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비터-스윗, Los Angeles

2025.07.18 / 7박 9일 (미국 서부 #2)

by imsong
Bittersweet, 고통이나 후회를 동반한 즐거움


하나의 대상이나 상황에 대해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이 공존하는 것을 양가 감정이라고 한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지만 불안할 때, 양껏 먹고 싶지만 살 빼고 싶을 때, 친구들을 만나고 싶지만 귀찮을 때 이러한 모순된 감정은 종종 우리 일상에 찾아온다.

이러한 감정이 들이닥친 순간에는 당장, 상반된 감정 둘 중 하나만 선택하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어 혼란스럽고 괴롭다.


LA 여행은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시작됐다. 부모님과 다양한 경험을 함께할 생각에 설레면서도, 운전대를 잡으면 예민해지는 남편이 걱정됐다. 행여나 엄마 아빠가 남편 운전에 훈수를 두어 남편에게 스트레스를 줄 까봐 마음이 불안했다. LA로 이동하는 차 안은 긴장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물론, 차에서 내내 잠만 주무신 부모님들은 이 긴장감은 꿈에도 몰랐을 테다.





5일차


LA까지 차로 약 4시간을 달려야 하는데, 지루해할 부모님들을 위해 라스베이거스에서 차로 약 20분 떨어진 거리에 있는 세븐매직마운틴에 들러 기념사진을 찍었다. 쨍한 햇빛 덕분에 알록달록한 돌들은 더욱 상큼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태양이 너무 뜨거워 오래 머물진 못 했지만, 부모님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하나쯤 건져 뿌듯했다.


바스토우(Barstow)는 라스베이거스와 LA 중간에 위치한 도시로, 이곳 인앤아웃 버거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남편은 햄버거가 싫다고 투정부리던 장인어른을 걱정했지만, 아주 맛있게 잘 드시니 흐뭇해 했다. 그리고 바닐라쉐이크에 감자튀김을 찍어먹는 로망도 실현했다.


바스토우를 떠나기 전, 주유를 했는데 트래블 월렛 계좌에서 돈이 인출되지 않았다. 나는 남편에게 주유소로 돌아가서 확인하자고 했다. 아빠는 가이드들이 엉성하다며 장난스럽게 말했는데, 이 때 나는 남편의 멘탈에 금이 갔음을 감지했다.

주유소 직원은 보통 카드에서 돈이 바로 인출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직원은 우리에게 결제가 정상적으로 됐음을 영수증으로 확인해주었다. 남편은 본인이 제대로 했는데 왜 돌아오자고 했냐며 짜증섞인 목소리로 말했고, 나는 확인하고 가는게 뭐가 문제냐며 따지듯 말했다. 부모님들을 의식해서 더는 말하지 않았지만, 서로 마음이 상한 채로 LA에 도착했다.


장소 : 세븐매직마운틴 (Link)
식당 : 인앤아웃 버거 (Link) / 바스토우(Barstow)
숙소 : 호텔 노르망디 LA (Link) / 주차장 위치 : 호텔 대각선 길 건너편 ($45/일)
2025년 7월 22일 세븐매직마운틴 / 인앤아웃 버거 / 호텔 노르망디 LA 주차장 위치


호텔 노르망디 LA는 시설이 노후되고 방음이 안됐지만, 주변에 한식당이 많아 부모님들 식사 챙기기에 편리했다. 남편은 환기를 시켜도 불쾌한 냄새가 사라지지 않아서 침대 밑에 노숙자가 있는지 살펴봤다고 한다. 숙소에 짐만 내려놓고 서둘러 저녁을 먹으러 북창동 순두부로 향했다.


아빠는 순두부찌개를 먹으로 간다고 하여 대단히 실망했지만, LA갈비를 보고는 행복한 미소를 되찾았다. 반찬도 양껏 주고, 물도 공짜로 주는 한국 식당 인심에 어머님과 엄마도 세상 편해보이셨다. 반면에, 부모님들의 느긋한 저녁식사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마음이 조급했다. 야구경기를 보려면, 한 시간 전 경기장에 미리 도착해야 하는데 시간이 빠듯했다.


식당 : 북창동 순두부 (Link)
2025년 7월 22일 북창동 순두부


우리는 경기시간에 거의 맞춰 다저스 경기장에 도착했다. 입장하러 가는 길에 미국 국가가 울려 퍼졌는데 마음이 조급해진 아빠는 한가롭게 경기장 밖에서 사진찍는 나를 못 마땅해 했고, 빨리 가자며 작은 신경질을 냈다. 입장 전 소지품 검사를 했는데 엄마가 가져온 양산은 소지 불가했다. 버리든 돈을 내고 사물함에 보관해야 했다. 엄마와 나는 차에 양산을 다시 놓고와야할 것 같다고 말하면서 우리의 눈은 남편을 향했다. 체념한 남편은 홀로 차에 다시 다녀와야 했다.


