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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지 Aug 28. 2024

숙맥(菽麥)과 거짓말

아주 오랜만에 택시를 탔다. 길이 막히는 것도 아닌데, 기사님이 슬그머니 이야기 자루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며칠 전 일 년에 한 번씩 있는 정기교육에서 어느 강사가 했던 말을 택시 뒷자리에 앉아있던 나에게 옮겨 전달하는 것이었다.


그 기사님의 말씀을 요약하면 이러하다. "강의하러 오신 분들은 대부분 박사들이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더라. 한 분이 말하길, 예전에 학창 시절 대학에서 데모하던 사람들이 정치판에 나오면 안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사람들이 정치를 하면 결국 나라가 이상해지고 기강이 흔들린다고 했다."


나는 그 택시기사의 말을 들으며 실로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아직도 모 집단에서 강의할 때 저런 논리 방식으로 자신의 왜곡된 생각을 전달하는 강사도 있구나 싶어 놀랐던 것 같다. 더구나 택시 기사가 그런 터무니없는 말을 듣고도 아무 필터링 없이 "똑똑한 박사가 연단에서 직접 하는 말이니까~"라고 생각하며 또 다른 '거짓 정보의 희생자(승객)'를 찾아내어 전달하고자 하는 노력이, 가히 이단 종교의 포교 전략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지능을 모방한 기능을 갖춘 컴퓨터 시스템인 AI가 세상을 지배하고, 사람과 사람이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SNS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고 정보를 공유하는 세상에서, 어찌 보면 거짓 정보를 주고받는 것은 인간의 생존 방식 가운데 가장 원초적인 방식일 지도 모른다. 생명을 위협하는 자연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인간에게 '거짓말'은 즉각적으로 유효한 방법이며 가장 손쉬운 최고의 생존 전략이었음은 틀림없다.


성경에서도 마찬가지다. 창조주인 하느님이 아담에게 따먹지 말라고 명령한 유일한 열매이기도 했던 '선악과'를 아담과 하와가 따먹게 되면서부터 인류 최초의 거짓말이 탄생하게 된다. 거짓말로부터 인류의 원죄가 태어나고, 인간은 이미 '거짓말'이라는 DNA를 지니고 세상에 태어나게 되는 영원한 구속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 '거짓말'이라는 개념에 대한 실체적 접근법에서 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인식체계의 차이가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참'과 '거짓'의 명제는 그야말로 단순하다. "받았니?"라고 물었을 때 "네, 받았어요." 혹은 "아니요, 받지 않았어요."라고 사실에 직시하여 진술하면 그만이다. 거기에 이런저런 부연 설명을 한다면 그것은 "받지 말았어야 하는 것을 받았을 때", 혹은 "받아야만 했는데, 그것이 정확하게 도착해야 할 지점에 도착하지 못하고 중간에 배송 사고가 나서 받지 못했을 때"이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경우다. (예를 들어, 디올백을 떠올려보자.)


단순한 사실이 단순함 이상의 복합적인 의미를 갖게 될 때, 정보 범람의 시대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콩(菽)과 보리(麥)를 구별할 줄 아는 솔직한 선량함이 아닐까 싶다. 결과적으로 민주화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이끌어온 대한민국 국민들의 의식을 퇴행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아직도 자신이 가진 알량한 권위를 내세워 거짓 정보를 흘리는 교묘한 숙맥(菽麥)들에게 현혹되지 않을 성숙한 시민 의식이 필요해 보인다. 콩(菽)과 보리(麥)를 구별할 줄 아는 선하고 어진 시민들의 '자연 지능(natural intelligence)'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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