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은 소비라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라가 있는 것과 다를바 없다
포드와 GM은 단순히 미국의 자동차 회사로만 알려져있지만,
이들 두 회사가 현대의 모습에 미친 영향은 막대하다.
한 쪽은 직업윤리관과 생산 체계를 완전히 바꿔버렸고,
다른 쪽은 소비하는 주체로서의 우리의 삶의 방식을 바꿔놓았다.
포드는 창업자인 헨리포드가 1903년 40세의 나이로 자기집 헛간에서 자기 이름을 본따 차린 회사이다.
그가 자동차 회사를 만들었을 시점에는 미국 차의 명성은 그리 드높지 못했다. 프랑스 회사인 르노가 유럽 자동차시장을 꽉잡고 있었다. 당시 르노의 차량은 조작성이 뛰어나 1909년도 런던 택시의 거의 절반 이상, 파리 택시의 3분의 2가 르노의 자동차일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포드는 가격을 통해 시장을 장악하려 했다. 대량 생산을 통해 생산 단가를 낮추기 위해 고심하던 포드는
도축장에 매달린 육류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컨베이어 벨트로 대표되는 이동형 생산 라인(Moving Assembly).
즉, 사람이 일에 가는 게 아니라 일이 사람에게 오는 생산 시스템을 개발했다.
생산라인의 혁명은 극적인 생산 증대로 이어졌다. 작업장을 옮겨 다니며 일하던 노동자들이 한 자리에서 컨베이어 벨트가 쏟아내는 부품을 단순 가공하자 효율이 높아졌다. 이 같은 혁신으로 인해 포드는 당시 자동차 평균 판매 가격인 2000달러의 절반도 안되는 가격인 850달러짜리 신모델 T를 선보였고, 시장은 열렬히 환호했다.
포드의 성공은 미국 내 제조업 전분야로 퍼졌다. 대량생산 체제에 힘입어 미국은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이라는 위치를 굳혔고, 포드주의라는 신조어 까지 생겨났다. 곧 포드주의는 대량생산체제를 일컫게 되었다.
대량생산체제를 통해 장인정신은 끝을 맺고 말았다. 이곳에서 인간의 행동은 정신적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미리 정해진 절차에 따라 그저 묵묵히 기계적으로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 격하되었으며, 자발성과 개인의 주도력은 금기시되었다.
노동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획득하던 사람들은 기계처럼 일하는 반복 노동과 단순 작업에 싫증을 내고 공장을 떠났다. 포드주의 이전의 노동은 숙련도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분업이 보편화되기 이전의 노동자들은 라인 내의 모든 일을 수행할 수 있었다. 도제 시스템처럼 점차 간단한 업무에서 복잡한 업무로 변화하는 형태였다.
건축가 렌조 피아노(Renzo Piano)는 자신이 일하는 과정을 이렇게 소개한다.
"우선 스케치를 합니다. 그리고 도면을 그리죠. 다음에는 모형을 만듭니다. 그리고 나서 실물(건축현장)을 직접보고 다시 도면으로 돌아옵니다. 도면 그리는 일과 실제 건축 사이를 계속 오가는 일종의 순환 과정을 만드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끊임없이 반복합니다."
- 렌조 피아노(Renzo Piano)
즉, 제작에 필요한 모든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순환하는 과정이 곧 장인을 만드는 과정이다.
그러나, 포드주의는 테일러주의와 결합하여 인간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주체에서 생산라인에 필요한 부품으로 격하시켰다.
그러한 대접을 사람들이 견딜 수 있을리 만무했다. 당시 포드의 공장은 100명의 직원을 유지하기 위해 900명을 채용할 정도로 이직률도 높았다. 포드는 이런 문제를 고임금으로 극복하고자 했다. 1914년 1월5일, 헨리 포드는 포드자동차 노동자들의 일당을 두 배로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이전까지 자동차업계 노동자들의 일당은 평균 2.34달러였다. 포드의 임금인상은 미국을 ‘충격’에 빠뜨렸다고 한다. 당시 뉴욕타임스 경제부장이 놀라서 회사로 뛰어들어와 “포드가 미쳤다”고 할 정도였다. 고임금을 통해 그러한 부품화를 견뎌내고자 했던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고, 포드주의 생산라인이 전 제조업으로 확대됨에 따라서, 고임금은 사라지고, 결론적으로는 파편화 되고 부품화 된 노동자만 남게 되었다.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이해하고 있는 세련된 유한계급들이 기존의 장인들이 가져가던 이익을 독차지하게 된 것은 물론이다.
