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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지 Mar 25. 2023

열정과 욕심 사이

(동문 밴드 대자보)

이 나이에 들어보니 선명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사람들의 마음이다. 노안으로 외부 세계의 사물들은 조금씩 흐릿해지거나 경계가 불분명하게 보이기도 하는데, 사람의 속마음은 점점 더 또렷이 바라다보인다. 이것도 세월이 주는 신비한 법칙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다.


내가 동문회에 함께 한 지가 어느덧 십오 년쯤 되는 것 같다. 그동안 민주적인 동의의 과정도 없이 공식화된 역대 집행부의 4대로부터 현재 11대 집행부에 이르기까지, 총 7대에 걸친 집행부들을 겪어보았다. 그 시간을 함께 나누다가 나도 어느샌가 오십 대 중반에 접어들었다.


동문회 회장 자리가 의미하는 것에 대하여 사람마다 해석이 다를 수 있겠지만, 두 해마다 구성되는 새로운 집행부에는 언제나 야망에 들뜬 동문들이 회장 자리를 서로 넘겨주고 받았다. 우리 과 동문회가 구성되고 단 한 번도 전체 동문들의 의견을 물은 역사는 없었다. 동문회비를 걷을 때만 동문들의 참여를 촉구하고, 정작 중요한 집행부 구성과 활동의 방향성에는 단 한 번도 동문들의 의견을 묻지 않았다.


한 선배님의 식당은 동문회장이 내정되는 은밀한 성지(聖地)가 된 지 오래다. 그것을 우리 과의 또 하나의 전통으로 보려 한다면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거창한 회당 건물이 아니어도 민주적인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면 그곳은 충분히 우리 공동체의 아고라(agora)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민주적인 절차와 합리적인 의사결정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뒤에서 몇몇이 쑥덕쑥덕 모의하여 집행부를 구성하는 편협된 방식을 고수할 것인가? 동문회 회장의 직함을 사회에서 자리 하나 차지하는 완장으로 생각한다면, 이미 그 동문회는 우리가 예상하는 대로 불 보듯이 뻔한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우리 동문회는 이년마다 새로운 집행부를 구성하고 있다. 하지만 거의 이십여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동문회를 유지하면서 정관이나 회칙 같은 것도 작성된 바가 없다. 정으로 만나 허심탄회하게 교류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정관이나 회칙 따위를 갖추지 않았다 해도, 그 조직을 이끌어가는 데 필요한 적절한 기준 정도는 세워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의문드는 대목이 다.


해마다 몇몇의 전임 회장님들이 모여서 동문회를 걱정하고는 있지만, 더 이상 후배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이유를 다시 심도 있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동문회 회장 자리에 이름 한번 올리고 행사 한번 기획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세대의 교체와 시대의 흐름이 그러하니 우리 동문회도 이러다 사라질 수도 있겠지라고 생각하는 동문들도 적지 않겠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동문 밴드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그리워하기도 한다는 것은 우리 공동체의 일말의 희망이며 소명이 될 수도 있는 거 아니겠는가.


회장을 역임하신 선배님들과 역대 집행부에서 고생하신 동문들의 진정한 애정과 수고를 값없이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동문회 존속을 위한 방법과 절차에 대한 고민을 모두 함께 나누어보자는 취지에서 드리는 말씀이다. 늙어버린 머리를 맞대고 늘 같은 자리에서 같은 술잔을 기울인들 참신하고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를 리 만무다.


사회에서 높은 자리에 있다가 퇴임했어도, 그래서 다시 젊은 후배들의 의견을 진실되게 물어야 하는 것이다. 예전의 사회적 지위를 내세우고 그 영광을 자랑하고 싶은 선배들이 많을수록 동문회는 늙어가고 쇠퇴하기 마련이다. 어느 공동체에서든 우리가 다 같이 살아남으려면, 후배들을 앞으로 내세우고 그들의 의견을 따라주어야 한다.


학번마다 대표성을 부여하는 일만 해도 그렇다. 조직의 일을 수행함에 있어 부득이 학번들의 대표자를 두어 더욱 신속하게 일처리 하기 위한 목적일 뿐인데, 정작 그 대표성이라는 것 자체가 그 학번 동기들의 의견을 수렴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선배들의 기억 속에 있는 누군가를 끄집어내어 활동도 하지 않는 동문을 그 학번의 대표로서 올려두는 것 역시 어딘가 석연치가 않다. 동문회는 말 그대로 동문회를 위해 수고하고 참여하는 동문들의 자리가 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정관이나 회칙 같은 거 굳이 필요하지 않다면, 이제는 새로운 집행부를 구성하는 시기에 우리 동문회도 새로운 축제의 장을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제안드려본다. 전기 회장이 차기 회장과 무언가를 주고받듯이, 혹은 선배님들 몇몇이 차기 회장을 임명하는 듯한 어설픈 작동 체계를 바꾸어볼 때도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밴드에 들어오는 동문들에게도 차기 집행부의 구성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기를 바라본다. 회비 걷을 때만 동문이 아니고, 모든 의견 전달과 결정에 함께 참여하는 동문으로 우리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할 때가 되었다.


동문들과 동문회를 향한 순수한 애정과 깊은 열정에서인지, 그것이 아니라면 스스로의 불분명한 허세를 부려보고 싶은 욕심 때문에 집행부의 일을 감당하고 싶은 건지는 누구나 스스로만이 알 것이다. 때로는 그 허세 있는 욕심이 공동체의 발전에 크게 기여할 때도 있으니, 순수한 열정과 허세 있는 욕심 사이에서 누군가 또 수고해 주시기를 바랄 뿐이다. 깊이 사랑하는 자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불변의 법칙은 여전히 유효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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