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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자 Sep 01. 2023

별마루 일기

구월의 첫날 아침


9월의 첫날 아침, 창밖이 온통 하얗다. 자욱한 안개가 푸른 잔디 위에 내려앉는다. 사진을 찍을 때 불필요한 피사체를 모두 제거하듯이 별마루 마당만 남기고 모두 하얗게 휘장을 둘렀다. 2년 전 처음 이곳에 이사를 왔을 때도 짙은 안개의 환상적인 풍경에 나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살갗에 닿는 공기가 서늘하니 마치 추석이 코앞인 듯하다. 아직 근 한 달은 남았건만. 

커피생각이 절로 난다. 파라솔 아래 앉아서 따끈한 커피로 하루를 시작하면 제격일 텐데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밭으로 간다. 오전 일정이 있어 느긋할 수가 없다.


진보랏빛 가지 세 개를 따고 녹두도 한 줌 따왔다. 호박은 어느새 몇 개가 달렸다. 아마 이틀쯤 후에 따면 될 성싶다. 지난 태풍에 쓰러졌던 서리태가 꼬투리가 안 생겨 걱정했는데 내가 마음만 앞선나 보다. 콩잎을 들춰보니 어느새 코투리를 매달기 시작했다. 잎만 무성하다 타박했던 동부도 여기저기 기다란 코투리가 이슬에 촉촉하다. 다행이다. 농사라는 것이 내가 조바심낸다고 될 일이 아니란 것을 오늘 또 깨닫는다. 때를 맞춰야 하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밭에서 배운다. 그러고 보니 밭이 학교다. 내게는 모두가 선생이다. 흙도, 농작물도, 날씨도 모두가 선생이다. 

오늘은 딱히 손볼일이 없어 다시 마당으로 돌아왔다. 아침이라 그런지 마당에 잡초가 눈에 더 잘 띈다. 솥에 밥을 1시간 예약해놓고 호미를 들었다. 금세 수북하니 한 바구니를 뽑았다.


뽑아도 뽑아도 끝도 없는 잡초다. 잔디에 섞인 바랭이를 구별할 줄 몰라 작년에는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늦게라도 죄다 뽑아냈더니 올봄엔 바랭이가 덜했다. 그러던 것이 어느새 제가 잔디인 양 다시 또 버젓이 행세하고 있지만 내 눈엔 어림없다. 이젠 확실히 구별할 수 있다. 엊그제까지 비가 많이 온지라 그런대로 잘 뽑힌다. 잔디를 뽑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커다란 플라스틱 바가지에 수북이 쌓여가는 전리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승리자가 된 기분이다. 


하지만 곧 나는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는데 별마루 모기는 여전히 건재하시다. 쪼그리고 앉아 풀을 뽑으니 주로 엉덩이와 허벅지에 집중 포격을 받는다. 근질근질, 오늘은 십여 군데밖에 안 당했으니 그래도 3~4십 방을 쏘였던 어제 그제보단 훨씬 나아졌다. 모기도 철을 알아가는 중이겠지.

아, 밥이 다 되었을 시간이다. 서둘러 안으로 들어와 하루를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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