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부터 청소년, 노인까지 서로 다른 이유로 같은 방향을 보며 모였다. 공포와 미안함과 희망과 절실함이 불규칙적으로 끈적히 뒤섞였다. 자꾸만 그것들이 응축되어 액체의 형태로 흘러 나갔다.
작년 폭우에 허벅지까지 오는 물을 헤치며 집에 들어간 날이 있었다. 바지를 걷어올리며 발을 조심히 딛으며, 잠겨서 꼭대기만 보이는 차들을 바라보는데 죽음이 가깝게 느껴졌다. 마침내 집에 도착했을 때 가족들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두려움은 주체할 수 없게 커졌고 어제 흐른 것과 같은 눈물이 흘렀다. 대가를 치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살고 싶다. 올 것이 왔구나, 이상 기후 앞에서 내가 살고자 버둥이는 모든 행동은 꽃가루보다도 작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장 먼저 가장 안전하게 꽁꽁 싸 맬 사람들이 정책을 만들고 있는 건 정말이지 불안하다. 그 이후로도 우리는 기후 재앙으로 많은 인간과 비인간을 잃었다.
절실한 만큼 절망하게 되곤 했지만 어제는 아니었다. 올해 기후정의행진의 슬로건 '위기를 넘는 우리의 힘'처럼, 우리가 위기를 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개를 돌리면 선명히 보이는 친구들과 밝게 웃으며 인사와 포옹을 나눴다.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너에게, 네가 나에게 든든함이 희망이 용기가 된다는 걸 알았다.
어제의 기억을 가지고 살아간다. 나와 이웃의 삶의 방식을 전환하기 위해. 성장신화로 점철된 이 곳을 분배와 공존을 노래하는 땅으로 바꾸기 위해. 지켜야 마땅한 것들을 지키고 이미 우리 것이 아닌 것을 돌려주기 위해. 태어났더니 기후 위기 속이었던 나의 아홉 살 학생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기 위해. 그 과정에서 모두가 안전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