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아줌마의 방문

말의 책임

by 대백

https://youtu.be/gH476CxJxfg?si=5hqdf4GmGE_am9Sk



그날이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난다.
왜냐하면, 그날은 내 생일이었기 때문이다.
일 년에 단 하루.
나만을 위한 날.

엄마의 초등학교 시절 친구라는 아주머니 한 분이,
“너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우리 집을 찾아왔다.

나는 기뻤다.
날 찾아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들떴다.

하지만 그날은
내 생일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날로
기억된다.


불쑥 들어온 말

아줌마는 오자마자 말했다.

“아픈 사람은 야채를 먹어야 돼.”

물론, 그 자체로 틀린 말은 아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그 말은,
이후 계속해서 반복됐다.

TV를 보다 말고,
대화 중에도,
일상 모든 순간마다.


“햄버거나 피자 같은 거 먹으면 병만 더 악화돼.”
“대백아, 야채 먹어야 돼.”

그때 나는 생각보다 예민한 상태였다.
병으로 회사도 휴직했고,
겨우겨우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네, 맞아요. 야채 먹어야죠.”
“야채 안 먹고 죽은 친구도 있어요.”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어리석은 말이었다.

그런데 아줌마는 내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래, 맞아.
야채 안 먹고 그러면 네 친구처럼 죽는 거야.”

그 말을 듣고 나는
‘내가 맞았구나’ 싶은 우쭐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 말은,
내가 사랑하는 친구에게 상처가 되어 돌아왔다..


돌이킬 수 없는 말


나는 대학교 친구에게 말했다.

“…그 애, 야채 안 먹어서 그렇게 된 거래.”

그 순간부터,
그 친구는 나와 멀어졌다.
말수도 줄고, 시선도 달라졌다.

그제야 나는 알았다.
내 말이 잘못되었음을.

내 말이,
누군가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가 되었는지를.


그 아줌마, 그리고 사과의 자리


며칠 후, 엄마가 내게 말했다.

“그 아줌마 오빠도 암이래.
근데 담배만 피우고 몸 관리도 안 한대.”

그 말을 듣자
더 화가 났다.


“그럼… 자기 오빠한테 못 한 말을 나한테 푼 거잖아.”

결국 아줌마는 우리 집에 다시 찾아왔다.

아줌마는 오자마자 초등학생 아이한테 사과하듯이 쫑알쫑알 자신의 얘기를 했다.

"ㅇㅇ아 대백이 얘기 다 듣고 너 얘기해라"


그제서야 아줌마는 사태의 심각성을 아는듯했다.


“그래서 뭐가 속상했는데?”
“아줌마 오빠 아픈 건 안 됐지만,
제 친구는 27살에 죽었습니다.
야채 안 먹어서 죽은 거라고 말하는 건… 너무도 잔인한 말이에요.”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정확히 말했다.
그리고 물었다.


“아줌마는,
아줌마의 잘못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그때, 아줌마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우리 대백이.
그래도 좋은 회사 다니고,
내가 또 몰라서 그런 말을 했지 뭐야~
커피 마시러 갈래?”

그 말에,
나는 그저 멍하니
거실에 걸린 벽걸이 TV만 바라봤다.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기억


이 일은 벌써 몇 년 전 일이다.
엄마는 “이제 그만 잊어라”고 말한다.
아줌마도 직접 찾아와 사과했으니
이제는 그만 괜찮아지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마다
마음 한 구석이 쓰라리다.


나이 30도 되기 전에 죽은 사람보고 야채 안먹어서 그런거라고 말한 사람을 용서할 자신이 없었다. 심지어 그 분의 오빠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은 날 더 분노하게 했다


“넌 왜 꼭 네가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고 하니?”


“그 아줌마는 너한테 그냥 좋은 말 해준 거야.”
“그만 좀 해라.”

그 말을 들으면,
나는 또 내 안에서
무언가가 무너져 내린다.


말의 책임


유튜브에서 봤던 영상이 있다.
한 강연자가 이렇게 말했다.


“모든 말에는 책임이 있다.
말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 수 있고,
그 흔들림은 평생을 좌우한다.”

그날 나는
말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몸으로 배웠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떤 과학자는 얘기한다. 어른이 된다는건 이 세상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게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라고...

그저 뒤에서 팔짱을 두르고 뒤에서 멀찍이 여유있는 표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배우는 것이라고... 주변 사람들의 말과 태도에 난 어른이 덜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또 이때 어린 아이처럼 괴상한 꿈이나 꾸고 있었다..


“내가 이때, 꿈마저 없었더라면…
나는 어떻게 버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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