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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주 Feb 21. 2024

나비 한 끼

좋은 학교-좋은 삶-좋은 나에 목을 매던 시절이 있었다.

    좋은 학교-좋은 삶-좋은 나에 목을 매던 시절이 있었다. 오전 6시 반에 뜨인 눈은 끝없는 기출문제와 학원 특강에 시달리다가 새벽 두 시가 되어서야 다시 감길 수 있었다. 뚜렷한 꿈이 없는 학생은 오히려 더 쉬웠다. 주어진 문제에 대한 정답만을 내놓으면 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잘 안되었다. 충혈된 눈으로 지새운 밤들이 납득가지 않는 결과로 돌아왔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탄 커피가 우스워지는 순간들이 올 때마다 자책했다. ‘이 정도는 해야지.’ 하고 정해놓은 어른들의 금을 밟을 때마다 화들짝 놀라며 도망가기 바빴다. 아무래도 그때는 그게 온 세상이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주공 14층은 완전한 무법지였다. 내일까지 외워가야 할 단어도, 8시에는 등교해서 자리에 앉아 자습해야 한다는 담임의 말도 없는, 완전무법(完全無法)의 공간. 그 당시 절대법처럼 여기던 어른들이 부재한다는 사실은 나에게 묘한 해방감을 가져다주었다. 법 없이도 살 수 있을 거라던 말, 그게 나에게 아주 잘 들어맞는다는 걸 나비가 해준 떡볶이 먹으면서 깨달았다. 

 중학교 2학년, 장장 4일 밤을 새운 상태로 나비의 집에 처음 초대되었다. 제 쓸모를 다해 이제는 필요 없어진 수학 공식과 사자성어가 뒤엉켜있어 머리가 아팠다. 비척비척,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하면서도 나비의 초대를 흔쾌히 받아들여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웬걸, 눈을 떠 보니 밤 열 시였다. 미쳤어, 연신 외치며 급하게 짐을 챙겨 나왔다. 그러니까 나비의 집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좁은 거실에 덜렁 놓여있는 매트리스와 다섯 시간의 낮잠, 그뿐이었다. 그래서일까, 나비의 집에 자주 드나들었다. 잠을 푹 자고 개운한 상태로 나섰던 그 대문 앞에 다시 서고 싶었다. 자꾸 졸리고 복잡한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찰 때면 나비의 집에 갔다. 벌개진 눈으로 문을 두드리면 나비는 문을 열고 내 가방을 받아주었다. 손님을 그냥 앉혀둘 수 없다는듯 나비는 티비 리모컨을 쥐여주고 부엌으로 갔다. 칼이 도마와 맞닿는 소리와 타닥거리는 가스 불 소리가 몇 번 번갈아 들리고 나면 온전한 한 끼가 내 앞에 놓여있었다.

    봄에는 냉이 된장국을 먹었다. 꺼둔 핸드폰으로 3월 모의고사 결과를 보내라는 학원 선생님의 문자가 왔던 것도 모르고, 밥을 두 그릇이나 먹었다. 두부를 잔뜩 넣은 냉이 된장국을 한 숟갈 퍼먹으면 속이 따뜻해졌다. 그제야 나는 비로소 내가 추웠음을 깨닫고 손을 녹였다. 나비가 해준 냉이 된장국을 먹고 나면 미처 마무리 짓지 못한 채 남겨진 작년의 나와 꽃샘추위를 한데 접어 넣어둘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한 해의 마무리는 항상 봄에 이루어졌다.

    등자락에 송골송골 땀이 맺힐 때쯤이면 냉우동이 상에 올라왔다. 나비의 냉우동은 아주 간단했다. 삶은 면 위에 쯔유를 섞고 달걀 노른자와 와사비를 올리면 완성되었다. 냉우동으로 빵빵해진 배를 두드리며 나비와 매트리스에 드러누웠다. 나비의 집에서 느끼는 여름 볕은 가볍고 즐기기 좋았다. 누워서 그 볕을 온전히 받아내고 있노라면 곧 여름방학이 되었다. 여름방학에는 내내 나비의 집에서 커다란 아이스크림 통을 뜯어놓고 마구 퍼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나비와의 대화는 휘발성이 강했다. 빨리 녹는 아이스크림 같았다. 집에 도착하면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해? 맨날 보면서.’하고 타박하듯 묻는 엄마의 질문에 아무것도 답할 수 없었다. 사실 그래서 좋았다. 흔적으로만 평가되는 일상을 사는 것에 지쳐있었던 나는 자취가 남지 않는 날 것의 대화를 꽤 기다렸다. 그렇게 그해 여름은 의미 없는 말장난으로 채웠다. 

    거리가 막 노랗게 물들어가기 시작하자 나비는 내게 바게트를 사 오라고 했다. 두껍게 잘린 바게트 위에 올리브 오일을 끼얹고 새우를 얹어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시험준비로 피곤해할 때면 나비는 꼭 자신의 집에 나를 초대했다. 퀭한 눈으로 바쁘다며 한사코 거절하는 나를 붙잡아 앉히고서는 감바스를 해주었다. 맛있게 감바스를 먹고 나면 꼭 스파게티 면을 삶아 오일파스타를 만들어주었다. 나비는 나를 위로하는 법을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파스타를 만들어주고 끊임없이 여행계획을 들려주었다. 그 손바닥만 한 이야기로 한 달을 버텼다. ‘시험이 끝나면 꼭 같이 바다를 가야지’ 같은 소소한 바람으로 시험기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비와 함께 호빵을 불고 있었다. 반 가른 호빵을 나눠 먹으며 6년의 학교생활을 되짚어 보았다. 울면서 자책하던 모습, 잘해도 쉬이 나를 칭찬하지 못하던 모습에 대해 떠올렸다. 그 모든 부끄러운 장면 끝에는 나비의 집으로 발길을 옮기는 내가 등장한다. 그 한결같음이 너무 소중해서 그 날 새벽은 내내 우리의 이야기를 회상하는 데에 쓰기로 마음먹었다.

    내 학창시절엔 나비가 해 준 요리들이 있다. 나비가 건넨 위로들이 있다. 허기진 배를 채워주고 덧난 마음을 어루만져주던 시간들이 있다. 뭐든지 급급하게 처리하기 바빴던 나에게 나비가 오랜 시간 들여 정성스레 만든 요리는 숨 쉴 구석이었다. 아직도 나누고픈 일이 생기면 나의 두 발은 나비의 집으로 향한다. 양손 가득 재료들을 담은 채로. 기분 좋은 무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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