나는 서둘러 부모님들을 예매한 좌석으로 안내했는데, 남편을 다시 마중 갈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꼭대기 층(Top Deck)까지 나를 쫓아온 부모님들은 '어휴 무슨 이런데 자리를 예약했어'라는 눈빛과 함께 거친 숨을 내쉬셨다. 나는 다시 남편을 찾으러 내려갔지만 다른 입구로 가는 바람에 만나지 못 했고, Top Deck에서 만났다. 서늘한 날씨인데도 땀을 한 바가지 흘렸다.


아빠는 야구를 정말 좋아하는데, TV로 보면 되지 무슨 경기를 보러 가냐며 무심한 척 했었지만, 새어나오는 미소와 벌렁거리는 콧구멍은 어쩔 수 없었다. 연신 "김혜성 화이팅~!"을 외치던 아빠는 목이 쉬어버렸다. 엄마와 어머님도 예상 외로 야구를 즐기시는 듯 했다. 남편은 주차장 규모부터 야구 배트 타격 소리까지 클라스가 다르다며 꽤나 흥분된 모습이었다. 무엇보다도, 아이처럼 좋아하는 장인어른을 보니 뭔가 짠한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음씨 따뜻한 사위는 장인어른에게 야구모자를 선물했다.


야구 경기를 기대 이상으로 즐기는 가족들을 보니 너무 좋았지만, 미국 여행 내내 잠을 제대로 못 잤던 나는 이 날 피로가 극에 달했다. 장인어른을 위해 끝까지 보자는 남편과 피곤하실 사돈을 위해 7회말까지만 보고 나가자는 아빠 사이에서 못 이기는 척 아빠 말을 따라 서둘러 나왔다. 다음날 오타니가 9회에 홈런을 쳤다는 소식을 듣고, '다 보고 나올 걸' 두고두고 후회했다.


장소 : 다저 스타디움 (Link)
2025년 7월 22일 다저스 경기장


6일차


LA 여행 주요 계획 중 하나는 산타 카탈리나 섬 반나절 투어였다. 한인타운에서 롱비치까지는 차로 약 40분, 롱비치 선착장에서 페리를 타고 아발론 선착장까지 약 1시간이 소요됐다. 섬 안에서는 골프카트로 섬을 한 바퀴 둘러볼 수 있다. 미국 전화번호가 없어 6인용 카트 예약 대기에 애를 먹었지만, 수시로 순번을 확인하며 한 시간 넘는 기다림 끝에 골프카트를 대여할 수 있었다.


화창한 날씨는 섬을 더욱 낭만적으로 만들었고, 이 곳은 부모님들 마음에 쏙 든 듯하다. 나는 운전을 하고 남편은 지도를 보느라 기억에 남는 장면은 별로 없지만, 부모님들에겐 섬의 아름다운 모습이 한 가득, 오랫동안 기억되길 바란다.


'Bluewater Avalon'라는 식당은 아름다운 오션뷰로 유명한 식당이다. 점심시간에 약간에 대기가 있었고, 그 틈을 타 아빠는 여기저기 섬을 누비며 쉴 새 없이 사진을 찍었다. 대기 순번이 다 됐는데 부모님들이 보이스톡을 받지 않아 내 속은 부글부글했지만, 맛있는 음식과 시원한 맥주가 나의 화를 식혀주었다.


장소 : 산타 카탈리나 섬 (Link) / Ferry 이용 : 롱비치 ↔ 아발론 (예약 홈페이지 : Link)
골프카드 대여 : (Link) / 예약 대기 시, 미국 전화번호 필수 (4인용 $65/h, 6인용 $85/h)
식당 : Bluewater Avalon (Link) / 랍스터롤 추천
2025년 7월 23일 산타 카탈리나 섬


섬을 나와 곧장 산타 모니카 해변으로 갔다. 본래 나의 계획은 산타모니카 사인 앞에서 사진만 찍고 다른데로 넘어가는 것이었는데, 모래사장도 밟아보고 싶고, 물에 발도 담가보고 싶고, 간식도 먹고싶은 아빠의 호기심은 못 말렸다. 일몰(20시경)까지 머무르고 싶었지만, 해가 너무 길었다.


나는 미국인 새언니가 있다. 임신 축하 선물을 못해준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숙소 복귀 전, Old Navy에서 10월에 태어날 조카의 깜찍한 옷 쇼핑을 잔뜩했다. 시간이 좀 걸려 가족들에게 미안했지만, 할로윈 베이비라며 행복해하는 언니에게 호박 옷을 꼭 사다주고 싶었다. 남편은 부모님들이 힘들고 시장하실까봐 안절부절하며 나를 재촉했다.


저녁은 보일링크랩을 계획했었는데, 대기가 길어 한식당으로 변경했다. 비빔밥, 오징어 볶음, 칼국수 등 한국의 맛 그대로였고,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아빠는 소주, 어머님은 막걸리 한 잔에 피로를 날렸다. 부모님과 함께한 미국 여행은 아침/저녁으로 한식을 먹어서 한식이 그리울 새가 없다.


