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조금씩 나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필요합니다.
스넬만Snellman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핀란드와 스웨덴에서는 꽤나 유명하거든요.
물론, 핀란드 사람들의 복지를 월등하게 개선했다거나, 세계 전쟁사를 뒤바꿀 혁신적인 무기를 개발했거나 한 건 아닙니다. 스넬만은 다름 아니라 육즙이 풍부한 소시지 제품을 만드는 회사로서 유명하니까요.
1951년에 작은 가족기업으로 시작했으니, 그들은 햇수로 70년째 소시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비단, 소시지 만을 만들어 내진 않습니다. 스넬만 그룹은 Kokkikartano라는 식품회사와 Mr. Panini라는 파니니 체인도 소유하고 있고, MUSH라는 펫푸드 회사도 가지고 있죠. 또한, Figen이라는 육가공 회사와 Carolines Kök이라는 반조리 식품 회사도 가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육가공과 관련된 이런저런 사업들을 벌이고 있는 셈입니다.
저는 유년시절부터 핀란드의 육가공업체 시장에 평소부터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소시지 공장에서 일하셨던 저의 증조 할아버지에서 출발...은 죄송합니다.
사실 저는 핀란드는 커녕 북유럽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많이 했습니다. 좋아하는 외화인 Vikings를 보면서,
'이-야 나도 언젠가는 저 바이킹들처럼 얼음덮힌 광야를 거닐고 싶구나!'
라고 생각했다가, 핀란드는 게르만족들과 전혀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혼자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나는군요. 실은 스넬만도 모두 검색을 통해 방금 전에 알게 된 것들입니다. 그 전까지는 스넬만은 커녕 핀란드라는 나라가 정확히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몰랐거든요.
제가 뜬금없이 핀란드의 소시지 회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우연히도 핀란드 북부의 야콥스타드에 위치한 정육가공 공장인 Snellmanin Lihanjalostus Oy 의 직원인 Mancki, Roland, Kennet 및 Mia가 신뢰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는 영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Osa 4 Ihmiset alkavat ajattelemaan
Mancki, Roland, Kennet ja Mia keskustelevat luottamuksen rakentamisesta.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 비디오가 제 추천 피드에 떴는지 저도 도대체 알 길이 없습니다만,
좌우지간 저는 그들이 도대체 누구고,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건지 구글 번역기를 열심히 돌려보게 되었습니다.
번역기에 의하면, 그들은 신뢰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동료의 성공이 나의 성공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그렇게 추측됩니다.) 워크샵이나 대단히 특별한 자리도 아닌 것 같아 보입니다. 일반적인 회사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는 것이 전부니까요.
물론, 대단히 참신한 얘기가 나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저는 그들이 회사에서 그런 미팅을 한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제품을 어떻게 생산하고, 어떻게 팔 것인지에 대한 얘기는 나오지 않는 회사 미팅이라니요. 게다가 그런 영상을 찍어서 공식 계정이 업로드를 한다니요(?!) 제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가더군요. 바로 그 때문입니다. 스넬만이라는 곳이 대체 뭣하는 회사인지 찾아보게 된 것은요. 그리하여 그들의 소시지사업과 그 모든 비밀들을 낱낱히 알게 된 것이죠.
(속부터 한국인인 우리는 일터에서 생산성으로만 평가받기에, 회사에서는 회사를 위해서만 시간을 쏟아야 하는 것 같은 심리적 압박을 느끼곤 합니다. 우리 개인의 성장을 위해 회사에서의 시간을 쏟는 것 일종의 불문율 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핀란드 전반이 그런건지는 알지 못합니다)
스넬만이라는 회사에 흥미를 느껴 조금 더 정보를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다 스넬만에서는 직원들이 출근할 때 아예 자신의 자아 전부를 일터까지 데려오도록 장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게 이해가 안가더군요. 한국회사 (가령 삼성이나 유수의 대기업에서는) 회사를 곧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도록 교육(이라는 이름의 세뇌..)를 하곤 하지 않습니까? 그런 종류의 얘기라고 생각했던 제 추측은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읽고나서 산산조각 나버렸습니다.
