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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지 Apr 08. 2023

(소설) 깊은 밤의 다음 날 11

토요일 점심 무렵에 복통을 호소하는 아버지를 모시고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동네 의원에선 맹장염이라고 진단하였으나, 그것보다 더 심각한 병에 걸려 있는 줄을 우리는 까맣게 알지 못하고 있었다. 며칠 동안 수신거절해 놓았던 오빠에게 먼저 전화를 건 쪽은 결국 나였다.


년 사이에 몸무게가 6 킬로그램이나 빠진 아버지의 대장에선 종양이 발견되었다. 아버지의 몸이 날이 갈수록 쇠약해지고 있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은, 온전한 정신을 가지지 못한 언니들과 부모님이 한 집에서 생활한 까닭이었다.


부모님의 두 딸들이 벌려 놓고 다니는 일들을 수습하는 것만으로도 오빠와 나의 일상은 매우 바쁘고 서글펐다. 영특한 자식 놈들이 아버지의 건강을 미리 살펴드리지 못한 게 되자, 그래서 오빠와 나는 다시 서글퍼졌다.


일제 강점기 시절에 일본 유학을 다녀오셨다는 나의 할아버지가 육이오 때 납북된 것인지 월북한 것인지 생사를 확인할 수 없었을 때, 군인들에게 끌려가 폭행과 조사를 동시에 받았던 그 충격으로 아버지는 정부와 군인들을 별로 탐탁하게 여기지 않으셨다.


그때 아버지 나이 겨우 열여섯이었고 큰아버지는 열아홉이었다고 다. 열아홉 살의 형을 산속에 피신시키고, 아버지는 집에서 군인들에게 붙잡혀갔다. 형보다 아직 어린 나이니까, 그들이 덜 심하게 문책하리라고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드물게 아버지의 트라우마가 아버지 안에 내재된 공포의 버튼을 누르게 되는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아버지는 오빠와 나에게 전화를 걸어 평소보다 조금 더 길게 세한 안부를 묻곤 하셨다.


구순의 나이에도 여전히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아버지의 기력 없는 눈동자에는 더 이상 그런 막연한 공포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대신에 언제부터인가 죽음에 관한 부정확한 두려움이 아버지 마음에 드리워져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었다.


허망한 세월의 강을 따라 이윽고 너무 늙고 병든 육신에 이르러버린 아버지에게선 일체의 탐욕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지만, 나는 늙은 아버지가 당신 삶에 대한 욕심을 조금만 부려주기를 간절히 기도하게 되었다. 아버지에게 보여드리고 싶은 삶의 기쁨에 관한 것들이 비로소 내 안에 확실하게 그려진 지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대로 아버지를 놓칠 수는 없을 것만 같았다. 


삶에 대한 의지마저 탐욕으로 치환해 버린다면, 이 세상엔 탐욕스럽지 않은 인간은 단 한 명도 존재할 수 없지 않은가. 늙은 아버지에게 생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의 소명이라고, 우리 가족들은 앞으로 삶의 기쁨을 누리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고 말하려던 걸 삼키곤 하였다. 아버지는 이미 나에 앞서서 내 안에 든 생각들을 일찍이 다 가져보지 않았겠는가. 육신은 쇠하였으나 아버지의 정신은 가늠할 수 없는 덕에 도달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병원에 갇혀있는 언니들의 남은 삶이 애처로워 나는 잠결에도 울면서 깨어나곤 했다. 언니들에 대한 연민의 고통에 지쳐 쓰러져 있던 날들이 두어 달 흘러갔다. 그 사이 높고 깊은 산등성이에 고여있던 잔설들이 계곡을 따라 흘러내리며 나무들의 밑동으로 스며들었다. 그들은 서로 다른 나무들마다 새 잎이 나도록 은밀하고도 신속하게 부추기고 있었다.


그렇게 슬픈 연민의 지난겨울을 떠나보내고, 어느 날엔가 문득 나는 생각을 고쳐먹기로 하였다. 어머니의 무지가 빚어낸 고집스러움 덕분에 언니들은 삼십 년 동안이나 부모님 곁에서 아이처럼 보호와 사랑을 받으며 살 수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만나고 헤어지는 게 인생이고 자연이라고 배우지 않았던가. 부모님과 언니들도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는 때가 이르렀을 뿐이라고 돌려 생각할 때도 되었다. 배운 대로만 살면 고통이 없을 텐데, 나는 숱한 불면의 밤을 겪으면서도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영혼에도 가장 밑바닥의 고통과 슬픔이 있다면 우리 가족들은 모두 거기까지 다녀온 사람들이었다. 아직도 두 딸들이 오래된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 하여, 앞으로도 가족들이 모두 함께 삶의 기쁨을 포기하고 살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또 살아지는 게 인생이었다. 하지만 타인을 아낌없이 사랑하려거든 밤마다 깊은 잠에 우선 들어야 한다는 수칙을 지키는 것은 결코 내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잠든다는 것의 커다란 의미를 나는 불면의 밤을 통해 배웠을 것이다. 


침울한 고통의 겨울과 이별하고, 나는 잠들지 못하는 불면의 밤과도 작별을 고하기로 하였다. 늙은 부모의 남은 인생의 날들과 병든 언니들의 가엾은 시간들을 함께 견디어내려면, 내가 먼저 매일 밤 죽음과도 같은 깊은 잠에 빠져야만 할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품어야 할 가장 큰 탐욕의 대상은 깊은 잠일 것도 같았다. 


아버지는 앙상한 팔에 주삿바늘을 꽂은 채 고단한 얼굴로 잠이 들었다. 나는 그날 밤 아버지의 병실에서 마음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깊은 잠을 청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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