크면 부모도 언행이 더욱 조심스러워지는 법이다. 남편은 외제차 대신에 현대에서 새로 출시될 SUV 차량을 이년 후쯤에 신청하기로 나와 약속을 했다. 그 약속이 지켜질지는 확실치 않다.


한바탕 난리법석을 치르는 과정에서, 이기적인 자식들의 모습과 또 한 번 어리석은 남편의 모습을 확인하였다. 나는 언제까지 실수쟁이 남편의 돈을 지켜주기 위해 아등바등 애를 쓸 것이며, 이기적으로 다 큰 놈들 뒷바라지나 하며 살아갈 것인가.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나는 또 한 꺼풀 마음의 허위를 벗어버렸다.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나의 기쁨과 행복을 위해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은,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그 사람에게 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 시간과 에너지라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선 "돈"으로 환산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밥이나 청소 등의 "노동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내가 누구를 사랑하는 것일까 헷갈린다면 나는 누구와 밥(돈)을 나누어 먹고 싶은지, 내 밥(돈)을 누구에게 주어도 아깝지 않은지 생각해보면 된다. 그 질문에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인생이 뭐 별거더냐. 좋은 사람과 소박하게 밥 지어먹고 함께 일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으면 그것이 천국인 거다.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쓰면서 기운이 나고 기분이 좋아지면 그게 행복인 거다. 자식 놈들 밥상 차려주고 남편 돈 버는 일을 거들고 사는데 요즘 내 기분이 우울한 것은 단순히 갱년기 탓만은 아닐 성싶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죽을 운명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미래에 대한 꿈을 꾸고 새로운 희망을 또 하나 주머니에 챙겨 넣고 오늘을 열심히 살아간다. 죽음이 최종 목적지인 것은 분명하나, 그 죽음의 시간이 언제쯤 내 앞에 도착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동안 놓쳐버렸던 내 삶의 기쁨을 찾아야겠다. 이기적인 자식 놈들도 속 썩이는 남편도 다 소용없다. 내 시간과 에너지를 누구에게 써야 기분이 좋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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