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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지 Apr 18. 2023

(소설) 깊은 밤의 다음 날 12

죽음을 향한 행렬에 마침내 나의 부모님도 줄을 서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꿈인 듯 아련하고 현실인 듯 애달픈 시간들이 딱 하루만큼씩 흘러갔다. 나의 삶과 부모님의 삶과 언니들의 삶의 무게가 세 의 저울에서 서로 팽팽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 같은 시간들이었다. 마치 조율하지 않았어도 제대로 소리를 내는 악기처럼, 소리를 가질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적당한 시간의 음이 연주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숱한 시간들을 견뎌낸 나무가 때에 이르러 툭 툭 제 껍데기를 떨어뜨리듯이, 지난겨울 어머니의 물기 없이 마르고 푸석한 몸에서는 각질처럼 피부 껍질들이 떨어져 내렸었다. 세탁기 안에 옷을 넣을 때마다 어머니의 옷에서 비듬처럼 날아다니허연 가루들은, 나무들에 돋아난 새순이 신록이 되어갈 즈음 더 이상 흩날리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 몸 안에는 여전히 큰 종양이 자리 잡고 있었고, 어머니는 아직도 기저귀를 차고 외출을 해야만 했다. 언니들은 같은 병원의 서로 다른 건물에서 따로 생활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안부를 딱히 궁금해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꽃들이 피어나나무들이 새잎으로 제 생명을 전달할 때마다 싱그러운 바람이 살랑거리는 것을, 온 우주가 자연의 섭리 속에서 평화롭고 단조로운 호흡을 이어가는 것을, 바람과 햇살을 느낄 수 있는 곳이 곧 천국에 있는 것임을 그녀들은 이제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들에 사로잡힐 때마다, 가슴과 이어진 왼쪽 복부가 금세라도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다가 이내 날카롭고 묵직한 통증을 수반하면서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그렇다 해 언니들이 병원 밖으로 나온다 해도 사정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모든 삶들이 각자의 생명만을 끝없이 갈구하는 봄과 여름이 말없이 흐를 뿐이었다.


일생을 한결같이 당신 고집대로 살아오신 어머니는 노쇠하였지만 명쾌한 두뇌로 한사코 요양보호사의 집안 출입을 거부하였다. 쓸모없는 덩어리를 몸 안에 가지고 있는 중에도 아버지는 여전히 자신의 몸을 깨끗이 닦아 내었고, 어머니는 기어서라도 일어나서 손수 음식을 장만하였다.


어머니의 고집 덕분에 나는 부모님 댁으로 출근을 하게 되었고, 육체 노동자처럼 고단한 몸으로 '퇴근길'을 맞이하곤 하였다. 요양병원 침상에 오래도록 누워있는 95세 어머니의 입에 죽을 떠 넣으며 "이제 그만 가시라"라고 주문을 외웠다던 칠순 된 딸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나는 적절한 표정을 찾지 못했다. 부모님 댁 출근을 시작한 지 고작 반년도 되지 않았는데 나는 벌써 지쳐가고 있었다.


죽음을 담보로 태어난 모든 생명들에겐 언제나 제 자신의 안위가 우선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거짓된 논리가 아니었다. 물론 제 자신의 안위를 포기하고 만민을 위해 죽어간 예수와 같은 사람들의 냉철한 심성들은 여기에서 마땅히 제외시켜야 것이다. 하지만 예수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서른셋에 죽지 않고 모질게 살아남았더라면, 늙고 병든 요셉과 마리아를 얼마나 극진히 모셨을지 궁금증이 생겨나기도 한다.


내가 비기독교인의 대열에 서게 된 것은 아이들이 여덟 살, 여섯 살 때였다. 아이들을 데리고 노래방에 가서 놀다가 늦게 귀가했다는 이유로 어머니는 나를 마귀에 씐 죄인 취급했었다. 성수를 강제로 내 입에 넣으셨던 어머니의 왜곡된 천주교 신앙에 기만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나는 비(非) 기독교화의 노선에 가담하기로 은밀하게 결심했었다.


조금 늦은 나이에 서양 철학을 공부했던 것도 어머니의 무지의 영향과 전혀 무관하다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과 함께 있을 때는 여전히 그들의 종교 예절을 따라주었.


나는 어머니의 무지와 고집을 닮고 싶지 않았을 뿐 아니라, 무지에 대한 일종의 혐오의 감정마저 가졌던 것도 같다. 혐오와 오만은 종종 같은 색으로 나타날 때도 있다. 비기독교화된 나의 오만때로 비기독교인의 관용으로 포장하여 기독교 앞에 드러내 보이고 싶었던 적도 있었으니 다.


이십 년이 넘도록 죽은 남편에 대한 원망과 회한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작은 어머니는, 가끔 내게 전화를 걸어서 그녀가 알고 있는 기독교를 작은 아버지의 죽음과 연관시켜서 증명해 보이려고 애를 썼다. 나는 그녀의 심리 속에 담겨있는 기독교를 이해할 수 있었다. 종교는 아무 잘못이 없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그릇된 해석과 이기적인 적용이 잘못이겠지만, 나는 매번 조용히 작은어머니의 탄식에 동조할 뿐이었다.  


영화 <루시>에서처럼 원시인의 마음이 되었다가 문득 바람에 일렁이며 서있는 나무 한그루가 되기도 하는 나에게, 친구는 이 모든 인생의 고통 속에서 '나를 있게 하신 그분'에 대한 믿음으로 돌아가보라고 권유하였다. 친구가 말하는 그분이 내가 돌아가고 싶은 지점에 계실 것 같지는 않았지만, 나는 친구에게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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