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 lost 길을 헤매...
어느 날, 여자친구와 영화를 보다가 문득 든 생각이 있다.
그림도, 글도, 유튜브도…
다 시작은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하나둘 흐지부지되었다는 것.
한때는 매일 그림 연습을 하겠다고 다짐했고,
그걸 유튜브에 기록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 다짐들도 서서히 잊혔다.
돌아보면, 지난 1년간 내가 거둔 가장 큰 성과는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조금 허무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참 즐거웠다.
디즈니와 지브리의 공통점을 분석하고,
어벤져스4에서 토니 스타크가 왜 마지막 핑거스냅을 했는지를 생각하며
아버지와의 서사를 풀어내는 그 과정.
이야기란 이런 것이구나, 느끼는 그 순간들.
그러나 그런 시간 속에서도
내 마음 어딘가에는 늘 공허함이 있었다.
공허함이라는 감정은,
수많은 관객 앞에서 공연을 마친 유명한 뮤지션이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왔을 때 느끼는 감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아직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데도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곱씹어보면 그건 공허함이 아니었다.
불안감과 자기혐오.
내가 생각보다 아무것도 아니란 사실을 마주하는 날들.
그런 생각이 들 무렵,
여자친구와 함께 [모아나2]를 보게 되었다.
“모아나2라니!! 난 디즈니 아직 믿고 있어!!
얘네들이 이렇게 무너질 리 없지!!
믿고 한 번 봐보자!”
평소에 픽사를 좋아하던 나는
혼자 흥분해서 여자친구를 부추겼다.
우리는 함께 좌석 하나를 차지하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영화를 기다렸다.
그리고 사실…
조금 실망했다.
너무 큰 기대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야기가 끝나기 전,
예상하지 못한 장면에서
눈물이 맺혔다.
한 마녀가 모아나에게 노래를 부르며 말한다.
화면 아래 자막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길을 헤매.”
https://youtu.be/r-uXMdPf4JI?si=ZTgwTz0_Oc5MUI3M
순간 나는 움찔했다.
아이들이 보는 영화에서,
“길을 헤매라”고?
그게 가능해?
한국어 자막에서조차 낯선 이 말.
“길을 헤매도 괜찮다”는 의미가
지금까지 내가 들어온 말들과는 너무 달랐다.
지난 3년간,
예기치 못한 병으로 내 인생은 크게 뒤틀렸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말들을 들어야 했던가.
“현실에 만족해.”
“그건 그냥 니 욕심이야.”
“그 나이에 뭘 다시 시작하겠다고 그래.”
그런 말들을 견디며,
꿈이란 단어조차 꺼내기 두려워졌던 나에게,
모아나 속 마녀는 이렇게 말했다.
Get lost.
그래, 길을 헤매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