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이 돌아왔다. 매들린과 카아는 청주에서 나와 함께 두 번 만나서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이었다. 두 번째 만난 자리에서 매들린은 카아의 여행 제안을 즉석에서 수락하고, 얼마 뒤 그녀들은 같은 비행기를 타고 중국 태항산으로 향했다. 그러니까 그녀들을 서로에게 소개한 사람은 나였다. 매들린은 나의 대학 동기이며, 카아는 그녀가 오랜 외국 생활 후에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처음 사귄 친구가 아마 나였을지도 모르겠다. 카아와의 인연도 거의 십오 년이 되었다.
그녀들의 닉네임을 풀어보자면 이러하다. 매들린을 영어로 쓴다면 아마 이렇게 쓰지 않을까 싶다. MADILYN~ 매들린은 Mad와 Marilyn(마릴린 먼로)의 합성어라고 자신의 이름을 설명했었다. 그날 술자리에서 들었던 이름은 "매들린"이었던 것도 같은데, 지금 합성어로 만들다 보니 "매들린"이 아니라 "매딜린"이라고 발음해야 옳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매들린(혹은 매딜린)은 남이 그렇게 쓰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는 타입인데, 그녀가 평생 몸담고 있는 직업군에 어울리지 않는 정말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여성이다.
카아는 전국 팔도는 물론이고 전 세계를 누비며 그녀의 예술 세계를 홍보하려는 야심을 가진 여자다. 그녀는 자신의 예술 세계를 표방하기에 매우 적합한 이름을 찾아낸 것 같기도 하다. "카본 아트(carbon art)"를 하는 예술가인 그녀는 카본 아트의 한국식 발음 첫 글자를 조합하여 "카아"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명명하였다. 매들린(혹은 매딜린)과 카아는 tvn방송의 <술꾼도시여자들>의 50대 버전에 캐스팅되어도 좋을 만큼 막강한 전력들을 가지고 있다.
그녀들이 어제 새벽 한국에 도착하고 난 뒤 오늘 각자의 직장으로 출근을 하며 귀국 소식을 전해왔을 때, 난 우리들의 단톡방에 <인생은 뷰티풀, 친구는 원더풀~>이라는 짧은 축하의 메시지를 남겼다. 그녀들이 아무 탈 없이 돌아와서 무사히 각자의 직장으로 출근하였다는 게 매우 크게 감사할 거리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카아의 절묘한 두뇌 회전과 사교력 위에 매들린의 겁나 솔직하고 직진하는 기개가 묘하게 어울리는 케미로 작동했을 거라고, 나는 혼자 생각하며 웃음을 지어보았다.
어차피 인간은 타인과 함께 있으면 조금씩은 다 불편한 법이다. 그 불편함을 소주잔 털어 넣듯이 제 입에 털어 넣는 사람이 진짜 능력자다. 나름 음주 경력 이십 년 무사고(?)인 나는 아직도 한 입에 멋지게 소주잔을 털어 마시지 못한다. 내가 어쭙잖게 쥐오줌만큼 소주를 깔고 맥주를 섞어 마실 때, 매들린과 카아는 언제나 깔끔하게 소주잔을 비웠다. 그러니까 그녀들의 여행은 소주파답게 깔끔했을 거라고 나 혼자 상상해 보는 것이다.
그녀들이 태항산의 깊은 절경 속에서 서늘한 숲의 정기와 마주하고 있을 때, 나는 무주 구천동 계곡과 속리산 세조길로 피신하여 몸을 숨겨야만 했다. 전기 누진세 무서워서 감히 24시간 에어컨을 가동하지 못하고, 어디 깊은 숲 속으로 더위를 피하여 들어갔던 것이다. 물론 여기엔 차량의 기름값이 수월찮게 들지만, 딱히 규칙적인 운동을 하지 않는 나로서는 기름값 대비 숲길 걷기 운동 효과를 긍정적으로 계산할 수밖에 없다.
이틀 전 일요일엔 속리산 세심정 계곡에 앉아 가만히 물소리를 듣는데,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남편은 작은 돗자리를 펴고 누워서 쪽잠을 청하고 있던 터였기에, 마누라의 주책없는 눈물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친구들은 태항산을 갔는데 나는 고작 속리산에 왔다고 눈물이 나온 건 아니었다. 나의 고단한 삶의 무게가 힘들어서였던 것도 아니었다. 입추가 지나고 처서를 목전에 두고 있지만 아직도 낮 최고기온이 36~37도를 육박하는 즈음에, 벌써 나뭇잎이 지는 가을날의 '무상(無常)'을 예측하였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실없이 눈물이 한 가닥 흘러내렸다. 존재의 눈물, 뭐 그 정도라고 해두자..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결을 느꼈는지 남편이 "아이구, 쌀쌀하네~"하며 돌바닥 위에 누워있던 몸을 조심스럽게 일으켰다. 요즈음 허리가 불편한 남편을 부축하여 일으켜 세우며, 나는 그에게 물병을 내밀었다. 남편이 물을 마시는 동안 돗자리를 정리하고 남편 등 뒤에 가방을 매주었다. 일요일 오후 한 때를 숲 속 계곡에서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남편 사무실에 들러 월요일 오전 거래처에 납품할 물건들을 차량에 미리 옮겨 실었다. 한 박스 무게를 재어본 적은 없지만, 허리가 안 좋은 남편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나는 일요일 저녁마다 박스들을 차량에 옮겨 싣는 일을 함께 한다. 어머니의 휠체어를 접어서 트렁크에 혼자 싣고 내리기 위해 푸시업을 꾸준히 하고 있는데, 그 근육의 힘을 여기에서도 요긴하게 써먹는 중이다.
도시의 밤은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여전히 펄펄 끓었다. 늙어가는 부부가 커다란 박스 열 개를 스타*스 차량에 옮겨 실어 놓고, 별말 없이 여름밤의 도로를 달려 집으로 돌아갔다. 저 멀리 보이는 아파트보다 더 크고 선명한 달이 여름 밤하늘에 걸려 있었다. 나는 달을 바라보며 그날 저녁 남편에게 말했었다. "우리 인생은 그래도 뷰티풀이죠? 앞으로 십 년 간 저 박스 옮길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겠네요~" 나는 달을 보며 그렇게 소원을 빌었던 것도 같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원더풀한 친구는 반려자인지도 모른다. 굽이굽이 '원더(wonder, 놀랄만)'한 인생을 살게 해 준 남편이 지금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는 사실이 진짜 '원더풀(wonderful, 불가사의)'한 일인 것도 같다. 이제 곧 사라질 한여름밤의 치열한 더위 끝에서, 팔월 밤하늘의 달이 싫지도 좋지도 않은 무심한 표정을 지으며 집까지 우리 차를 따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