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뽄새의 기술

포장도 예의

by 갈휘연

전달하고자 하는 말의 진의 또는 진심과, 그것을 어떻게 전달하는가는 어쩌면 별개의 문제다.


얼마 전의 일이다.

워낙 엄마랑 통화를 하면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은퇴해서 매일 수영장 가고 골프 가는 엄빠의 일상에 뉴스랄 것이 없는 관계로

뭔가 새로운 이야기 거리는 보통 내 일상의 에피소드일 때가 많다.


그 날도 통화를 하면서 설거지며 집안 청소를 하다가 어지간하면 열지 않는 딸 방문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정리정돈을 못하지만 그녀는 나의 업그레이드 버젼.

상처난 곳에 딱지를 떼면 더 아프다는 걸 알면서도 떼야 적성이 풀리는 팔자를 볶는 성격의 나는 그날도 딸 방의 문을 열어 재꼈다.


역시 그녀는 내 딸답게 뭐를 상상하던 상상 그 이상.

“와우.”


그 광경을 마주하고 할 말을 잠시 잃었다가 말했다.

“엄마, 얘는 왜 이러지? 이러고 도대채 어떻게 살아? 얘 방은 쓰레기통이 제일 깨끗해.“


내가 낳은 딸아이 흉을 나를 낳은 엄마에게 털어 놓은 것은

나의 엄마가 드라마에 나오는 여느 친정엄마같은 위로나 공감같은 것에 소질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또 소원하기에 부러 잊어버린 내 무의식의 실수.

여지없이 애가 잘못하면 잔소리를 해서라고 고쳐야 한다는 잔소리가 메들리로 뒤를 이었다.


“난 잔소리 안해. 엄마가 그렇게 잔소리를 해서 내가 뭐 변한 것 있어?“

내가 내 딸의 흉의 포문을 열었음에도 나 아닌 다른 이가, 그게 내 엄마라 하더라도, 내 딸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게 뭔가 듣기 싫었다.

내가 내 엄마한테 내 딸 흉을 보라고 한 얘기가 아닌데.

“너 힘들겠다. 어쩌니” 얘길 듣고 싶어 한 얘기였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거였을까.


드디어 화룡정점.

“계속 그렇게 살아 그럼.

아빠한테 얘기 했더니 쥐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겠다고 좀 키워보는 건 어떠냐고 쇼크를 주랜다.

아빠 얘기가 너무 웃겨서 한참 웃었네.”


그렇게 얘기 하는 뒷면에는 내가 더운날 집안 청소하느라 고생해서 속상하다는 “진의”가 있는 거겠지 싶다가도

전해진 공감 제로 말 자체가 주는 당혹스러움은 그 진의가 얼마나 고결하고 깊은 것인가 따위는 다 무의미하게 만든다.


‘나도 참…

그래, 이런 게 어디 한두번인가.

무슨 좋은 소릴 듣겠다고.‘


그렇게 또 ‘부모에게 속 얘기를 다 털어 놓으면 탈이 난다’는 생각을 다잡게 된다.

아는 종류의 상채기지만 새로운 상채기 하나가 더 생길 때마다 자주 안부를 묻고 싶은 생각이 한가닥 한가닥 끊겨 나간다.


안다.

대화를 안하면 나중에는 서로가 양 끝을 잡고 있는 결이 더 다듬어지지 않아 걷잡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는 걸.

하지만 당장 “앗 따가워!”를 피하게 되는 어리석은 나를 나도 잘 모르겠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