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유명진
안녕하세요. 광주살이 10년 차, 한국화를 전공한 이선미입니다.
저는 주변을 이루는 풍경 속에서 느껴지는 불편한 감각들에 집중하고, 이렇게 불확실하게 수집된 내면의 이미지들을 저만의 방식으로 재편집하여 채색 작업을 하고 있어요. 간헐적으로 일러스트 기반의 디자인 작업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장지라는 한지를 겹겹이 배접하여 만든 종이 위에 다양한 수용성 물감을 혼합하여 사용하는 채색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채색화의 매력은 스밈과 번짐, 선의 미학이라 생각하는데, 종이라는 고유 물성을 좋아하기도 하고, 맑게 채색되기 위해 거치는 예민한 과정들이 매력적이라 생각해요. 저는 주로 채도가 높은 채색 작업을 좋아하고, 색상 조합에 가장 큰 공을 들이는 편이라 색 쓰는 일에 신경 써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작업 주제는 23년도 개인전 《무엇이 묻혀있는지도 모른 채》에서 보여드렸던 것처럼, 주로 주변을 이루는 인위적인 풍경과 자연의 본질을 잃은, 잊히고 버려지는 존재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시골에서 자라 자연을 쉽게 접했던 사람이라 그런지, 주변에 눈길 닿는 곳마다 이루어진 아름다운 풍경들과 유행·취향에 따라 소비되는 자연물들 사이로 쉽게 볼 수 있는 죽음들에 괴리감이 들더라고요. 그 불편한 지점들을 사람들이 미적 관상이나 욕심에 의해 만든 ‘개인의 정원’을 그림으로써 담아냈어요. 인위적인 정원은 아름다움을 목적으로 하기에, 실은 자연스러운 존재들을 ‘아름답지 않은’ 존재나 ‘불필요한’ 존재로 선별하는, 명확한 명암이 드러나는 지점에서 오는 불편함이 있었던 것 같아요.
더욱이 실제로 의도치 않게 죽음을 맞이하는 ‘필요 없는 존재’들을 목격한 것이 저한테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오면서 작업에 큰 영향을 줬어요. 쥐를 잡기 위한 용도로 끈끈이를 놨는데 참새가 잡혀서 죽고, 제가 이를 직접 보고 처리해야 되는 상황에서 ‘내가 왜 이런 위치에 있어서 이 친구의 생과 사에 관여하고 있지?’, ‘이렇게 관여하는 나는 뭘까?’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예전에는 조금 가벼운 접근으로 관리를 소홀히 해서 화분이 죽은 것에 대해 느끼는 그 정도의 불편함만 가지고 얘기를 했다면, 이를 계기로 인간이 정한 아름다움 뒤에 불필요하게, 의도치 않게 죽은 존재들을 더 조명하고 싶어졌어요.
이러한 주제를 다룰 때 제가 힘든 건 순간이고, 오히려 이 불편한 지점을 제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같이 느꼈으면 하는 마음이 큽니다. 그저 보기 좋다는 이유로 너무 손쉽게 취하고 있는 이 생명들에 대한 무게를 느끼고 본인의 행동에 경각심을 가져야 하지 않나 싶어요. 원래는 저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 컸었는데, 지금은 조금이라도 저와 같은 지점의 불편함을 자각하고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바라봐 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 작업할 때 가장 신경쓰이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무엇이 진정한 아름다움이고 자연스러움인가라는 의문에서 파생된 감각들을 담았기에, 작업이 그저 아름답거나 좋게 보이는 관상에 그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어요. 저 스스로 끊임없이 고민하는 부분들이 조금이나마 보는 이들과 맞닿는 지점을 만들어내고 싶기도 하고요. 내색은 안 하지만 제 작업이 조금은 넓은 범위로 확장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거든요. 항상 같은 바운더리 안에 좁은 생각으로 게으르게 살고 있지는 않나 조바심이 날 때도 있고, 제 사고의 방식이 편협하게 흘러가지 않기를 바라는데, 다양한 관점을 받아들이고 좀 더 유연한 사고로 제 세계를 확장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지점 같아요.
제 작품이 좀 더 다양한 감상을 나눌 수 있는 작품이었으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아요.
생계를 위해 일을 병행하다 보니, 현실적으로 온전히 작업에만 집중하기 힘들 때가 많아요. 집중해서 작업할 수 있는 환경에서 벗어날 때가 많았는데, 올해는 이렇게 되면 안 되겠다 싶어서 레지던시 생활하며 회화 작업을 한 케이스구요. 내년에는 그동안 못 했던 제 작업, 제가 생각하는 것들을 마음껏 펼쳐보고 싶어요. 목표는 크게 갖고 있습니다. 저 쌓여있는 화판을 꽉 채울 거예요(웃음). 눈에 보여야지 저 몫을 내가 해내야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작업할 화판을 잔뜩 준비해뒀습니다. 전체적인 세계관은 지난 개인전의 연장선에 있겠지만, 분위기는 조금 다르게 가보려고 해요. 기존 작업이 다소 밝거나 정적인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톤을 좀 더 어둡고 미스터리하게 잡아서 제가 느끼는 불편한 감각들을 깊이 있게 풀어내고 싶어요.