장소 : 산타 모니카 해변 (Link)
장소 : Old Naby in Westfield Century City (Link)
식당 : 여기요 (Link) / 오징어 볶음, 들깨 칼국수 추천
2025년 7월 23일 산타 모니카 해변 / Old Navy Pumpkin Zip One-Piece


7일차


이탈리아 로마에 가면 콜로세움 앞에서의 사진이 필수이고, 프랑스 파리에 가면 에펠탑 앞에서의 사진은 필수이다. 남을 부러워 하고만 살았던 부모님들께, 남의 부러움을 살 만한 사진을 많이 찍어드려야 했다. 그래서 하루는 LA의 상징적인 명소를 몽창 둘러볼 계획이었다. 오늘은 사진을 많이 찍을 거라며 예쁜 옷을 입으라고 엄마들에게 강조했다. 엄마는 싱그러운 원피스를, 어머님은 화사한 핑크 티셔츠를 꺼내 입었다.


첫 일정으로 미술관을 간다고 하니, 부모님들의 반응은 그저 그랬다. 하지만 잘 가꿔진 정원과, 우아한 건물 자태에 모두 반했다. 2시간을 구경했는데 그것도 모자라 아빠는 사진을 더 찍고 오겠다며, 우리 보고 먼저 모노레일을 타고 내려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어딜가나 아빠의 리액션은 여행 가이드인 남편과 나를 뿌듯하게 했다.


장소 : 더 게티 (Link)
2025년 7월 24일 더 게티


멜로즈 거리로 향하던 도중 만난 UCLA, 평일 낮 해먹과 잔디밭에서 낮잠과 독서를 즐기는 사람들의 여유와 문화 그리고 그런 삶이 부러웠다. 그리고 우리는 나중에 손주들이 이 학교에 입학할 수도 있지 않겠냐며, 훗날의 작은 가능성을 염두해두고 분주하게 사진을 남겼다.


파머스 마켓에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아빠 눈엔 랍스터만 들어왔다. 어제 못 간 보일링크랩을 오늘 꼭 가자며, 싱싱해보이는 랍스터를 꾹 참아냈다. 대신 소고기와 생과일 주스로 배를 든든하게 채웠다. 파머스 마켓은 마켓 내 상점을 이용하면 2시간까지 주차가 무료이다. 단, 주차권을 챙겨 이용한 상점에서 Validation(주차 티켓 바코드 스캔)을 받아야 한다. 그걸 몰랐던 엉성한 가이드들은 주차권을 챙겨가지 않아, 가게로 돌아가야 했고, 부모님들은 주차장에서 우리가 해결할 때까지 기다렸다.


장소 : 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UCLA) (Link)
장소 & 식당 : 파머스 마켓 (Link) & 팜파스 그릴 (Link)
2025년 7월 24일 UCLA / 파머스 마켓 / 팜파스 그릴


LA의 상징 할리우드 파크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3시 쯤으로 해가 상당히 뜨거웠다. 약 15분을 걸어 할리우드 사인 가까운데서 사진을 찍으려 했는데, 남편은 중간에 잠시 길을 잘 못 들어 부모님들의 눈치를 보며 당황해 했다. 그리고 그리피스 천문대로 이동하는 차에서는 구불구불하고 좁은 내리막 길에서 괜스레 위험을 느꼈던 우리들의 목소리가 커지자, 운전자인 남편의 스트레스가 치솟는게 보였다.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해가 떨어지길 기다리며, 어머님과 남편 셋이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눴다. 나는 어머님께 우리가 그동안 다녔던 여행지가 어디인지 퀴즈를 냈고, 어머님은 기억력이 한 해 한 해 나빠진다며 무기력해했다. 남편은 어머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통장 금액은 잘 기억하는데, 관심없는 것은 기억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고 타박했지만, 남편의 눈엔 걱정과 슬픔이 가득했다. 주황색으로 물든 하늘은 우리 대화에 마침표를 찍었다.


장소 : 할리우드 파크 (Link)
장소 : 그리피스 천문대 (Link)
2025년 7월 24일 할리우드 파크 / 그리피스 천문대


여행은 분명 너무 즐거웠지만, 남편과 나는 '사랑하면서 미워했고, 감사하지만 불편했고, 기대되지만 두려웠고, 여유롭지만 조급했고, 편안하지만 불안했던' 모순적 감정들이 불쑥 찾아와 괴로웠던 순간들이 많았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상대방에게 실망하고, 의도하지 않게 상처주고, 자책했던 순간들을 되새기며, 그 당시의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한층 더 성숙해졌다.


그리고 여행 내내 감정소모가 많았기 때문일까, 유독 엄마에게 모질게 굴었다. 마트에서 아무것도 안 산다고 했던 엄마가 공항에서 지인에게 선물한다며 3만원짜리 초콜릿을 여러 개 집어올 때 퉁명스럽게 굴며 많이 안 사준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엄마를 위해 계획한 여행이었는데 엄마의 기념품도 없었고, 챙겨간 생일 초도 못 불어 줬다. 엄마에게만 늘상 이기적인 딸은 이번에도 염치없이 엄마가 좋은 순간만 기억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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