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낳다.

내 문장의 지문

by 갈휘연

글에 그 글을 쓴 사람이 담겨 있다는 걸 느낄 때가 많다.

그것이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계속 찾게 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잘생기고 예쁜 사람을 선호하듯, 글의 정형화 된 포멧과 문법이 지켜져야 하는 공동선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글을 즐겨 쓰는 사람은 그 룰 안에서 생각을 전달하는 방법으로 표현을 창작하고 그렇게 본인만의 시그니쳐를 예외없이 남기게 된다.


나는 의외의 단어를 사용하여 문장은 비트는 것을 선호한다.

뜻은 기가막히게 똑같으면서도 보통 그 상황에 쓰이지 않는 단어.

그런 보석같은 적제적소의 단어 찾아내 쓰거나 일반적으로 잘 쓰이지 않는 나만의 표현을 만들어내고 희열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내가 쓴 글을 다시 읽는 것을 즐겨한다.

그 글을 쓸 당시의 희열을 오롯이 다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어에 국한되지 않고 예시를 들 때도 마찬가지다.

내 삶과 교육을 통해 경험했던 에피소드를 기반으로 딱 들어맞는 예시를 전달할 때 단어와 문장을 비틀어 쓸 때의 다시 그 만족감을 느낀다.

또한 의도한 바는 없지만 그것은 평이한 표현이 금방 잊혀지는 것에 반해 꽤 오래 여운으로 남는 작용을 하는 것 같다.


그렇기에 글을 쓰는 일은 나에게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나의 조각을 정성들여 미학적으로도 문학적으로도 내 마음에 차게 녹여내는 작업이다.

마치 여인이 몸을 바쳐 아이를 품고 낳아 자식을 갖게 되는 과정같은.

글 속에서 나만의 단어 비틀기와 생경한 예시들이 살아 움직이는 순간, 그것들은 나만의 시그니처가 되어 나를 담는다.


결국 글이란 쓰는 사람을 드러내는 가장 은밀하고 어쩌면 가장 고급진 방법이다.

글쓰기란 지구상에 인간들만의 전유물이니.


사진은 순간을 담지만, 글은 그 순간의 내 정수를 통째로 옮겨 담는다.

그래서 글을 쓰는 일은, 어쩌면 현재의 내가 “너무나 나!”인것을 품고 있는 선물을 어떻게 살고 있을 지 모르는 미래의 나에게 은밀하게 보내는 가장 아름다운 응원일 수도 있겠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