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끝나가는 길목에서, 남자의 대부는 수도회로 떠났다. 그리고 지난해 가을 봉쇄 수녀회에 입회했던 여자의 큰언니는, 수녀회에서 퇴출당해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또 여름이 찾아왔다.
수녀원에서는 큰언니의 정신 건강이 공동체 생활에 부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언니의 조현병은 시작되었다. 미욱한 부모님은 그 병이 뭔지 조차 몰랐다. 그저 신앙심이 지나친 큰딸이 수녀원에서 잠을 안 자고 계속 기도만 한 걸로 받아들이고 계셨다.
장미꽃이 피고, 라일락 향기가 온 세상에 퍼지고 있었다. 여자는 남자에게 30만 원이 담긴 봉투 하나와 커다란 배낭을 건넸다. (그 당시 국립대학교 인문학부 한 학기 등록금은 약 70만 원이었던 것 같다.)
남자는 여자가 내민 봉투를 받아 들고 며칠간 국내 성지순례를 떠났다. 과연 몇 군데 성소를 방문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여자가 남자에게 바란 것은, 새로운 경험을 통해 새로운 생각을 얻는 것이었다.
남자가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커다란 배낭을 멘 채 돌아왔다. 남자의 인식체계는 별다른 변화가 없어 보였다. 남자가 순례길에 오른 사이 며칠 쓰지 않았던 편지를, 여자는 다시 쓰기 시작했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성큼 왔다. 남자는 대기업 전자회사의 연구소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연구소는 서울에 있었다. 여자는 그 남자의 서울 취업이 더 기뻤다.
그 무렵 이번엔 여자의 작은 언니가 수녀회에 입회해서 집을 떠났다.
두어 달 후 남자는 연구소를 그만두고 대리점 관리팀으로 청주로 내려왔다. 그가 연구원 재목은 될 수 없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었다. 이후 남자는 두 군데 회사를 빛의 속도로 취업하고 퇴사한 후에, 미국계 반도체 회사에 취직했다.
그리고 수녀회 들어갔던 작은 언니마저 정신적 이유로 수녀원에서 퇴출당해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키우던 검둥이도 성질이 난폭해져 갔다. 쇠락해가는 징조는 그렇게 나타나고 있었다.
두 언니의 조현병은 가족들의 삶과 운명을 바꿨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잘났다고 인정하고 떠받들었던 오빠가, 무주 산골 출신의 순진한 여자와 결혼을 했다. 이듬해 나도 만화책 같은 미국계 회사원 그 남자와 결혼해서 집을 떠났다.
성당에서 여자의 결혼식날, 여자의 국민학교 친구들은 수군거렸다.
"00가 결혼을 제일 잘할 줄 알았는데..."
남자 쪽 남자들은 머리털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가끔 머리털이 풍성해 보이는 남자는, 제 머리가 아닌 게 금방 표가 났다. 다들 키가 작고 사투리를 썼다.
그때만 해도 여자의 두 언니들은 동생의 결혼식 사진 속에서 웃고 있었다. 동생의 남편 머리털이 너무 빨리 사라지지 않기를, 여동생 대신 기도해줄 수 있을 만큼은 되었던 것 같다.
3월 18일 토요일이었는데, 하늘에서는 하얀 눈이 날리고 있었다. 아버지의 잘생긴 얼굴 옆에서, 키가 큰 어머니는 아련하게 웃고 계셨다. (끝)
(2021년 9월 21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