그리고 활동 반경을 좀 넓혀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지금 있는 곳은 익숙하지만, 그만큼 한정적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좀 준비가 된다면 이 지역 외에 다른 지역도 가보고 싶은 것 같아요. 저는 언제나 듣고 싶어 하는 쪽이라 새로운 피드백도 들어보고 싶고요. 새로운 사람이 유입되지 않는, 관람객들이 너무나도 명확한 전시가 진정으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구조인지에 의문이 있어서요. 주변 분들의 응원과 좋은 평가는 정말 감사하지만, 아무래도 아는 사이다 보니 객관적인 평가라고 느끼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거든요. 좋은 말을 들으면 물론 힘이 나지만, 거기에 안주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더 커요. 그래서 제가 속하지 않은 곳에서 저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날 것 그대로의 피드백을 받아보고 싶습니다.
디자인은 엉겁결에 독학으로 배워서 외주나 전시까지 하게 된 케이스인데요. 지난 개인전 도록도 제가 직접 만들었어요. 업체에 맡기면 세세한 수정을 요청하기가 어려워서 포기하는 부분이 생기는 아쉬움 때문에 직접 했던 건데, 이제는 전문가의 손을 빌려 제 작업을 제대로 아카이빙해서 완성도 높은 작품집을 만들고 싶어요.
최근에는 3개월 단기 레지던시 형태의 협업 활동에 참여했어요.
저는 협업을 여러 번 해봤는데 모두가 다 의견이 있겠지만 배려해서 맞춰가는 순간, 그 합이 맞을 때가 제일 좋은 협업이 되는 것 같아요. 이러면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마주하며 배우는 즐거움도 크고요. 그러면서 같이 작업을 만들어 가기 위해 제 능력치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배우기도 하고요. 그리고 이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마냥 쉽지만은 않잖아요. 자칫 긴장될 수 있는 분위기를 풀고 편안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동료들과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나누고 잘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너무 짧은 시간 안에 작업 결과물을 내는 게 아쉬워서 긴 호흡으로 밀도 있는 작업을 해보는 게 제일 큰 목표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환경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23년도 개인전도 그렇고 쫓기듯 작업하는 상황에서 실패하면 안 되니 억지로 만들어내는 부분이 생겨버리니까 아쉬움이 남았거든요. 긴 호흡으로, 환경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고 집중할 수 있었더라면 더 고민하고 더 섬세하게 작업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항상 있어요. 모든 작가님들도 똑같을 거예요. 경제적인 문제나 주변 상황 때문에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가 많으니까, 늘 걱정 없이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꿈꿔요.
작업은 제가 하고 싶은 일이니까 최대한 노력하겠지만 그다음이 되게 중요하잖아요. 전시만 보고 끝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 속에 무언가 한 조각이라도 남겨 다음 작업이 기다려지는 작가였으면 좋겠어요. 그 다음이 기다려진다는 응원을 받거나 다음 전시 언제냐는 질문을 받는 게 제게는 큰 원동력이 돼요.
https://www.instagram.com/sun_m_eee/
인터뷰를 마치며
정돈된 모습에는 정돈된 마음이 깃든다고 하던가. 백색의 작업실에 잘 정리된 자리와 다음을 계획하는 공간, 그리고 그곳에 걸린 더 없이 확고한 작품들이 이선미 작가님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듯하였다. 그러나 그 정돈된 마음은 때론 엄격하기도 하였다. 종이 위에 모든 대상과 색에게는 알맞은 자리를 내어주고는 정작 자신은 불편한 자리에 앉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오늘, 달콤한 칭찬을 멀리하며 작업이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완전히 마음에 들 일은 없을 거라는, 그래서 끝을 모르는 작업을 계속 해나갈 거라는 타오르는 불꽃같은 사람에게 데인 것 같다.
인터뷰어 : 유명진
사회의 이슈를 외면하기에는 조금 예민하고 주변에 편재한 문제를 느끼기엔 조금 둔감한 어중간한
사람으로서 붕 뜬 생활을 하고 있다. 사람으로 연결되는 감각을 좋아하여 저와 비슷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한쪽에 완전히 속하지 못한 애매한 감각으로 기준선에서 삐죽 튀어나온 부분을 그러모아 전시 기획을 한다. 기획한 전시로는 《통 속의 추구미 너머》(2024), 《단면의 총합》(2023), 《보물찾기: 빼앗긴 호기심을 찾아서》(2023) 등이 있다.
본 인터뷰는 2025년 광주광역시 지속가능발전협의회 문화특별의제
‘문화 네트워크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