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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자 Oct 31. 2023

귀가

주연의 수필마당

1

연료 계기판 바늘이 빨간 선을 물었다. 다음 휴게소에서 주유하고 저녁식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여유롭게 음악이나 듣자 했다. ‘어? 블루투스 연결이 안 됐나?’ 손을 뻗어 조수석을 더듬으며 휴대폰을 찾았다. 허전하다. 힐끗 돌아본 옆자리에 그것이 없다. ‘설마…….’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적중한다. 영암 임시휴게소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양손을 툭툭 털며 홀가분하다 느꼈던 순간이 떠올랐다. 분명 거기였다.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이다. 이미 40분을 달려오지 않았는가. 서행할 수도 없는 고속도로에서 빠른 속도만큼이나 초조함도 함께 질주한다. 

‘휴게소에 가면 아들에게 전화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봐야겠다.’ 전화를 한다고? 부질없는 생각이란 걸 알아차리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다. 카드며 현금, 신분증까지 모든 것이 휴대폰 안에 들어있지 않은가. 내 머릿속으로 기억하는 전화번호도 하나 없다. 길바닥에 철저하게 내동댕이쳐진 기분이다. 이럴수록 침착해야지 다짐하는데 5Km 전방에 함평나들목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맞다. 거기 가면 누구라도 있을 것이다. 시간이 자꾸 흐르니 마음이 조급하다.

무인정산(無人定算)이란다. 사람이 없다. 일자리가 부족하다고 떠들어대면서 왜 점점 기계에만 의존하는지 모르겠다. 사무실로 올라가 보았으나 전화번호만 적어놓고 문은 잠겼다. 또박또박 적힌 열 한 개 숫자의 연락처가 내겐 낙서에 불과했다. 불안감이 어둠과 함께 점점 짙어 온다. 다시 시동을 켰다. 다행히 조금 더 가니 한국도로공사 간판이 하얗게 보인다. 

무작정 들어가서 상황을 설명했다. 이미 나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체면이고 뭐고 없다. 난관을 만나면 오히려 냉정해지던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요즘은 사람들이 남의 물건 함부로 집어 가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직원이 커피를 내민다. 내 눈빛은 분실물의 소재를 확인하는 그의 표정에 솜털 하나도 놓치지 않을 기세다. 숨이 멎을 것만 같다.

‘휴우~’ 찾았다는 기별이다. 정말 감사했다. 그 휴게소를 들렀다가 그냥 지나친 모든 이에게 감사했다. 이제 그곳으로 되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임시휴게소 직원은 내가 도착하기 전에 퇴근할 것이기 때문에 그곳 직원이 서영암영업소에 갖다 놓을 테니 찾아가란다. 직원은 내가 혹시 사고라도 낼까 봐 조심할 것을 신신당부하면서 그곳에 가면 회차로를 이용해 반대편 쪽으로 건너가야 사무실이 있다고 세세하게 설명해주었다. 연신 감사하다는 말로 머리를 조아리며 이만 원을 빌려 연료까지 주입했다. 홍 아무개라는 이름과 계좌번호가 적힌 붙임딱지도 받아들었다. 이제 되었다. 별일 아닌 듯 일사천리로 해결해준 사람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낮은 자리에 서보니 그동안 자신만만한 듯 오만하게 살아온 자신이 부끄러웠고 낯선 이에게 무조건 경계심부터 갖던 것도 부끄러웠다.

아직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을 진정할 수는 없지만 이대로 서영암영업소까지만 가면 된다. 그곳까지만 가면 악몽 같은 상황은 끝이 나는 것이다. 30분 이상을 되돌아가는 길이 멀다 할 상황이 아니다. 어렸을 적 길을 잃어버린 나를 찾으러 파출소로 달려오던 어머니의 마음이 이러하셨으리라. 

빌린 이만 원도 갚고 저녁도 먹고 연료도 충분히 채울 것이다. 모르는 것이 있어도 휴대폰에 물어보면 될 일이니 이제 한시름 놓아도 되겠다 싶었다. 나는 계좌번호가 적힌 붙임딱지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몇 번이고 확인했다.    

      

2

드디어 서영암나들목에 도착했다. 직원이 알려준 대로 바깥 차선으로 서행했다. ‘돌아가는 길’이라는 푯말이 자동차 불빛을 받아 점점 또렷해졌다. 반가움도 잠시 나는 다시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그곳이 막혀있는 것이다. 중앙분리대도 시멘트로 견고하게 버티고 있다. 나들목을 거침없이 통과하는 차들이 무심하다.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전화번호를 받아오긴 했지만 무슨 소용인가.

