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랜덤게임

어쩌면 이토록 안맞게

by 갈휘연

나의 모친은 말을 예쁘게 하지 못한다.

많이 겪어 본 적은 없지만 그것은 아마 외할머니한테 물려받은 게 아닌가 싶다.


그녀는 직관적으로 필터없이 말을 저지르고 그 말에 상처받은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한다.

상대가 그것 때문에 기분이 나쁘다는 걸 아는 지 모르는지도 사실 알 수 없다.

거기에 나의 부친은 말에 예민한 사람이다.

단어 하나하나에 의미를 두고 의도를 두고두고 곱씹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걸 내가 물려받았다.

어쨋거나 그렇게 언어 전달법과 받는법이 다른 둘이 만나 결혼을 했으니 그 결혼이 전쟁터였을꺼라는 걸 누구나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혹여 그녀가 한 말에 상처 받았다고 상대가 말하면

“그럼 뭐 어떻게 해? 할 수 없지. 그렇게 생겨먹은 걸. 어쩔 수 없어.”이라는 말로 상대의 운명탓을 한다.

어쩌면 그 쎈 척이 말을 예쁘게 하지 못하는 자신을 방어 하는 수단일 지도 모르겠다.




본가는 30년 전 캐나다로 이민을 왔다.

공항에 내리자마자부터 집안 대소사를 맡아 하는 건 보통 영어에 능숙하지 않은 1세대를 따라 이민을 온 1.5세대들의 숙명이다.

이민을 와서 그나마 영어를 할 줄 알았던 나에게 집의 크고 작은일들이 다 쏟아졌다.

그리고 그것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얼마 전 모친이 핸드폰 플랜을 다른 회사로 바꾸셨다.

쓰다보니 뭔가 마음에 안드셨는지 다시 원래 회사로 플랜으로 바꾸라고 연락이 왔다.

당사자가 아닌데 전화를 해서 엄마인 척을 하고 해야하는 고충 따위는 알리가 없다.

나도 불평불만 할 생각도 없다.

더 어릴 때 그랬다가 집이 발칵 뒤집힌 경험을 몇번 하고 더이상 대걸이를 하지 않는다.

일을 키우기 싫으니 알았다고 하고 올라오는 감정은 꺼두고 기계인양 전화를 걸어 민원을 해결했다.


그리고 몇달이 지나 아침에 카톡이 인보이스와 함께 왔다.

바꿨다가 캔슬한 회사 인보이스였다.

다짜고짜 한마디.


“이게 왜 날라와?”


무슨 뜻이었을까.

‘너 일처리를 어떻게 했길래 이런게 날라와.’로 읽힌건 내가 예민한 때문인가.

일단은 처리하겠다고 메세지를 보내놓고 하루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늘 이런식이지만 무기력하게 감정이 나락으로 떨어지는데 나에게는 해결책이 없다.

말을 제발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는 주문은 통할리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지난 40년 동안 배운것,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면 포기를 해야 평화가 온다.


주말이라 고객센터가 닫았다.

하지만 일이 완료됐다고 하지 않으면 제대로 바꿔졌는지 확인 전화는 계속 쏟아질 것이다.

해결은 주말 끝나고 하겠지만, 다 해결 됐다는 메세지를 먼저 보냈다.

해결 됐냐 확인 메들리에 시달리기 싫어서다.




아마 당신 나름 내 눈치를 많이 본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조심하느라 성격데로 하고싶은데로 못하고 있다고도 생각할 것이다.


이런 에피소드가 가지고 있는 나한테 가장 치명적인것은

‘내가 미친년인가? 아니 엄마가 전화 한 통 하라는 게 이렇게 하루 종일 기분을 빻을 일인가?‘라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된다는 것이다.

생각을 하고 하다가, 내 기분 풀어 주겠다고 같이 드라이브를 나온 유니콘이 상황 해석에 마음이 편해졌다.


“당신이 기분이 다운된 건 너무 당연해.

어머님 일을 어머님 부탁으로 대신 해서 해결을 했는데 인보이스 날라왔다고 첫마디가 ”이게 왜 날라와?“는

누가 봐도 ”너 일처리를 왜 이따위로 했어?“로 들릴만 해. 기껏 돕고 탓을 듣는데 어떻게 기분이 아무렇지도 않아.

그리고 처음부터 당신이 저지른 일 수습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건 너무 당연해.”


당연하다라는 말이 쓸린 상처에 수딩 크림처럼 마음을 진정시켜줬다.


하지만 나는 또 마음이 쓸리고, 수딩크림으로 덮고 하는 걸 계속 하게 되겠지.


어떻게 그녀는 내 엄마가,
나는 그녀의 딸이 되었을까.

인생은 랜덤 게임이라지만
어쩌면 이토록 안맞게.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