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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자 Nov 14. 2023

출렁다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주연의 수필마당

셔틀버스에 오를 때 우리는 설렘 그 자체였다. 밴쿠버의 볼 만한 많은 여행지를 제쳐두고 우리가 그곳에 가기로 한 것은 긴 출렁다리 때문이다. 캐필라노 계곡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 하늘로 치솟은 나무와 나무 사이를 잇는 트리탑스어드벤처, 그리고 절벽 위를 걷는 클리프워크의 짜릿함은 직접 체험해보지 않고는 말로 설명할 수 없다니 호기심은 고무풍선 부풀듯이 커져만 갔다.


100년 전 캐필라노 계곡을 발견하고 현수교를 세운 조지 멕케이의 가족 생활상을 전시해 놓은 스토리 센터를 지나자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예술혼이 깃든 토템폴이 관광객을 맞는다. 우리의 장승과도 같은 토템은 앞으로 다가올 공포를 책임지겠다는 표정으로 우뚝 서 있다.


토템폴을 지나자마자 계곡을 가로질러 아득하리만치 긴 다리가 지지대 하나 없이 휘청 걸려있다. 승천하려는 용의 허리처럼 길게 누운 출렁다리가 우리를 기다린다. 숲속으로 까마득하게 사라지는 긴 포물선은 끝이 아득하고 마치 천국으로 가는 길인가 싶기도 하다. 과연 그렇다면 그리 녹록지만은 않을 거란 생각에 어느 정도 두려움은 이미 각오한 상태다. 평소에 갖고 있던 약간의 고소공포증마저 일렁이는 호기심을 막진 못했다.


처음 몇 발짝을 내디딘다. 생각보다 덜 휘청거려서 안심이다. 가는 사람과 오는 사람이 한 줄로 서서 균형을 잘 잡을 수 있었다. 긴장을 여민 채 얼마를 더 가다 문득 ‘이럴 때 짓궂은 누군가가 다리를 한 번 구르기라도 한다면…….’ 하고 몹쓸 생각이 떠오른다. 현기증이 인다. 두려움을 잊으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계곡 아래에는 거센 물살이 거친 돌을 헤치고 흐른다. 돌에 부딪히는 하얀 포말은 악어가 뿜어내는 거품 같다. 마치 성난 악어가 입을 벌린 채 누군가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 아찔했다. 순간 긴 활이 휘청한다. 용의 허리가 꿈틀댄다. 얼른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산등성이 위로 피어오르는 뭉게구름이 나를 보고 피식 웃는다. 저 앞에서부터 이어지는 줄 잡은 하얀 손들이 긴장을 말없이 전한다. 땀이 난다. 

다시 앞을 바라보고 차분히 걷기로 했다. 하지만 머릿속은 많은 몹쓸 생각들이 해찰을 부린다. 이 다리를 과연 믿을 수 있는 걸까? 이제껏 잘 버티다가 하필 지금, 이  순간에 끊어지기라도 한다면?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 머리를 스친다. 아니겠지, 아닐 거야. 줄이 끊어지기 전에 어서 건너야 할 텐데 사람들은 왜 이리 느긋한지 모르겠다. 

중간쯤이나 왔을까? 마주 오던 사람들 발길이 뜸해지니 우리 쪽으로만 사람들이 걷고 있다. 그럼 우리가 가는 쪽으로 무게중심이 쏠리게 되지 않을까? 한쪽으로 기울어 이 천길 높이에서 기우뚱하고 쏟아지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균형을 잡는답시고 마주 오는 왼쪽으로 발을 옮겼다. 아무리 요즘 내 몸무게가 늘었다 한들 이 한 몸으로 그 긴 다리의 균형을 잡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줄 알지만 그건 나의 본능이었다. 오히려 나는 다리에 힘을 잃고 휘청했고 난간을 잡았던 손은 허공을 휘젓고 있었다. 이를 본 며늘아기가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오히려 염려해준다. 그냥 마음 놓고 걸으면 그만인데, 무조건 믿고 있으면 차라리 무덤덤할 텐데 출렁다리를 믿지 못하는 내가 우습다. 출렁다리에서 균형을 잃지 않으려 난간을 꽉 잡은 사람들의 손등이 눈에 하얗게 들어온다. 


전문 카운슬러 실습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강의 주제는 신뢰에 관한 것이었다. 그날 강사는 내 뒤에 한 사람을 세워놓고 확인을 시킨 뒤 나더러 눈을 감으라고 했다. 그러더니 다섯을 세면 뒤로 넘어지란다. 도저히 난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넘어지더라도 뒤에 있는 사람이 나를 받쳐줄 것이기 때문에 안심해도 된다고 했지만 나는 주저주저하기만 했을 뿐 결국 해내지 못했다. 만약 뒤에 있는 사람이 나의 무게를 못 이겨 놓쳐버리거나 피하기라도 한다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이 나의 용기를 앗아갔다. 뒤에 있는 사람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지금 출렁다리를 믿지 못하는 것처럼. 


계곡을 건너 천국인 줄 알았던 곳에 다시 트리탑스(treetops)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만하면 됐다 싶을 때 앞에 주어지는 영업목표가 또다시 상향조정 되던 때가 문득 떠오른다. 앞만 보고 달려야 했던 그때는 치열했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나를 괴롭혔고 그러한 요나 콤플렉스는 늘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나의 능력에 좀 더 확신을 가졌더라면 조금은 여유롭지 않았을까. 이제 와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난다.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은 나무와 나무 사이를 잇는 다리가 태평한 모습으로 걸려있다. 지금까지 지나온 길을 트리탑스 위에서 내려다본다.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호기심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며 여기까지 왔다. ‘앞만 보고 걷는다’는 말이 있다. 확신을 가지면 주변을 둘러볼 겨를없이 한 곳을 향해 갈 수 있는데 지금까지 난 얼마나 두리번거리며 살아왔던가. 스스로 확신을 갖지 못했기에 나의 몸과 마음은 매번 요동을 쳤다.


올곧게 잘 자라줄 것이라는 내 아이에 대한 믿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줄 것이라는 남편에 대한 신뢰, 나를 향한 형제나 친구의 애정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했기에 내 마음에 일렁이는 불신으로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온 것은 아니었을까. 상대는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인데 내가 마음의 고통을 스스로 짊어진 채 걸어온 것은 아니었을까. 믿음은 남이 내게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믿어야 한다는 것을 예전엔 알지 못했다. 다리의 난간을 흔든 것은 남이 아닌 바로 나였다는 것을 진작에 깨달았다면 그동안 걸어온 인생길이 좀 더 순탄하지 않았을까. 내가 제아무리 동동거린대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캐필라노 출렁다리는 흔들리지 않고 내 마음만 흔들렸던 것처럼.


다시 우리는 클리프워크로 향한다. 절벽에 걸린 좁은 산책로를 걷는데 발아래가 까마득하다. 이제 두렵지 않다. 캐필라노 출렁다리를 이미 건너보았으니. 맞은편 계곡에 매달린 폭포가 오히려 앙증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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