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민 배우
물론 재방송이었다.
어느 날, 무심코 TV를 틀었는데 박정민 배우가 유퀴즈에 나오는 장면이 보였다.
평소에 내가 좋아한 배우다.
연기할 땐 느긋하고 너무도 또렷한 말투로, 또
‘아 저 배우 목소리 참 좋다’ 하는 생각이 들게금 한 단어 한 단어씩 꼭꼭 눌러 담이 밀하는 배우.
Mc분은 “처음에 고려대가셨다가 다시 스스로 나오셔서 한예종을 또…” 하자,
박정민 배우는 너무도 아무렇지도 않다는듯이 이렇게 말했다.
“네, 원래 영화 연출 하고 싶어서 연출과 썼는데 떨어졌어요. 그래서 고대 갔죠 뭐.”
그러곤 덧붙였다.
“근데 1년 다니다가 자퇴하고, 이번엔 그냥 연기부터 해보자 싶어서 연기과로 다시 지원했어요.”
예전엔 그런 일화를 그저 ‘멋지다’고만 느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내게도 너무 이로고 싶은 꿈이 생기자
그 말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나도 작가가 되고 싶다면…
나도 배우의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 하나로 서울로 올라왔다.
그게 첫걸음이었다.
물론 방향은 틀렸다. 처음엔 입시 학원에 갔다.
“어… 지금 어떤 일 하세요?”
“대백님이 쌓아오신 게 많으신데… 굳이 연기를 왜…”
그런 반응들이 이어졌다.
그러다 그 상담 선생님이 말했다.
“입시학원 말고, 그냥 취미학원부터 시작해보시는 건 어때요?”
그렇게 용산의 한 연기학원에서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학원 사람들은 나를 환영해줬다. 물론 영업일 수도 있지만,
그날 나는 이상하게 기뻤다.
뭔가 우왕좌왕이긴 했지만,
내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학원 수업은 이렇게 구성돼 있었다.
1교시 스트레칭, 2교시 발음과 발성 교정, 3교시는 자유 연기.
자유 연기 시간에는 학생들 앞에 카메라를 세워두고,
하나하나 연기를 녹화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방금 대백님 자기도 모르게 또 카메라 봤죠? 배우는 카메라를 봐선 안 돼요.”
순간 떠올랐다.
영화 ‘살인의 추억’ 마지막 장면.
송강호 배우가 정면을 응시하던 순간.
“선생님, 송강호 배우님이 살인의 추억에서 카메라를 바라보는 장면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건 의도된 건가요?”
“그건 감독의 의도가 맞아요.
보통 그런 응시는, 감독이 관객에게 뭔가를 정말로 전달하고 싶을 때만 나오는 장치죠.”
나는 그때,
정답을 맞혀서가 아니라
그 말을 들으며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장면 하나 때문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의 마지막에 카메라 응시 장면을 연출하자.
카메라를 응시하는 장면.
그 눈빛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
"시험의 결과보다, 그 과정을 버티며 살아낸 너희가 대단하다고”
그리고 그 3년간의 노력이 절대로 헛된 경험이 아니라고”
그 말 하나를,
내 주인공의 눈빛에 담아보고 싶었다.
지난 회차에서 종교 때문에 속상하다고 했던 나였지만 불과 한달도 안된 서이에 다시 불타올랐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분명해졌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고 무모하다고 할 테지만
이 꿈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다.
이건,
내가 꼭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이윽고 연기학원 선생님이 내 말이 맞다고하셨다.
분명 봉준호 감독님의 의도가 들어간거고, 이 장면은 매우 유명한 장면이라고…
그때 확신이 들었다. 아 나, 뭔가 계속 이 꿈을 이어가도 괜찮겠다고…
더 꿈을 꾸고 더 나아가 내가 생각하는 혹은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줘야 한다고..
오그라들 수 있고 너무 무모하다 할지 모르겠지만
이건 나만 할 수 있을거같았다.
난 이때까지만 해도 그냥 이야기의 주제만 넣어놓고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던것같다.
그러다가 더 나아가서… 구운몽, 세종대왕, 척호갑사, 그리고 우리나라
아이들을 힘들어하는 입시제도와 수능이 차차 떠올랐다.
사실 저때 까지만해도 내 심장을 두근되게했던 것 말고는 별 다른건 없었다.
하지만 어쨌든 날 움직이게는 했다.
아직 이룬것도 없는데 이런 글을 쓴다는게 정말로 무모한 짓이란 것 너무도 잘 안다.
하지만 이렇게 해야지 내가 계속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