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14 / 2박3일
Mudita, 타인의 기쁨이나 행복을 보고 기뻐함
서은국 <행복의 기원> 오랜만에 마음에 쏙 드는 책을 만났다. "행복의 핵심을 사진 한 장에 담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 그것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이다. 문명에 묻혀 살지만, 우리의 원시적인 뇌가 여전히 가장 흥분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바로 이 두 가지다. 음식, 그리고 사람." 퇴근 후 마주앉아 맛있는 음식과 맥주를 나누며 "이게 행복이지!"라는 남편의 외침과 동그란 웃음에 덩달아 행복으로 물드는 요즘이다.
나는 오사카 여행을 이런 행복으로 가득 채울 작정으로 맛집 찾기에 혈안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잠재된 동심이 깨어났는지 짧은 일정에도 유니버셜스튜디오를 꼭 가야 한다고 했다. 여행 며칠 전부터 오픈런, 놀이기구 많이 타는 방법, 닌텐도월드 무료 입장 방법 등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는 남편의 모습은 낯설었다. 유니버셜스튜디오를 정복하기 위한 남편의 열정은 대단했다.
이번 여행은 2박 3일이지만 실상 1박 2일에 가까운 일정으로, 여행보단 데이트 같았다. 둘이 나란히 배낭을 메고 가벼운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공항에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동안 해는 완전히 떨어졌고, 우리가 처음 마주한 것은 토요일 저녁 번쩍번쩍한 신세카이 거리이다. 대부분의 식당은 손님들로 북적였고, 화려한 간판과 조명들은 눈을 바쁘게 만들었다. 남편은 시선이 가는 식당마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한 번 들러보자고 제안했고, 나는 "그래!" 밝게 대답만 하곤 나의 계획엔 껴주지 않았다.
대부분의 시간을 밖에서 보낼 것이기에 숙소는 가성비 좋은 호텔을 찾아 예약했다. 오사카의 핫플레이스인 난바와 조금 떨어져 있지만, 도부쓰엔마에역/신이마미야역과 가까워 돌아다니기 편했다. 무엇보다도, 편안한 침대와 깨끗한 룸 컨디션이 마음에 쏙 들었다. 우린 후다닥 짐만 내려놓고 굶주린 배를 채우러 난바로 향했다.
장소 : 신세카이 (Link)
숙소 : The b Osaka-Shinsekai (Link) / 1박 약 11만원
이치란라멘은 먹어본 적이 있어, '잇푸도'라는 다른 라멘집을 도전해보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분위기는 이치란라멘이 더 좋은 것 같다. 클래식 라멘과 얼큰한 라멘을 하나씩 시켰는데, 역시 Classic is the best. 남편은 국물이 진하고 담백하다는 호평을 한 후, 순식간에 그릇을 비웠다. 내 입맛엔 국물이 조금 짰지만, 맥주와 먹으니 괜찮은 것 같기도 했다. 매우 만족스러운 식사였다며 활짝 웃는 남편 덕분에 약간 심드렁했던 나의 낯빛은 미소로 바꼈다.
식당 : 잇푸도 난바점 (Link)
도톤보리는 현지인, 관광객으로 인파가 어마어마했다. 야끼니꾸를 맛있게 먹으려면 열심히 소화시켜야 했다. 에비스다리(글리코상)~돈키호테~니폰바시 경로로 걷는 도중에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너무나 귀여운 택시였다. 시내 대부분의 택시가 비슷한 디자인이었다. 올드카 느낌이 물씬 풍겼고 기사님들은 모두 정장을 입고계셨다. 돈키호테(도톤보리점)는 관광객으로 가득차서 구경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열심히 걸어 도착한 '야끼니꾸 히후미', 유명 맛집은 예약이 필수다. 이 곳은 가운데 작은 주방과 주방을 둘러싼 6개의 좌석이 전부다. 고급 우설, 안심, 닭목살과 함께 남편은 하이볼 나는 생맥주를 주문했다. 비싼만큼 고기 품질은 모두 좋았고 남편은 안심을, 나는 우설을 최애로 꼽았다. 분명 붙임성 없는 남편인데, 하이볼과 보리소주에 취해 용기가 샘솟았는지, 뜬금없이 사장님께 일본 하이볼이 너무 맛있다며 제조법을 물었다. 하이볼 극찬에 기분이 좋으셨는지 사장님께서는 흔쾌히 본인의 제조법을 알려주셨다. 숙소로 돌아오는 내내 우리의 대화 주제는 하이볼이었고, 남편은 내일 하이볼 3잔을 마시겠다며 결연히 다짐했다. 내 눈엔 아직 콩깍지가 단단히 씌워져 있는지 36살 아저씨의 하찮은 다짐이 그저 귀여웠다.
장소 : 도톤보리 (Link), 에비스다리 (Link)
식당 : 야끼니꾸 히후미 (Link) / 1호점, 인스타그램으로 예약
전 날 편의점에서 산 샐러드, 삶은 계란, 토마토주스로 아침 식사를 해결하고 서둘러 숙소를 나왔다. 7시30분에 유니버셜스튜디오에 도착했는데 이미 입장이 시작되고 있었다. 사람들이 어찌나 뛰던지, 조급해진 남편은 나의 손을 잡고 뛰었다.