"우리가 인터뷰했던 스넬만 직원 한 사람은 회사의 지원으로 철학과 언어학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그것도 수준이 아주 높은 과정이었습니다. 그가 공장에서 소시지 만드는 그의 일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은 확실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일의 어떤 점이 좋은지 물었죠. 그랬더니 '우리는 이 나라 소시지의 품질을 바꿔놓았고, 우리가 만드는 소시지에는 깊은 철학이 담겨 있다.' 고 하면서 '나는 매일같이 이곳에서 좋아지고 있다.'고 대답하더군요."
《일자리의 미래》 - 엘렌 러펠 셸
인터뷰어는 그가 '좋아지고 있다'고 말한 것에 주목했습니다. 이는 그가 직장에서 뿐 아니라 삶에서 배우며 성장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스넬만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도록 많은 것을 지원해주고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모든 핀란드에서 그런 혜택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 스넬만이 핀란드에서조차도 유별나긴 한가봅니다. 그럼 그들은 왜 그런 일을 하는걸까요?
스넬만이 전하는 메세지는 '당신이 가진 모든 역량을 회사에 바쳐! 회사는 당신이 일의 의미를 찾도록 도울게!'가 아니라, '당신이 스스로 일의 의미를 찾고 자기계발을 할 수 있도록 회사가 돕겠다! 당신은 그저 행복하라.'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스넬만의 한 직원이 말하길 자신에게는 '안정감'이 모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곳에 있으면 평안함을 느낍니다.
나같이 작은 사람에게 우리 회사는 정말 크고 좋은 곳 입니다."
- 스넬만의 한 직원
그가 말한 작은 사람이 키를 말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그것은 일종의 그릇의 크기입니다. 우리 모두는 일론 머스크나, 제프 베조스 혹은 마크 주커버그가 아닙니다. 우리 대부분은 작은 사람들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들보다 못났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애매하고 거대한 기대를 갖고 앞으로 달려 나가는 게 아니라, 일에서 작고 꾸준한 성과를 내고 거기에서부터 만족감과 목표를 찾는 그런 작은 사람들이라는 것이죠.
언젠가부터 우리는 성장에 대해서 강박을 가지고 이야기 하고는 합니다. 일터는 자신의 자아를 실현해야 하는 곳이고, SNS를 보면 꿈과 열정을 가지고 무언가를 성취한 사람들의 자기 고백으로 가득하죠. 어딘가 모르게 조급해집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어딘가 목표와 성취를 가지고 있는데, 왜 나는 여기에 멈춰있는것 같은 느낌을 받는건지 혼란스럽고 복잡한 느낌을 받죠.
우리는 우리 스스로 세운 기대에 부합하지 못하는 경우 자신이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고, 이런 우려는 불안이라는 씨앗을 뿌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 원인의 상당 부분이 직장에서 어떤동력이 결여됐다고 느끼는 데서 기인합니다. 물론 여러가지 요소들이 중요하겠지만, 최근 2030세대의 퇴사가 줄지어 생겨나는 것도 그런 부분들이 영향을 미쳐서는 아닐까요?
2030 직원 '줄퇴사'…연봉 1억 '신의 직장' 술렁이는 까닭
하버드의 교육학자이자 《세계 성취도 격차》의 저자인 토니 와그너Tony Wagner는 핀란드의 성공은 두려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두려움의 제거'에 기인했다고 말합니다.
"콜로라도 주 더글라스 카운티에 있는 한 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강당을 가득 채운 학생들에게 앞으로 가장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그때 들은 한 여학생의 대답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이었던 것 같은데, '뭔가를 배울 때 두려워지지 않기를 원해요.'라고 말하더군요. 바로 이것이 미국의 교육이 모든 학생들에게 저지르고 있는 만행입니다. 그들이 이른바 '틀린 답'을 하는 위험을 감수하지 못하도록, 즉 배움을 두려워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 입니다."
《세계 성취도 격차》 - 토니 와그너
스넬만이 그들의 직원들에게 제공하고자 하는 모든것들도 직원들이 회사 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끊임없는 불안감을 제거해주기 위해서 일지 모르겠습니다. 스넬만의 직원들은 회사에서 제공하는 배움과 성찰의 기회를 통해 작은 사람인 자신이 무언가 조금씩 나은 존재가 되어가는 느낌을 받고 있기 때문에 행복할 것 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 느낌. 우리가 옳은길로 나아가고 있다는 바로 그런 느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대단한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게 첫번째 겠죠.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 또한 작은 사람이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