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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지 Mar 21. 2023

(소설) 깊은 밤의 다음 날 6

언니들과 어머니에 대한 애달픈 마음 때문이었을까. 이월의 끝자락은 언제나 가냘프고 애절했지만, 올해 이월은 유독 사람을 연약하게 만들었다.


앞뒤의 달(月)과 삼일 차이가 나는 것일 뿐인데도, 그 삼일의 공백은 게으른 삶의 이유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썩 괜찮은 핑곗거리를 제공해주기도 하였다. 누군가 영화 필름을 몇 컷 잘라내 버린 것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것처럼, 어쩌면 우리는 인생에서 며칠이 사라져 버리고 있는 것을 의심하지 못한 채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 밤까지 마쳐야 되는 원고에 대한 압박감에도 불구하고, 작은 어머니와 긴 통화를 마치고 나서 도무지 글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 세상에 가련한 인생들이 나의 언니들 뿐만은 아니겠지만, 피를 나눈 혈육의 정 때문인지 내 고달픈 피 속엔 병원에 갇혀 있는 언니들의 막막한 두려움이 고스란히 흘러 다니고 있었다.


언니들에 대한 연민과 슬픔은, 그들이 병원에서나마 안전하게 지내고 있다는 나의 자족적인 위안 속에 언제나 가두어 놓아야만 했다. 조현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이 고작 병원 밖에 없다는 것이 사회의 큰 문제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집과 병원을 벗어나 그들이 머물 수 있는 중간 단계 시설의 마련을 위해서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못했다.


내일 오전엔 각기 다른 병동에 있는 언니들에게 보낼 택배를 부치기 위해 우체국에 들러야만 한다. 지난번처럼 직원이 실수할까 봐, 나는 종이박스의 표면에 서로 다른 병동의 숫자를 큼지막하게 적어놓았다.


작은 언니는 치매 노인도 아니면서 병원에 입원하기 전부터 성인용 기저귀를 사용할 때가 있었다. 굳어버린 뇌기능이 신체의 조작 능력마저 미약하고 우둔하게 만들었던 탓일 수도 있다. 작은 언니는 정상적인 뇌기능을 잃어버리면서 인간으로서 유지해야 하는 기초적인 위생 습관부터 상실하고 있는 것 같았다. 병원 매점에는 생리대는 구비해 놓았지만 기저귀는 팔지 않았다.


늙은 어머니는 작은 언니가 가끔씩 기저귀를 찬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이 생리혈인지 하혈인지, 그도 아니면 요실금인 건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폐경기에 들어 있는 내 몸에서 몇 개월마다 한 번씩 생리혈이 보이고는 있지만, 나보다 세 살이나 많은 작은 언니가 아직까지 생리를 할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병원에서 소변 검사 때도 혈흔이 없고 이상 반응이 없었다는 간호사의 말로 미루어볼 때 요실금일 확률이 높았지만, 그래도 나는 언니가 요청했던 기저귀를 사서 택배 상자에 넣어두었다.  


오래전 야생 멧돼지 쓸개를 비싼 값을 치르고 구매했던 아버지는 그 이듬해에는 아무도 모르게 나를 조용히 불러서 또 하나의 일을 맡기셨다. 아버지가 읽은 어느 신문 칼럼에,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여성과 생리 작용의 상관성에 관한 연구가 실려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내게 산부인과에 가서 의사와 상담을 해보라고 말씀하셨다. 인위적으로 폐경을 시켜서라도 딸들의 정신질환이 깨끗하게 나을 수만 있다면, 차라리 여성성을 상실시켜서라도 딸들을 살리고 싶었던 아버지를 그 칼럼은 일시적으로 혹세무민에 이르게 하였다.


사람이 절실해지면 무지의 부끄러움조차 잊게 되는가 보았다. 죽을 만큼 간절한 아버지의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었기에, 나는 가위로 자른 신문 칼럼을 직접 들고 저명한 산부인과 의사를 찾아가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산부인과 의사는 펄쩍 뛰며 근거가 없는 칼럼이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때 칼럼은 억압된 성적 욕망이 정신질환자의 증상에 미칠 수도 있는 영향에 관한 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세 시대부터 이미 연구되고 있었던 성적 욕망과 정신질환의 상관성을 훗날 프로이트가 발전시켰다고 볼 수도 있는 근거 자료에 관한 칼럼이기도 했다.


두 개의 택배 상자에 빠트린 것이 없는지 확인을 하고 다시 노트북 앞에 앉을 때였다. 아랫배 그 밑으로 무언가 축축한 물질이 쏟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 내게 남아있는 여성의 물질이었다. 그 물질이 정신병을 유발하는 것도 더 강화시키는 것도 아니지만, 천주교의 교리 속에 갇혀서 억눌러야만 했던 언니들의 욕망은 어쩌면 그들을 지금 병원에 가두어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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