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rGRC_Nf8fww?si=dZtC1cKvcvKfC37z
“넌 너가 듣고 싶은 말만 들어야 하니?
너 때문에 힘든 가족들은 안 보여?”
엄마가 내게 매일 하던 말이었다.
수술 직후,
왠지 모르게 거대한 존재가 된 기분이었다.
뭔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았고,
내 꿈은 눈부셨다.
그런데,
불교 전도, 아줌마의 방문,
그리고 그들의 가시 돋친 말들.
그 말들 하나하나가
내 안에 반짝이던 무언가를 조금씩 바래게 만들었다.
그 순간부터였다.
내가 그렇게 감동받았던
오은영 박사님의 말,
박정민 배우의 일화,
연기학원에 도전하며 느꼈던 간절함까지.
모두 무색해졌다.
물론, 어쩌면 이건 내 성격 탓일지도 모른다.
사과를 받아내야만 직성이 풀리고,
그 말을 듣기 전까진 계속 곱씹고 무너지는.
고집 같기도 하고,
유난 같기도 한.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바닥까지 가라앉던 순간에도
나는 다시 ‘이야기’를 떠올리고 있었다.
무심코 검색했던 책 한 권.
픽사 스토리텔링.
어릴 적, 우리는 만화 속 문장을 따라 자랐다.
“꿈은 창대하게 꾸라.”
“넌 선택받은 아이야.”
"난 해적왕이 될거야"
그 문장들이
아직도 내 안에 박혀 있었던 걸까.
픽사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이 세 가지였다.
픽사의 이야기는 항상 '단 한 사람'의 시점으로 흘러간다.
이야기의 시작은 언제나 “만약에?”라는 상상에서 출발한다.
“만약 장난감들이 생각하고 말할 수 있다면?”
“그리고 자신이 버려질 걸 안다면?”
픽사에는 ‘진짜 빌런’이 없다.
토이스토리3의 랏소.
그는 분홍색 곰돌이지만, 단순한 악당이 아니라
상처 입은 누군가의 이야기였다.
그걸 보며 생각했다.
“나도 내 글에 나를 괴롭혔던 어른들을 넣고 싶다. 빌런처럼.”
하지만 그렇게 쓴 글은 늘 중심을 잃었다.
주인공보다 빌런이 커졌고,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흐려졌다.
그 책을 덮으며 생각했다.
“버릴 건 버리고, 살릴 건 살리자.”
그리고 내가 살려야 할 건 결국 ‘내 이야기’였다.
좌절하고, 또 고치고,
가끔 웃고, 다시 썼다.
별 거 아닌데
왜 그렇게 가슴이 뜨거워졌을까.
말도 안 되는 꿈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나 작가 될지도 몰라?” 싶은
웃긴 자신감도 생겼다.
픽사 작가?
무모하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게 정말 나다운 꿈 같았다.
돈도 없고,
커리어도 없고,
아무것도 없지만.
어릴 적 듣던 그 말 하나,
“넌 선택받은 아이야.”
그 말 하나 붙잡고 다시 써본다.
요즘 유튜브와 인스타에
디지몬, 포켓몬, 옛날 애니메이션 영상이 자주 떠오른다.
“태일아.”
“아구몬, 넌 그대로구나.”
“넌 내일 뭐 할 거야?”
그걸 보면,
왜인지 모르게 울컥한다.
우린 그런 걸 보며 자랐다.
지우는 포켓몬 마스터가 됐고,
나루토는 호카게가 됐고,
루피는 드디어 사황이 됐다.
어릴 적 내 옆에 있던 친구들은
각자의 꿈을 이뤘다.
그렇다면, 나는?
만화로 치면,
아직 ‘태초마을’.
그래도 괜찮다.
지우도 거기서 시작했다.
그리고 피카츄와의 우정은,
단 한 번도 흔들린 적 없었다.
우리는
한때 ‘선택받은 아이들’이었다.
그러니까 오늘도,
꿈이 보이지 않아도,
내일이 막막해도,
그 진화의 순간을 믿으며
한 걸음 내딛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