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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주 Mar 23. 2023

생일을 축하하며.

또 무사히 가을의 한가운데서 스물한 번째 초불기를 마쳤다

이게 그렇게 별일인가 싶다가도

이날만을 고대하던 모습을, 이날이 지나갈 때까지만 버티자 했던 마음들을 무시할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상처받기도 하고 위로받기도 하고, 반대로 상처를 주기도 위로가 되기도

절대 친해질 수 없을 거라고 선을 그었던 사람과 같이 웃기도 했다

웃음도 울음도 헤픈 내가 싫은데

올해는 자주 웃고 또 울면서 그런 모습들을 조금은 긍정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무엇보다 올해에 와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열심히 하는 나의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항상 동경하면서도

막상 나 자신에게 기회가 주어지면 도망치고 외면하고 그랬다

그러다가 또 우연한 계기로 보게 된 다이어리의 맨 앞장의 말이 위로가 되었다

내가 그와 같이 지낸 과거의 날들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

내 과거는 없어지지 않는다

없어질까 봐 붙잡지 않아도 된다

그거면 된다는 걸 이젠 안다


생일이면 그간 나에게 쏟아졌던 사랑을 혼자서 곱씹어 본다

꽃다발, 택시비 만 원, 캔 음료수, 손깍지, 부재중 전화 한 통, 한 문장, 또 포옹, 와플 한 조각

차 한 잔, 맛있는 음식, 라이브 공연, 포장된 과일, 아침인사, 좋은 꿈 꿔 그런 것들


그 사랑들은 가끔은 나도 흉보는 내 정원에 와서

잡초도 뽑아주고 물도 주고 노래도 해 준다

그럼 나도 조금 살아난 그 정원을 힐끗 보게 된다

그리고 이 정원은 언제든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21년 동안 나의 서투른 정원 가꾸기에 도움을 준 이들에게 깊은 감사를 보내며

나도 그들의 정원에 기꺼이 물을 줄 수 있는 사랑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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