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학원을 다니던 어느 날,
카카오톡 단체방에 한 공지가 떴다.
“가을 캠핑 참가자 모집합니다 :)”
선선한 바람과 별, 캠핑.
내 플레이리스트에 늘 흐르던 이문세와 브리티시 팝처럼,
그건 나와 잘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캠핑장에 도착하자, 나는 들떴다.
영화 이야기, 책 이야기, 무슨 얘기든 신나게 꺼내놓았다.
그러다 한 여성분이 눈에 들어왔다.
나와 같은 회사를 다닌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마음에 걸렸다.
돌아오는 길,
우리는 같은 차를 타게 되었다.
정신없던 하루를 마무리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대화가 어색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며칠 뒤,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대백님, 저 부산 왔는데
여기 물고기가 너무 많아서
대백님이 얘기하신 그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떠올라서 연락드려요 :)”
그 짧은 메시지로
우리의 짧은 연애가 시작되었다.
함께한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그녀는 내 삶에 아주 깊은 자국을 남겼다.
특히, 지금도 잊히지 않는 대화가 있다.
“ㅇㅇ아,
왜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더 빨리 흐른다고 느끼는 걸까?”
그녀는 잠시 고개를 떨군 채 생각에 잠겼다가
조용히 말했다.
“우리가 어릴 땐 모든 게 새롭잖아.
길가의 벌레도, 지나가는 자동차도,
‘이건 뭐지?’ 하고 멈춰서게 되는데
지금은… 그냥 ‘아, 벌레네’ 하고 지나치잖아.
익숙해지면 시간이 더 빠르게 느껴지는 거 아닐까?”
“그러니까,
주변에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이고 살아봐.
그럼 시간도 달라질 거야.”
그때 나는 그녀가 참 사려 깊은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는 또 다른 말을 해줬다.
나를 꿈에 더 가까이 데려다준 말.
연말이 다가오던 어느 날,
그녀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대백아,
난 매년 연말이 되면 꼭 하는 버릇이 있어.
내년에 이루고 싶은 목표를 10가지 쓰는 거야.
그리고 같은 카페, 같은 자리에 앉아서
그 해가 끝날 때쯤, 얼마나 이뤘는지 체크해보는 거지.”
“너도 해볼래?
너 5개, 나 5개.
진심으로 써보자.
그리고 내년에도 여기 앉아서,
우리 지난 1년을 복기해보는 거야.”
그녀가 진심으로 한다는 말에
나도 나름대로 진심으로 써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좀 멈칫했다.
글을 쓰는 건 자신이 없었다.
취업할 때도 자기소개서가 가장 괴로웠고,
머릿속엔 늘 영상 이미지가 떠다녔으니까.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
“그래, 유튜브로 시작해볼까?”
그렇게 내 첫 번째 목표는 이렇게 쓰였다.
1. 내가 상상하는 이야기, 1화 유튜브에 업로드하기
그때만 해도,
내가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공모전을 알아보는 사람이 될 줄은 몰랐다.
그녀는 내가 적은 목표를 보고
조용히 웃었다.
“아… 너 그 꿈, 진심이었구나.
난 여기에 정말 이루고 싶은 것만 쓰거든.
너 진짜 진심이네.”
그리고는 말했다.
“좋아.
나 여기에 적진 않았는데…
커피 다 마시면
같이 아이패드 드로잉 학원 가보자.”
그렇게,
나는 꿈에 한 걸음 다가섰다.
무지성으로 동네 학원에 등록하고,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고,
브런치 1화에 광화문 그림을 올리고…
지금은 또 흐지부지됐지만,
그때만큼은 불꽃처럼 뜨거웠다.
그 짧은 연애가,
나의 ‘시작’이 되어줬다.
그래서 지금도 가끔,
그때 그 캠핑의 바람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