쟈니 림의 탄생 2
(태풍 속 보라카이 여행기)
남편은 공공근로사업을 두 달 넘게 했던 것 같다. 새 봄이 시작될 즈음, 그 사이 이력서를 넣은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멀리 대천에 있는 회사였다. 당장 생활비가 급했던 우리는 주말 부부란 걸 처음 하게 되었다. 두 살 터울이긴 해도 거의 연년생 뻘인 아이 둘을 키우느라, 타지에서 남편이 어찌 지내는지 간섭할 여력도 없었다.
그 생활을 한 지도 일 년이 되어갈 무렵, 남편은 청주 근처에 있는 회사에 취업했다. 대기업 계열사인 줄도 모르고 지원했다가, 덜커덕 합격한 케이스였다. 운이 좋았다. 그 회사에서 해외영업팀에 근무를 하면서, 남편은 다시 사업에 대한 꿈을 꾸었다.
이년도 채 근무하지 않고 퇴사를 한 뒤, 남편은 작은 회사 하나를 차렸다. 이번엔 가게 인테리어도, 본사에 보증금 거는 일도 필요치 않았다. 작은 사무실을 얻어, 여직원 한 명과 해외 물류 일을 시작했다. 그 일을 한지, 이제 이십 년이 되어간다.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우리도 해외여행이란 걸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은 일 년에 몇 번씩도 다녀온다는데, 나는 해외에 안 나간 지 벌써 이십 년이 되었다. 남편이 미국계 회사에 근무할 적에, 오스틴으로 출장 나가 있던 몇 달 동안 부인 동반이 허락되어 따라 나갔던 게 마지막이었다. 그때 큰 애가 뱃속에 있었다.
큰 아들이 군대 간 사이, 대학에 입학한 작은 아들과 둘이서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이십 년 만에 첫 해외여행이었다. 물론 패키지였다. 내가 초짜 여행자인 줄도 모르고, 사람들은 나를 따라 쇼핑을 했다. 다 인터넷 정보의 힘이었다. 쁘렝땅 백화점 지하(?)에서 택스 리펀 서류 작성까지 하고, 독일 공항에서 세관원과 택스 리펀 면담까지 했다. 첫 여행에서 새롭게 배운 것들이 제법 많았다.
두 번째 여행은 제대한 큰아들과 함께 캐나다로 떠났다. 캐나다 입국 심사가 까다로워서 패키지여행 상품으로 따라 들어온 한 아가씨는, 캐나다 입국 둘째 날 몇몇 사람에게만 조용히 인사를 건네고 친구 차를 타고 호텔을 떠났다. 여행상품을 포기하고 또 다른 인생 여행을 떠나는 젊음이 부러웠다.
함께 몇 날 며칠을 같은 버스를 타고 이동한 사이였음에도, 돌아오는 날 어떤 부부가 내게 말했다.
"남편 분이 되게 착하게 생겼어요~"
공항 화장실을 다녀오던 큰아들이 그 소리를 듣고,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군대에서 쫌 늙었나 봐요, 엄마를 닮았다는 소리는 많이 들었어요~"
그렇게 큰아들과 캐나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에도, 나는 해외여행에 여전히 목이 말랐다. 이십 년 동안 쓰지 않았던 영어로 지껄이는 맛도 제법 깔깔하고, 일단 저렴한 여행 삼품들이 나의 관심을 부추겼다.
장기간 회사를 비울 수 없는 남편을 위해, 목요일이나 금요일 출발하는 동남아 쪽 상품들을 찾아보았다. 그렇게 두 번을 남편과 짧은 여행을 하고 세 번째 여행지로 보라카이를 택했다.
2017년 12월의 금요일이었다. 청주에서 인천공항으로 떠나는 리무진을 타기 전에도, 여행사에 전화를 걸어 보라카이 현지 날씨를 물었다. 괜찮단다. 태풍이 지나가고는 있으나, 거의 다 지나갔다는 대답이었다.
평소에는 겁이 많은 내가 여행에서만큼은 뒤로 물러서지 않는 건, 어쩌면 그동안 못해본 거에 대한 한풀이 같은 것일 게다. 비행기 이착륙할 때 유난히 겁을 먹는 남편을 안심시키며,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여행사 데스크에서 다시 한번 확인을 한다. 똑같은 답변이었다. 일정대로 출발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고 한다. 한국시간으로 저녁 아홉 시쯤 우리는 필리핀의 한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건물로 들어서기 위해 아주 잠깐 걷는데도, 바람에 몸이 휘청거렸다. 피곤한 탓인가 보다 했다. 설마 내 몸이 그렇게 가벼울 리가 없다.
입국심사대 앞으로 기다랗게 서 있는 줄에는, 주로 젊은 커플들이 많았다. 간간이 우리 부부처럼 나이가 있어 보이는 부부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보다 연장자는 없어 보인다. 공항 건물이래 봤자 대전의 터미널만큼 밖에 안 되는 공항의 밤 풍경은, 그때까지만 해도 기분 좋은 바람과 습기로 가득했다.
(2021년 9월 25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