어릴 적 해리포터는 마법사의 돌까지만 봐서 딱히 해리포터 놀이기구에 관심이 없었는데, 유니버셜스튜디오를 열심히 공부한 남편은 첫 번째로 타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놀이동산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놀이기구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탔는데 웬걸, 너무 재밌다! 오사카 여행이 끝난 후, 주말 이틀 동안 해리포터 시리즈를 몰아봤다.
나의 체력은 예전 같지 않아 중간중간 그만 놀고싶다며 투정을 부렸지만, 워터월드까지만 보자고 어르고 달랜 남편 덕분에 비싼 입장료 본전은 뽑은 듯 하다. 그래도 남편이 철저히 공부해온 덕에 오랜 기다림 없이 핵심 어트랙션을 반나절만에 정복했다. (해리포터~쥬라기공원~닌텐도월드~죠스~미니언즈 파크~할리우드 드림 백드롭~워터월드) 함께했던 모든 여행을 통틀어 남편이 리드했던 적이 처음이라 내심 대견하고, 편하고, 의지되고, 즐거웠다.
장소 : 유니버셜스튜디오 재팬 (Link) / 입장료 인당 93,500원
찬 바람을 많이 쐬니 따뜻한 국물이 간절했다. 워터월드 공연이 끝난 직후, 배고픔에 지배당한 둘은 미련없이 놀이동산을 빠져나왔다. 웨이팅이 조금 있었지만, 우동은 회전율이 빠를테니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다. 바글바글 끓는 우동, 고소한 텐동, 부드러운 계란말이 그리고 시원한 맥주. 속이 따뜻해지니 몸이 노곤해졌고, 재충전을 위해 숙소에서 좀 눈을 붙이기로 했다.
식당 : 도톤보리 이마이 (Link)
두 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니 개운해졌다. 저녁과 야식은 숙소 근처(신세카이)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잔잔요코초(먹거리 시장) 내에 가성비 좋고 붐비는 스시집도 많았지만, 이틀 연속 인파로 북적이는 곳에만 있었더니 조용하고 고상하게 스시를 즐기고 싶었다. 다른 초밥은 잘 기억이 안나지만 도미 초밥이 정말 맛있어서 3번이나 주문했다. 역시나 남편은 하이볼, 나는 맥주를 마셨고, 서로 "크으.. 이게 행복이지!"라고 말하며 동그랗게 웃었다.
식당 : 스시히로 (Link)
소화시킬 겸 돈키호테(신세카이점)에서 과자 쇼핑을 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또 다시 만난 잔잔요코초(먹거리 시장). 남편이 눈으로 찜해놓은 야키토리 가게인데 우리 왼쪽엔 국제커플 2명, 오른쪽엔 현지 단골 손님 4명으로 가게가 가득 찼다. 역시나 남편은 하이볼, 나는 맥주를 주문했다. 그리고 갑자기 시작된 노래방.
일본 음악, 한국 음악 노래는 끊임없이 계속됐다. 서로의 노래에 호응하고, 잔도 부딪히고 정겨웠다. 어떤 현지 손님은 한국어 "조아요~"를 남발하며 우리의 흥을 계속 돋구었고, 남편은 하이볼 3잔의 목표를 거뜬하게 달성했다.
내 옆에 앉은 현지 손님은 우리에게 오사카 여행이 어땠는지, 연인인지, 부부인지, 아이가 있는지 질문했다. 아이가 없다는 우리의 대답에 둘을 닮은 아이는 정말 예쁠 것 같다는 덕담으로 대화는 끝났다. 남편은 덕담의 여운이 길게 남았는지 잠들기 전에 그 아저씨의 말에 기분이 묘했다고 했다. 나도 그 덕담에 묘함을 느꼈지만, 남편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가 느낀 그 묘함에 대해 생각하다 잠들었다. 남편의 감정까지 내가 규정할 순 없지만, 그것은 낯선 사람이 건넨 환대와 따뜻함에서 온 감동 아니었을까. 아이를 원하는 남편과 아이를 원하지 않는 나, 이 간극에 대한 안타까움도 있었을 테다.
식당 : 잔잔요코초 (Link) 내의 어느 야키토리 가게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우리가 나눈 마지막 행복은 하츠마부시(장어 덮밥)이다. 한국에서 미리 예약한 구글 평점 무려 5점짜리 맛집이다. 예약하지 않은 손님은 기다림 옵션도 없이 돌아가야 했다. 나는 하등 쓸모없는 승리감을 느끼며 직원의 안내를 받아 자리에 착석했다.
남편은 한 마리, 나는 반 마리 하츠마부시를 주문했다. 평소 장어를 먹지 않는 난데 충격적으로 맛있었다. 담백한 장어, 장어에 발린 알맞게 짭쪼름하고 달짝지근한 소스, 고슬고슬한 흰 쌀밥의 환상적인 조화. 한국에서 웬만한 장어덮밥으론 도파민 분비가 어려울 것 같다.
오사카 여행 중 맛있는 음식, 하이볼, 슈퍼마리오에 쉽게 행복을 느낀 남편 덕에 나는 거저 행복한 순간이 많았다. 행복을 구태여 찾기보단, 가끔은 이렇게 남편의 행복에 무임승차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식당 : DOTONBORI KUROFUNE Nagahoribashi (Link) / 라인으로 예약
이주헌 과장님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