 주춤주춤 망설이다 하는 수 없이 차는 계속 앞을 향해 달린다. 다음 나들목에서 되돌아와야 할 형편이다. 목적지를 지나쳐 가는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듯했다. 얼마를 더 가야 한단 말인가. 불길한 예감이 유성처럼 지나간다. 지척에 두고 지나쳐 온 목적지로 다시 돌아오기까지 왕복 거리와 시간을 가늠해 보니 집으로 돌아갈 일이 요원하기만 하다. 하지만 별수가 없지 않은가. 

드디어 강진 무위사 나들목으로 나왔다. 초행길이니 내비게이션을 믿고 따를 수밖에.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하다. 점점 어두운 시골길로 안내하는 것이 아닌가. 도무지 몇 킬로미터를 더 가야 하는 건지 믿을 수가 없다. 깜깜한 밤에 방향감각도 없다. 천 길 낭떠러지로 내닫는 것만 같다. 다시 빨간 선으로 치닫는 연료 계기판마저 점점 내 숨통을 죈다. 가만 보니 내비게이션 화면이 정지 상태다. 설상가상이다. 차량 통행도 거의 없는 깜깜한 시골길을 마냥 달리란다. 점점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다. 도대체 내가 지금 어디로 가는 것이란 말인가. 물어봐도 대답할 줄 모르는 그녀가 야속하다.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면 빨리 깨어나고 싶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답이 보이지 않던 때가 있었다. 넘어지지 않으려 울 수도 없었다. 내 일의 한 부분만이라도 덜었으면 좋겠는데 그 어느 것도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상황들로만 가득했다. 오전에 사무실 업무를 보고 오후에는 밤늦게까지 회원을 관리해야 했다. 어두운 골목에 차를 세우고 하혈하는 생리대를 재빨리 교체해야 할 만큼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었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회사에선 관리자로서 선생님의 역할까지 내 어깨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무거웠지만 이를 악물었다. 남편도 아이들도 회사도 내 주변의 모두가 어려운, 차라리 악몽이었으면 싶었던 날들이었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맞아, 아무것도 아니야.

음성안내를 무시하고 교차로 옆에 차를 멈췄다. 내비게이션도 작동을 안 하고 어디다 물어볼 데도 없고 연락할 방도가 없으니, 마치 사지가 모두 잘려나간 방아깨비 같다. 손바닥만 한 기계만 믿었다가 완전히 바보가 되어버렸다. 

마침 저쪽에서 차가 다가온다. 무작정 손을 들고 세웠다. 사정을 얘기하니 그 아저씨는 친절하게도 2Km 정도를 비상 깜빡이를 켠 채 앞에서 나를 이끌었다. 나 같았으면 어땠을까. 구세주를 만나고 나서야 서영암영업소로 가는 고속도로에 올라탈 수 있었다. 이러저러 예정보다 두 시간이나 지나 나타났으니 그곳 직원도 많이 기다린 모양이다. 잃어버린 휴대폰을 내 손에 돌려받는 순간 잃어버린 물건을 찾았다는 기쁨보다 낯설고 깜깜한 악몽에서 헤어 나온 안도감에 눈물이 왈칵했다. 

순간의 실수가 가져온 결과는 나를 두려움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온몸에 힘이 빠지고 목이 울먹거린다. 고행이 끝이 났다. 집으로 가려면 서너 시간을 더 운전해야 하지만 이제 잃어버린 휴대폰을 찾았으니 뭐든 걱정이 없다. 우선 연료부터 가득 채웠다. 든든하다. 지금부터 다시 출발이다. 

남해고속도로를 벗어나 서해안 고속도로로 들어섰다. 나는 몇 번이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우리가 사는 인생길도 이렇듯 멀고 험한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때로는 당황하고 힘이 빠지는 시난고난한 길이지만 옆에서 붙잡아주는 이가 있어 살 만한 세상이란 걸 배운다.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위기에서 구해낸 것은 첨단 기기가 아닌 결국 사람의 따뜻함이었다. 

다시 함평나들목을 지날 때쯤 시장기가 돌았다. 휴게소에 들러 요기를 하고 화장실에서 나오려는데 손잡이 옆에 작은 문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지갑과 휴대폰은 챙기셨나요?’   