이런 포드의 독주 체제에 제동을 건 회사는 GM이었다. GM의 창업자는 듀란트라는 사람이지만, 그는 무리한 인수합병을 일삼다 알프레드 슬론(1875~1966)에게 자리를 내주고 만다. 슬론은 제너럴모터스의 총수를 지낸 인물로, 생산에서의 헨리 포드의 혁신성과 한 쌍을 이루는 인물이다.
그는 조직관리와 마케팅 분야에서의 혁신을 이끌어 내었는데,
매년 새로운 모델을 출시하고 지속적으로 상품을 업그레이드하며, 상품을 사회적 지위와 연관시켜 변화에 대한 끝없는 욕망을 인위적으로 심어주는 전략을 사용했다.
위는 슬론이 취임한 이후 GM 자동차들의 가격표이다.
위에서 볼 수 있듯이 각 영역을 침해하던 브랜드라인을 정리하고,
각 브랜드 별로 타겟 고객층을 명확하게 나눈것이다.
즉, ‘보통사람들을 위한 쉐보레, 가난하지만 자존심 강한 사람들을 위한 폰티악, 삶의 여유가 있지만 신중한 사람들을 위한 올즈모빌, 야망을 가진 정치인을 위한 뷰익, 부유층 인사들을 위한 캐딜락’으로 타겟팅하고 판매하기 시작했다.
단일 모델을 주구장창 판매하던 포드에 비해 사람들은 소비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매력적으로 느꼈고, 이는 결국 포드가 점유율을 잃고 GM에게 시장을 내주는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더 이상 사람들은 저렴하기만 한 물건을 원하지 않았다. 학습된 소비자로서의 고객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원해야 한다고 이해했다.
포드와 슬론 둘 모두 사람들에게 진취성과 독립적으로 사고하려는 의지를 저하시켰다. 포드는 노동계급의 일자리와 개인의 정체성을 떼놓아버렸고, 슬론은 기존의 상품을 즉각 구식이 될 수 있도록 고안된 일회용 상품들로 바꾸었다.
끊임없이 유행을 창조해서, 기존 제품들에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 것을 부끄럽게 만들어 버렸다. 사람들은 매년 매 시즌 브랜드에서 새로운 상품이 출시되는 것을 당연하게 느끼도록 학습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이렇게 얘기한다.
"야, 언제까지 그런 고물차를 탈래? 이젠 좀 바꿔라."
이제는 오래된 예전 모델을 사용하는 것이 귀감이 되는 올바르고 건장되는 행위가 아니게 되었다.
오히려 그 빈 자리를 '유행에 뒤처진', '변화를 두려워 하는', '구식의', '괴짜'와 같은 수식어가 자리를 채웠다.
쇼핑을 다닐 기회, 우리의 진정한 자아를 고르고 나눌 수 있는 기회, 계속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오늘날의 소비자 사회에서는 자유를 의미하게 되었다. 소비자의 선택은 그 자체로 하나의 가치가 된 것이다.
영국의 시민운동가이자 교사인 제레미 시브룩은 자신의 저서를 통해 이 같은 경향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자본주의가 사람들에게 상품을 배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점점 상품에게 배달되고 있다. 말하자면 사람들의 성격과 감수성 자체가 상품들과 경험들 감정들에 대략적으로 어울리는 방식으로 다시 만들어지고 개조되어 이것들을 소비함으로써만 우리 삶의 윤곽이 드러나고 의미가 생기게 된 것이다."
- Jeremy seabrook, The Leisure Society p.183
이제 선택하지 않을 권리라는 건 사라져 버렸다.
우리의 삶은 소비라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라가 있는 것과 다를바 없다.
선택하지 않으면, 구식이라는 이름으로 도태되는 취급을 당하게 된다.
소비자 사회는 보편적 비교의 사회다. 다른 욕망을 '잘못된 필요'라고 불법화 할 규범이 없기 때문에 어떤 것이 좋은 소비인지 아닌지 측정해줄 수 있는 어떤 비교표도 없다. 따라서 주요 관심사는 충분함의 문제가 된다. 즉, 늘 소비를 할 수 있도록 준비된 상태인가? 소비의 기회가 오면 그 기회를 향해 뛰어오를 능력이 있는가? 새로운 유행에 발맞춰 새로운 욕망들을 개발할 수 있는가 등이다.
도태되지 않도록 쇼핑을 하는 우리들은 이미 기업들이 만들어 놓고, 미리 그려놓은 사회의 모습이다.
힙함을 위해 소비를 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감이지, 어떻게 사는 것 처럼 보이도록 소비를 하는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타인의 시선과 생각에 지나치게 속박되어 자기 자신을 잃어가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참조
* Zygmunt Bauman, 《liquid modernity》 2000
* Christopher Lasch, 《The Minimal Self》 1985
* (기사) (경향) 임금 올려야 불황 극복… ‘포드 모델’의 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