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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지 Mar 23. 2023

(소설) 깊은 밤의 다음 날 7

아무리 내게 언니들에 대한 연민의 정이 있었다한들, 한결같은 사랑과 희생의 정신만으로 그 긴 세월을 버텨 온 부모님과 같을 수는 없었다. 언니들이 집어삼킨 참혹한 세월은 삼 년이 아니라 삼십 년을 훌쩍 뛰어넘은 장구한 시간이었으니, 부모님은 물론이거니와 오빠와 나도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그렇게 비통한 아픔을 공유하고 있는 집안에서도 새롭게 태어난 생명들은 건강하게 자라났고, 가족들은 아무도 죽지 않고 모두가 살아남았다.


하지만 이성이 마비된 지 오래된 작은 언니의 폭력성이 과도하게 분출될 때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여전히 제 본연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아무렇게나 돈을 지출하는 큰언니의 허무한 구매력이 상승할 때마다, 끊임없이 발생하는 사건과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불려 다닐 때면 어느 순간 나의 인내심은 밑바닥을 드러내곤 하였다.


사람이 너무 긴 세월 동안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에서 허우적거리게 되면, 처참한 결말일지언정  끝장을 보고 싶어 질 때가 있는 법이다. 합리적인 이성이 더 이상 나의 인내력을 지탱해 주기 어려운 때가 아주 드물게 찾아오기도 했었다.


고통이 깊어지면 인간은 못할 짓이 없게 된다. 오래되어 뒤틀린 절망감은 나를 살인에 대한 헛된 망상으로까지 이끌었. 농약이라도 사서 언니들에게 먹이고 내가 살인죄로 감옥살이를 하는 게 낫겠다는 무서운 생각이 아무렇지도 않게 순간적으로 들 때도 있었다. 그러면 나머지 가족들이나마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그릇된 욕망에서였다. 정신병은 그들이 죽어야만 끝나는 어둠 마법사의 저주 같은 것이며, 동시에 가족들에겐 잔인한 형벌이기도 하다.


언니들이 집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으로 입원을 한 뒤, 어찌 보면 지금 우리 집은 삼십 년 만에 가장 평화로운 상태에 도달했는 지도 모른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식사를 장만해서 생을 유지하고 있는 늙은 어머니는, 이제 더 이상 두 딸을 집에 데려와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지 못한다.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과 고집이 없었다면, 언니들은 지난 삼십 년 동안에도 내내 병원 신세를 져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 삼십 년 동안 오빠와 나의 인생마저 그들에게 저당 잡혀 괴로운 삶을 살아온 것을 어머니는 미처 헤아릴 수 없었겠지만, 지금에 와서 보니 어머니의 미련한 고집으로 병든 두 딸들은 그나마 사람다운 목숨을 부지하고 살 수 있었던 것도 같다.


비통한 세월을 오래도록 겪으며, 세상의 모든 일들은 자연히 벌어질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 뿐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전쟁도 기아도 우연한 사고도 '자연히' 일어났다가 '자연히' 사라지고 또다시 일어나기도 한다는 것, 그러한 반복과 변화가 그저 인생이고 모든 존재의 삶이라는 것을 나는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인생에서 불행한 일을 한 번도 겪지 않았다고 누군가 떠벌려 자랑할 일도 아니라는 것을 이제 나는 안다. 고통을 모르는 사람은 인생의 진짜 기쁨도 알 수가 없다는 것이 바로 인생의 신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생의 모든 의혹과 신비는 모두가 공유하게 되는 '죽음' 앞에서 완성이 된다.


사방이 어두운 깊은 밤에 조용한 불빛 아래에서 원고를 마쳤다. 창문 너머로 새벽빛이 희미하게 밝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잠들기 전 복용했을 약에 취해 병원 침상에 누워있을 언니들과, 여명보다 더 일찍 깨어나는 부모님은 모두 각자의 있을 곳에서 아침을 맞이할 것이다. 나의 깊은 밤 뒤에 찾아오는 새벽빛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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