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동맹관계

적어도 웬수가 되지는 말자

by 김문선 노무사

입사 첫날,

"이 부장이 출장을 가서 없는데,

김 대리 입사 첫날인데 너무 아쉽네"


경원지원실 사람들은 모두 이 부장님이 계셨어야 했다며 아쉬워했다.


'이 부장님은 어떤 분일까?'

내심 궁금했다.


일주일 후, 이 부장님을 뵈었다.

출장 잘 다녀왔다고 상무님께 인사를 하는 뒷모습을 보았다.


키는 172cm 정도에 보통 체격인데

음성은 성우같이 좋았다.


상무님 방에서 나오시는 걸 기다렸다가 인사를 드렸다.


'김 대리, 만나서 반갑고 환영합니다, 앞으로 잘해봅시다.'

경쾌하게 답해주셨다.


거짓말 비슷한 것도 못할 것 같은

정직하고 바른 사나이처럼 보이는 건,

그의 9대 1 가르마때문이었을까.


부장님은 일주일 해외출장이 처음이라

아이들이 너무 보고싶었는데

막상 집에 오니까 아이들 4명 중에 한 명만 반갑게

"아빠!"하고 다리를 붙들며 안겼다고 한다.

그래서 "내 재산은 다 니꺼다"라고 했다는

출장담을 얘기해 주셨다.

(나중에 알고보니 부장님은 전국 각지에 땅을 소유한

땅부자 인데, 현금유동성때문에 회사를 다니고 계셨다.)


나한테 말고, 부서원들에게...

우리 자리는 많이 가까웠다.


부장님은 나의 바로 옆 팀, 회계팀의 수장이었다.

회계팀과 인사팀은

업무가 닿아 있는 부분들이 많았는데

나의 전임자가 높은 지위에서

회계팀 직원들에게 일을 시켜왔고,

(게다가 군기도 잡았다고 한다)

인사팀일도 미루는 것 같아

항상 불만을 품어 왔었다.


하여 새로운 직원인 내가 오면

(그 자리에 누가 오든간에)

다시 다 넘기겠다고 이를 갈고 있었고

전임자에 대한 분노가 클수록

후임자인 나에 대한 감정은 안좋았다.

이미 전임자는 이런 회계팀의 계획에 대해 얘기하며,

업무를 떠넘기려고 할테니 절대 받지말라고

당부를 해놓은 터였다.


부장님은 너무 재밌고 좋은 분이셨지만,

팀킬에서는 잔인했다.


나의 인사팀은...나와 상무님....

하지만 상무님은 인사만 관할하시는게 아니니까,

나뿐이었다.

(한 번은 다른 팀 직원이랑 큰소리를 내며

싸운 적이 있었는데,

상무님이 퇴근 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오늘처럼 아무말 안하고 있을테니까

그렇게 살아남어봐")


하지만 회계팀은 대리도 있고, 과장도 있고, 부장도 있고

골고루 다 있었다.


매번 역할을 달리해야 하는 나에게

이 다양한 구성이 부러웠다.

안정적이고 편안해 보였다.


수적으로나 지위에서나 1인 인사팀은 열세였다.


억울해서 이불킥하다가 7시도 안돼서

회사에 출근하는 날도 많았는데

그러다 부장님과 1대 1 면담을 신청했다.


이건 아닌거 같다.

이런 부분은 조율이 필요한거 같다.

등등의 말들을 했다.


부장님은 부서를 지키는데는 1인자였기때문에

나의 아침 교섭은 별 효과는 못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에게도

협상의 무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회계팀분들은 조용하고 튀는 걸 싫어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있을때 나를 이용한다는 것.


"김대리가 상무님한테 성과급 언제 지급하냐고 물어봐봐"

"김대리가 대표님한테 그건 안된다고 말씀좀 드려봐봐"


인사팀은 교육도 하고,

공개적으로 말할 일이 많은데다가

내 목소리가 원체 크기도 해서

회사에서 대신 말하는 사람으로써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 총대매기는 함부로 해서는 안돼는 것이지만

나만의 방식이 있었다.


협상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내 손에도 쥐고 있는 카드가 필요한 법이라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그리고 아주 사소해 보이는 일이라도,

나에게 1승을 안겨줄,

아니 억울한 1패를 당하지 않게 해줄

카드가 될 수 있다는 것도.


평소에 부장님 농담에 박장대소하는

유일한 사람이 나라는 것도

그 사소해 보이는 카드 중 하나였다.


난 사실 부장님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왔다.

너무 재치있고 유쾌한 농담들이 정말 재밌었다.


아들 하나 낳고 싶어서 마지막 시도를 해서

딸 쌍둥이를 낳아 딸만 넷인데,

강아지만은 수컷으로 키우겠다고 해서

가계도에 아들 초코를 올리신 분이다.


나의 카드가 생겨나면서부터는

팀킬에서 그럭저럭 괜찮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즉, 그렇게 마음이 힘들고,

억울해 죽겠는 상황들이 많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 마음 편한 직장생활이 얼마나 복된 것인가.


때때로 팀별 회의에서 업무를 분장할 때나

서로의 이익이 오고가는 그런 일에서는

눈에 레이저를 쏘며 전투태세를 갖추지만...


평소에는 가장 많이 웃고 떠들며 얘기하고

타부서에 나의 입장을 대변해주고,

그래도 혼자인 나를 챙겨주고,

부재시 일도 돌봐주기도 하는.


그런 미워할 수 없는 관계를 맺게 된 것이다.


부장님이 '우리 부서에서 책임지겠다, 하겠다'하면 부서원들에게 얼마나 원망을 들었겠나 싶다.


그런 어쩔 수 없는 이해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었기에 사람에게 증오의 화살을 던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때로는 적이었다가 다시 아군이 되는

그런 전략적 동맹관계.


회사에서는 꼭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전략적 동맹은 웬수사이에는 어렵다.

말도 안하는데 언제 동맹이 필요한지 알 길도 없다.

평소에는 미워하다가 도움을 청하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존심도 굽혀야 하고

거절당하면 자존심에 깊은 금이 가는 것도 감수해야한다.


그러니, 회사에서는 기본적인 관계는 맺어놓아야 좋다.

적어도 웬수가 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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