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앙의 결

언발란스하지만 어쨌든 등가교환

by 갈휘연

내 행복한 결혼 생활의 주인공,

나와 유니콘의 Give & Take는 단순하고 확실하다.


나는 그를 끊임없이 예뻐하고

유니콘은 나를 끊임없이 추앙한다.


언젠가 한 드라마에서 “날 추앙해요.”라는 유명한 대사가 떴을 때 사뭇 생경했던 그 “추앙”이라는 단어가 내가 매일 누리고 있는 것을 지칭한 다는 걸 안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추앙.

높이 받들어 우러러봄.


사전적 의미와 꼭 맞아떨어지는 것은 어쩌면 아닐 수 있겠으나 그는 나의 그 모든 질문에 나의 본질과 사고의 결을 찾아 추앙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는 그걸 추앙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끊임없는 추앙이 가능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것은 나에게 꼭 맞는 연료다.

그 연료로 나는 자존감을 고취시키고 매일을 누구의 무엇, 또는 뭐 하는 사람이 아닌 “나”로 살아갈 힘을 얻는다.


반면 그가 매일을 쓰는 연료를 “예뻐해 주는 것”이라고 했으나 그렇게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같이 커피를 마시다가 책 보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왜 책 읽는 모습도 멋있어?” 한다거나

설거지를 하는 그의 엉덩이를 토닥이면서

“아이 이뻐. ”를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

아침에 일어나 난데없이 “당신이 바람피우는 꿈을 꿨다”며 대성통곡을 하고 “나는 당신 없으면 못 산다”라고 땡깡를 부리는 것.

검도하는 데는 예고 없이 찾아가 “몰카”를 찍고 그 사진들을 보면서 므흣해하다가 여지없이 들키는 것.


그런 소소하지만 역동적인 매일의 에피소드가 어쩌면 그가 매일을 온전하고 충만하게 살게 하는 연료가 아닐까 짐작을 할 뿐이다.


그가 나에게 주는 것, 그리고 내가 그에게 주는 것이

각자 살과 뼈를 갈아야 하는 것이라면 아마도 “끊임없는 제공”은 불가능할 것.

사실 나도 그도 서로에게 그 어떤 것을 하는데 후달려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그 무한동력의 조건은 무엇일까.


“결”이다.


행복한 결혼이란 온전히 “노오력”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다.

노력이 소용이 없다는 게 아니라 먼저 충족되야 할 선행조건은 반드시 있다는 걸 살면서 깨닫는다.


행복한 결혼은 결이 맞는 사람과 해야 가능하다.

전생에 내가 뭘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이게 전생에 덕을 쌓은 때문이라면 전생의 나에게 너무 감사하다.


나는 천운으로 “나의 유니콘”과 결혼을 한 게 맞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