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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지 Mar 19. 2023

(소설) 깊은 밤의 다음 날 5

며칠 간격으로 언니들을 같은 병원에 입원시키고 돌아온 계절은 하필이면 추운 겨울날이었다. 그날들의 아침마다 벌거벗은 나무들 사이로 희끗희끗하게 잔설들이 멀리 바라다 보였다.


십육  전쯤 아버지가 운전이 서툴었던 나를 앞세워 교외 부근으로 길을 나섰을 때산등성이에는 허옇게 눈이 쌓여있었다. 도시의 집들과 마찬가지로 시골집들도 저마다 김장을 마쳤던  무렵, 차가운 계절은  한가운데로 사람들의 시간을 깊숙이 데려갔다. 그 해 겨울 아버지가 이끄는 대로 어딘가를 향해 갈 때, 밭에는 미처 뽑지 못한 배추 포기들이 누렇게 시든  땅바닥에 얼어붙어 있었다.


아버지가 종이에 적힌 주소를 펼쳐 들고 도착한 곳은 그리 높지 않은 산을 뒤에 두고 있는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다. 동네 어귀에 간신히 주차를 하고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마침 자루를 손에 든 노인이 아버지가 찾고 있는 집을 알려주었다. 우리가 찾아들어간 시골집은 제법 신식으로 지어 올려서 그 동네의 여느 시골집들과는 눈에 띄게 구별이 되는 집이었다. 그 집 문을 열고 넓은 마당으로 들어설 때, 누런 개는 제 집에 들어앉아 심드렁하게 우리를 지나쳐 보냈었다.


 사내로부터 검은 비닐봉지에 멧돼지 쓸개를 건네받으며, 아버지가 안쪽 주머니에서 꺼낸 봉투에 얼마가 들었던 건지 나는 묻지 않았다. 야생 멧돼지 쓸개가 정신질환자에게 좋다는 소리를 들은 아버지가 수소문 끝에 찾아낸 집이었기에, 아버지는 그가 부르는 대로 값을 지불했던 것으로 기억할 따름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일련의 과정을 거쳐 환을 만들어 먹였다한들 언니들의 병이 고쳐질 리 만무였다.


포수에게 잡힌 멧돼지처럼, 언니들은 종교가 쳐놓은 거대하고 강력한 덫에 걸린 영락없는 희생자들이었다. 죄와 벌이라는 도식의 함정에 빠져 망령들의 어두운 종의 신세로 전락한 언니들을 떠올릴 때마다, 내 육신과 영혼 또한 깊고 어두운 수렁에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신앙심의 발현이라고 보기엔 일반적이지 않은 언니들의 이상 증상이 표면화되어 드러났을 때,  당시 이십 대였던  역시도 처음에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언니들에게서 사탄이 물러가는 기적이 일어날 것을 고대하였다. 래서 매년 부활절과 성탄절이 돌아올 때마다 나는 기적의 양말을 내 영혼의 꼭대기에 걸어놓곤 했었다. 


험상궂은 밤이면 발작적으로 뛰쳐나가는 큰언니를 보호하기 위해 뒤좇아 따라나갔던 작은언니마저 이상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을 때, 나의 기도는 더욱 간절히 불타올랐다. 그녀들의 영혼을 구할 수 있다면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어가는 고통마저도 감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끝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두 딸들을 감시하고 지키느라, 하루 두세 시간 쪽잠을 자며 밤에도 외출복 차림으로 입고 살았던 어머니의 눈물겨운 사랑은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수십 년 세월이 흐르도록 왜 서둘러 병원 치료를 받지 않았느냐고 누군가 물을 때마다, 적당한 변명과 진실이 필요했던 어머니는 국내 최고 병원의 의사들도 언니들의 정신 질환은 유형을 특정할 수 없는 특이한 경우라고 소견을 피력했었노라 둘러대곤 하였다. 


물론 어머니의 진술은 사실이었다. 외국까지는 아니어도 국내 병원 가운데 최고 의료진과 기계장비를 찾아 전문적인 검사를 실행하였지만, 그 모든 수고와 노력에도 언니들의 증세는 시간과 더불어 악화될 뿐이었다. 그 사이 언니들의 젊은 시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부모님은 어느덧 죽음을 목전에 둔 노인들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어머니처럼 기적을 바랐던 나도 인생의 거짓과 진실을 구별할 만큼 적당히 늙어버렸다.


기적의 허구로부터 멀어진 나는 인간 존재와 존재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수만 번 던졌을 것이다. 하지만 수만 번 던진 질문대한 답을 찾지 못한 채 나의 시간 속에서 네 개의 계절이 서른두 번 지나갔다. 그리고 정처 없는 절망은 나를 끝없는 고통의 심연으로 추락하도록 부추겼다. 이 세상에 그 무엇나의 영혼을 고통과 슬픔의 나락으로부터 끄집어낼 수 없을 것처럼 여겨졌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서 시작되었던 나의 질문은 언제부터인가 존재의 삶이란 무엇인가로 바뀌어있었다. 모든 존재가 세상을 그저 한 번 다녀가듯이, 온전한 정신을 갖지 못하고 살아가는 언니들의 허망한 삶 또한 그들의 삶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는 너무도 오랜 시간이 흘러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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