        

3

눈을 떴다. 악몽 같던 간밤의 일로 늦잠을 잘 줄 알았는데 아직 긴장이 풀리지 않은 모양이다.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함평영업소 직원에게 빌린 2만원을 한시라도 빨리 보내는 것이 최소한의 보답이라는 생각에서다. 전화번호라도 알면 직접 전화라도 할 텐데 당황한 그 순간에 무슨 경황이 있었겠는가.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나는 붙임딱지에 적어준 대로 받아왔을 뿐인데 계좌번호 오류란다. 난감하다. 돈의 액수가 문제가 아니라 그 어려운 상황에서 구해준 분한테 믿음을 깨는 것 같아 이대로 지나갈 수는 없다 생각했다. 

한국도로공사 함평영업소에 전화를 걸어 붙임 딱지에 적힌 예금주를 찾았다. 그런 직원은 없다는 답변이다. 비슷한 이름도 없단다. 오히려 다른 영업소를 간 것이 아니냐며 나의 차량번호를 묻는다. 내가 나들목을 통과하고 좀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회차한 것을 확인해준다. 그러니 그 시각에 근무한 직원을 확인하면 될 것이었다. 나를 사무실로 데리고 간 직원과 사무실 안에서 내게 진정하라며 커피를 건넨 직원 두 명이 있었으니 두 분 모두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신호음이 울리고 한참 만에 저쪽에서 졸린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밤 근무를 했다는 사실을 깜빡하고 내가 결례를 한 것이다. 나는 어젯밤 일의 상황을 간단히 설명하고 전화한 이유를 말했다. 뜻밖에 그분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며 의아해한다. 분명 그 시간에 근무한 사실은 맞는데 나를 만난 적도 없고 휴대폰을 분실했다는 사고도 접수한 적이 없단다. 잠결이라 기억이 희미한가 싶어 또 다른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분도 똑같은 답을 한다. 난감하다. 난 누구에게 도움을 받은 것인가. 내가 들고 온 이 붙임딱지는 또 어디서 난 것인가. 

김시습의 전기소설 《만복사저포기》 의 주인공 노총각 양생이 된 기분이다. 남원의 노총각 양생은 부처님과 소원 들어주기 저포놀이를 한다. 내기에서 이긴 양생은 소원대로 젊은 처녀를 얻어 가연을 맺은 뒤 재회할 것을 뒤로하고 헤어진다. 이때 처녀의 거처에서 사랑의 정표로 은그릇을 받아왔는데 알고 보니 그 처녀는 3년 전에 죽은 여인임을 알게 된다. 처녀의 부모가 무덤에 함께 묻어준 은그릇이었다. 젊은 처녀의 무덤에서 함께 운우지정을 나눈 만복사저포기는 사랑을 그리는 노총각과 노처녀의 간절함이 이루어낸 러브스토리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어떻게 해서라도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야 한다는 간절함이 이루어낸 증표가 붙임딱지였을까. 양생의 은그릇 대신 나는 오류 계좌번호가 적힌 붙임 딱지를 받아온 것인가. 그리고 그 커피는? 그날 밤 나는 이계(異界)라도 다녀온 것일까.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누가 나를 도와준 것일까? 요즘 돌아가신 아버지의 자서전을 정리하는 중인데 그 뜻이 가상해서 아버지가 사자를 보내신 걸까? 아무리 이리 꿰고 저리 꿰어 봐도 기억은 정확한데 결과는 오리무중이다. 그냥 잊어버리려 해도 그날의 일이 너무도 또렷해서 일주일이 지나도록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코로나 19와 긴 장마에 지쳐 바람이나 쐬자고 나선 여행의 귀갓길이 이렇게 멀고도 험할 줄이야. 바람치고는 국보급 태풍이었다.

내가 정말 귀신에 홀려서 이리저리 돌아다닌 걸까? 지나온 여정을 지도를 보며 차근차근 더듬어보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한국도로공사 함평영업소에 대해 검색도 해보았다. 함평지점이 함께 뜬다. 

함평지점? 순간 머리가 띵 했다. 내가 찾아든 곳이 그럼 함평영업소가 아닌 함평지점? 얼른 전화기를 집어들었다. 삐.삐.삐…….     

“안녕하십니까? 한국도로공사 홍아무개입니다.”     

그제야 청량한 바람이 짙은 안개를 거두어내듯 나는 하얗게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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